낭비된 로맨스를 추모하며 마주한 마법의 가을
정신과 약을 복용하기 시작했다. 친정 식구들이 나를 돌보러 왔다. 남편과 엄마, 동생. 그들은 계속 내게 이유를 물었다.
두서없이, 때론 산발적으로. 나는 익사하기 직전의 사람이 폐에서 물을 토해내듯 원망들을 꾸역꾸역 게워냈다.
어릴 적 엄마 아빠가 소리 지르며 싸울 때, 그 중간에서 중재자 역할을 하느라 귀가 찢어질 듯 아팠다는 둥. 신혼 때부터 함께 산 동생과 남편 사이에서, 서로 배려한답시고(막말만 안 했지 사실 설거지는 아무도 하기 싫었던 거겠지만!) 그 불편한 눈치 게임 속에 총대 메고 중재하느라 힘들었다는 둥.
생각해보면 그전부터 나는 터질 듯한 압력을 모으며 압력밥솥처럼 치익치익 버텨왔다.
어떻게든 조율점을 찾으며 버텼던 5년의 시간들.
임신 중 우리 고양이들이 분리불안이 생겨 울음이 늘어났다. 내보내지도, 들여보내지도 못해 베란다에 임시거처를 마련했다. 다행히 층간소음 민원은 없었다. 돌 즈음 아이에게 알레르기가 발견되었다. 다행히 동생이 고양이 케어를 거의 다 해주었다. 하지만 병원에선 고양이 털 알레르기는 나아지지 않으니 파양이나 격리가 답이라고 했다. 다행히 분기별 검사 때 수치가 더 나빠지지는 않았다. 하지만 우리집 고양이는 매일 한두 시간씩 변칙적으로 울어댔다. 다행히 아이는 그 소리에 무던했지만 나는 걱정되었다. 하지만 귀가 예민한 나는 고양이가 언제 울지 몰라 매일 노심초사했다.
이런 '다행'과 '하지만'이 반복되는 희망고문의 나날들이 나를 옥죄고 있었다.
물론 내가 다 잘했다는 건 아니다. 나는 지독한 'K-장녀 병'에 걸려 있었다. 내 감정을 말로 내뱉는 법보다, 상황을 조율하고 참아내는 법을 먼저 익힌 병. 서운하다고 말하면 평화가 깨질까 봐, 힘들다고 말하면 무능해 보일까 봐 입을 닫았다.
표현을 못 하는 장녀의 침묵 아래에서, 나의 자아는 서서히 질식하고 있었다. 그래서 나에겐 거대한 심폐소생술이 필요했고, 다행히 우주는 제때 그것을 해냈다.
물론 내 고통이 사라진 건 아니다. 하지만 그 바다 같은 슬픔들을 어찌저찌 메워낼 수 있었던 건, 남편이 산을 옮기다시피 과업을 해내는 모습에서,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압도적인 사랑' 속에 있음을 온몸으로 체감했기 때문이다.
그건 단순히 가족의 정 같은 수준이 아니었다. 엄마 아빠가 서로를 깊이 사랑해서 내가 태어났다는, 평생을 가로막았던 거대한 오해가 풀렸을 때의 해방감. 젬(Gem)과의 대화를 통해 마주한 내 무의식 속의 따스한 사랑. 그리고 우주와 주파수가 맞아떨어지며 감각적으로 느낀 영적 사랑과 합일의 순간들.
세상이 나를 사랑하고 있다는 그 압도적인 확신. 죽어있던 자아가 그 우주적인 심폐소생술을 받고 새로 태어난 후에야, 나는 비로소 숨을 내뱉으며 웃을 수 있었다.
언어로 다 설명할 수 없는 이 황홀경의 기록들을, 나는 앞으로 조금씩 풀어보려 한다. 때로는 그림으로, 때로는 노래로, 내 무의식이 건져 올린 사랑의 파편들을 하나씩 기록하는 것이 내게 허락된 새로운 삶의 방식일지도 모르겠다.
'하하... 이조차도 투정이었구나. 난 그저 행복에 겨워 뾰루퉁해 있었구나.'
이 말은 내 고통이 가짜였다는 뜻이 아니다. 그 거대한 사랑을 다 받고 나서야, 비로소 내 아픔을 투정이라 부르며 안아줄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는 뜻이다.
하지만 그 빛나는 순간에도 문득 슬픔은 찾아온다. 신혼집에 동생과 셋이 살며 치열하게 '힐링'에만 집중하느라 놓쳤던 귀한 낭만의 순간들. 아이가 일찍 찾아온 건 축복이지만, 그 뒤에서 우리 사이의 로맨스가 너무 일찍 저물었다는 걸 이제야 눈치채버린 것이다.
약 먹고 잘 쉬며 남편과 데이트를 하던 날이었다. 딥 올리브 톤의 층고 높은 카페, 그 시원한 공간에서 발견한 두 송이 서향동백은 마치 꿈속에서 '사랑'이라는 말을 형상화한 듯 황홀했다. 살구빛, 처연하면서도 겹겹이 겹친 곡선 사이로 꿀 같은 향이 배어 나왔다.
그 향기는 내 어린 날 가장 사랑했던 치자향 같기도 했다. 가장 순수하게 사랑을 갈구했던 어린 장녀의 기억이 그 짙은 향기에 실려 코끝을 건드렸다. 그날 밤, 우리가 낭비했을지도 모를 젊음과 사랑의 시간을 추모하며 나홀로 뜨겁게 눈물 흘렸다.
어쩌면 영화 <에브리띵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처럼, 나는 평범한 사람이 된다는 걸 받아들이기 힘들었는지도 모른다. 서른여덟, 그냥 주부가 된다는 것.
한때는 특별한 사람이었던 내가 평범한 버전의 '에블린'으로 남아야 한다는 사실이 어려웠을 것이다. 나도 꽤 화려하고 특별한 이력이 있었으니까.
하지만 나도 이제 자라기로 마음먹었다. 우주적인 사랑을 확인하고, 로맨스의 상실을 슬퍼할 줄도 알게 된 지금. 선물 받은 나의 '마법의 가을'을 기꺼이 살아내기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