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를 품은 강력한 PC의 등장
1990년대 가정과 사무실에 보급되며 정보화 시대를 연 데스크톱 PC의 등장은 가히 혁명적이었다. ‘1가구 1PC’ 시대를 연 첫 번째 비상이었다. 2번째는 2000년대 PC를 가방에 넣어 다니며 언제 어디서나 컴퓨터를 사용할 수 있는 노트북이다. 하지만 이후 20년 가까이 PC 시장은 정체 상태에 머물렀다. 성능은 꾸준히 향상되었지만 사용자의 경험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혁신적인 변화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스마트폰과 태블릿에 주도권을 내어주며 ‘PC의 종말’이라는 비관론마저 고개를 들었다.
그러나 2024년을 기점으로 PC 시장은 다시 한번 거대한 변혁의 소용돌이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그 중심에는 인공지능이 있다. 2025년 1월, 엔비디아는 CES 무대에서 ‘Project DIGITS’를 공개하며 PC의 새로운 진화를 선언했다. 이는 단순한 고성능 PC가 아니라 AI 작업을 실시간으로 수행할 수 있는 개인용 슈퍼컴퓨터다. DIGITS의 핵심은 'Grace Blackwell Superchip(GB10)'이다. ARM 기반의 Grace CPU와 최신 Blackwell GPU를 하나로 통합한 이 칩셋은 FP4 정밀도 기준 최대 1페타플롭 성능을 낸다. 여기에 128GB의 통합 메모리를 더해 AI 연산 최적화에 특화된 구조를 갖췄다. 이 시스템은 최대 200억 개 파라미터의 대형 언어 모델(LLM)을 로컬에서 바로 실행할 수 있다. 두 대를 연결하면 400억 개 이상도 가능하다. 과거 데이터센터에서만 가능했던 AI 모델 실행이 이제 책상 위에서도 가능해진 것이다. DIGITS는 단순한 연산 성능을 넘어 PC의 개념을 바꾼다. 사용자는 더 이상 키보드와 마우스를 통해 명령을 입력하는 존재가 아니다. 자연어로 AI와 대화하고, 실시간으로 아이디어를 구현하며, 작업 효율을 극대화하는 협업자가 된다.
그렇다면 AI PC는 기존 PC와 무엇이 다른가? 단순히 최신 CPU와 그래픽카드를 장착한 고성능 PC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AI PC의 핵심은 ‘AI 연산 능력의 내재화’, 즉 온디바이스 AI(On-device AI)를 효율적으로 처리할 수 있는 하드웨어 구조에 있다. 이를 위해 AI PC는 세 가지 핵심 요소를 갖춘다. AI 연산에 특화된 NPU와 생성형 AI 구현을 위한 GPU와 이 둘이 재성능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해주는 빠른 대용량 메모리가 그것이다. 이 세 요소가 유기적으로 결합하여 강력한 ‘온디바이스 AI’ 환경을 구축하는 것이 바로 AI PC의 본질이다.
온디바이스 AI는 지금 우리가 사용하는 클라우드 속 AI를 이용하는 컴퓨터와 비교해 데이터를 외부로 전송하지 않아 강력한 개인정보 보호와 보안을 제공하고, 인터넷 연결 없이도 AI 기능을 사용할 수 있으며, 서버와의 통신 지연이 없어 빠른 응답 속도를 보장한다는 장점을 가진다. 덕분에 AI PC는 우리의 일과 삶을 극적으로 변화시킬 잠재력을 품고 있다. 특정 전문가의 영역을 넘어 모든 사용자에게 새로운 차원의 경험을 제공할 것이다. 크리에이터(Creator)에게는 상상력의 한계를 허무는 창작 도구가 된다. 과거에는 수 시간 걸리던 3D 렌더링이나 영상 인코딩이 실시간으로 이루어진다. “푸른 초원에서 뛰어노는 황금빛 강아지”라는 텍스트 명령어만으로 고품질의 이미지를 즉시 생성하고 간단한 스케치를 전문가 수준의 유화로 변환하며 내 목소리로 작곡한 멜로디를 오케스트라 연주곡으로 편곡하는 일이 내 PC에서 즉시 가능해진다. 지금도 클라우드 속 AI를 통해 가능한 기능이지만 클라우드의 경우 비싸고 느리고 개인 정보 이슈가 있지만 AI PC는 그런 제약을 없애준다. 전문가 및 개발자(Professional & Developer)에게는 생산성을 극대화하는 지능형 조수가 된다. 개발자는 인터넷 연결 없이도 로컬 환경에서 코드를 생성하고 오류를 수정하는 AI 코딩 비서를 활용할 수 있다. 금융 분석가는 방대한 시장 데이터를 PC에서 직접 분석하여 인사이트를 얻고 연구원은 개인의 연구 데이터를 외부 유출 걱정 없이 안전하게 AI 모델로 학습하고 시뮬레이션할 수 있다. 보안 문제없이 개인 AI PC에서 AI 사용을 할 수 있다는 장점이 크다.
일반 사용자(General User)에게는 삶의 질을 높이는 개인 비서가 생긴다. PC는 더 이상 명령을 기다리는 수동적인 기계가 아니다. 내 컴퓨터의 모든 파일, 이메일, 일정을 스스로 학습한 AI 비서가 “다음 주 부산 출장 준비해줘”라는 한마디에 항공편과 숙소를 추천하고 관련 자료를 요약하며, 발표 자료 초안까지 만들어준다. 외국어 영상 통화 시에는 실시간으로 통역된 자막을 보여주고 복잡한 문서의 핵심 내용을 몇 초 만에 요약해주는 등 일상의 모든 영역에서 지능적인 도움을 받을 수 있게 된다.
덕분에 AI PC는 침체된 PC 시장에 강력한 ‘교체 주기’를 불러올 게임 체인저가 될 수 있다. 스마트폰이 등장했을 때 기존 피처폰 사용자들이 대거 교체에 나섰던 것처럼 AI PC가 제공하는 혁신적인 사용자 경험은 소비자들에게 새로운 PC를 구매해야 할 확실한 명분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이미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의 패권 경쟁은 시작되었다. 엔비디아는 독보적인 GPU 기술력을 바탕으로 고성능 AI PC 시장의 표준을 제시하며 ‘AI 시대의 인텔’이 되려 하고 있다. 인텔과 AMD는 CPU에 NPU를 통합하는 전략으로 AI PC의 대중화를 이끌고 있으며 모바일의 강자 퀄컴은 ARM 기반의 ‘스냅드래곤 X 엘리트’ 칩을 통해 저전력·고효율 AI PC 시장을 공략하며 x86 진영을 위협하고 있다. 여기에 마이크로소프트는 ‘코파일럿+ PC’라는 새로운 카테고리를 발표하며 윈도우 운영체제 단에서부터 AI 경험을 통합,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아우르는 AI PC 생태계를 주도하려 하고 있다.
물론 해결해야 할 과제도 남아있다. 고성능 AI PC는 초기 가격이 높게 형성될 가능성이 커 대중화의 걸림돌이 될 수 있다. 또한, AI PC의 능력을 100% 활용할 수 있는 킬러 앱(Killer App)의 등장이 필수적이다. 강력한 하드웨어가 준비되더라도 소비자들이 그 가치를 체감할 수 있는 매력적인 소프트웨어가 없다면 ‘찻잔 속의 태풍’에 그칠 수 있기 때문이다. PC는 지난 30여 년간 인류의 생산성을 비약적으로 발전시킨 위대한 도구였다. 1990년대의 데스크톱이 정보 접근의 시대를, 2000년대의 노트북이 정보 휴대성의 시대를 열었다면, 2020년대의 AI PC는 ‘지능 대중화’의 시대를 열 것이다. AI PC가 이끌 세 번째 비상은 우리의 삶과 산업, 그리고 사회 전반을 어떤 모습으로 바꾸어 놓을지 새로운 컴퓨팅 시대에 대한 기대가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