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조업의 부활을 위한 Dark Factory
전통적으로 제조업은 국가 경쟁력을 좌우하는 기반 산업이었다. 한국은 반도체, 자동차, 조선, 배터리 등 특정 영역에서 세계적인 제조 강국으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글로벌 무대에서 “제조 강국”이라는 타이틀을 유지하기는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일본은 자동화와 품질 경영의 전통을 앞세워 여전히 뿌리 깊은 제조 경쟁력을 갖추고 있고, 특히 중국은 막대한 투자와 데이터 활용을 기반으로 한국을 추월할 듯한 기세다. 게다가 미국은 라쇼어링을 부르짖으며 제조 시설을 해외에서 다시 미국으로 불러들이고 있다. 이런 틈바구니에서 한국이 제조업에서 차별화된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선택할 수 있는 무기는 무엇일까?
❏ 제조 공장 속에 스며들어갈 AI와 디지털 트윈
공장은 이미 오래전부터 자동화의 현장이었다. 산업용 로봇이 용접과 조립을 대신했고 PLC(Programmable Logic Controller)가 생산 라인을 통제했다. 그러나 오늘날 제조 AI는 단순 제어를 넘어 데이터 기반으로 스스로 학습하고 예측하며 최적화하는 단계에 이르고 있다. 대표적 사례로는 설비의 센서 데이터를 분석해 고장을 사전에 예측하는 예지 정비(Predictive Maintenance), 영상 인식 기반의 실시간 품질 검사, 에너지 사용 최적화 같은 영역이 있다. 이는 공장의 중단 시간을 줄이고 불량률을 낮추며 에너지 비용을 절감하는 데 직접 기여한다. 실제 지멘스 암베르크 공장은 가치사슬의 약 75%를 자동화하고, 내장품질 99.998%를 달성했다. 이 공장은 설비와 제품, 작업자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수집해 AI가 품질 문제를 예측하고 스스로 조정한다. GE는 '프레딕스(Predix)' 플랫폼을 통해 발전소·항공기 엔진 등 산업 설비의 센서 데이터를 클라우드로 통합 분석해 고장 징후를 미리 찾아내는 시도를 했다. 비록 이 사업은 시장에서 기대만큼 성과를 내지 못하고 2019년 매각되었지만 산업용 IoT 플랫폼의 초기 모델로서 의미를 지닌다. 국내에서는 현대자동차 울산공장이 대표적이다. 현대차그룹은 비전·AI 기반 품질검사 적용 확대했고 SK하이닉스는 반도체 클린룸 내 설비 데이터를 활용해 공정 최적화와 불량 패턴 예측을 수행하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은 배터리 생산 라인에 AI 기반 이상 탐지(Anomaly Detection) 시스템을 적용해 품질 검사의 자동화 수준을 높이고 수율을 향상시켰다. 이런 사례들은 Physical AI가 단순히 생산 효율을 높이는 수준을 넘어, 제조 경쟁력의 근본 구조를 바꾸는 전환점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AI와 센서, 로봇, 디지털 트윈이 결합된 스마트 팩토리는 한국 제조업이 ‘비용 절감형 생산’에서 ‘지능형 제조 플랫폼’으로 진화할 수 있는 핵심 무기가 되고 있다.
특히, 2023년부터 생성형 AI의 급부상과 함께 LLM, LMM 등의 인공지능 기술을 활용한 공정 프로세스 개선과 최적화가 본격화되고 있다. 물성예측, 실시간 이상감지 탐지 그리고 도면 데이터 자동 분석, 수율 향상 엔진 등에 데이터를 보다 효과적으로 분석할 수 있고 분석 내용에 대한 다양한 질문으로 답을 찾아가는 것 또한 AI 덕분에 가능해졌다. 덕분에 개발자의 직접적 도움없이도 더 많은 제조 생산 현장의 작업자들이 AI를 이용해 더 나은 의사결정과 시스템 제어를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한 일련의 활동을 가리켜 제조 AI라 정의할 수 있다.
그런데, 제조 AI와 디지털 트윈은 서로 밀접히 연관되지만 같은 개념은 아니다. 제조 AI는 실제 현장에서 발생하는 방대한 데이터를 학습해 문제를 예측·최적화하는 ‘두뇌’ 역할을 한다. 반면 디지털 트윈은 현실의 공정과 장비를 가상 공간에 복제해 실험과 시뮬레이션을 반복하는 ‘모델’이다. AI가 실제 데이터를 분석하고 학습한 결과를 디지털 트윈 환경에 반영하면 가상 시뮬레이션을 통해 더 정교한 검증과 최적화가 가능해진다. 즉, 제조 AI는 데이터 해석과 의사결정을 맡고 디지털 트윈은 그 결과를 실험하고 적용하는 장치로 상호 보완적이다.
따라서 기대 가치와 목적도 다르다. 제조 AI는 생산 현장에서의 실시간 효율 개선, 고장 예측, 비용 절감을 직접 겨냥한다. 반면 디지털 트윈은 장기적 공정 최적화, 신제품 개발 테스트, ESG 대응을 위한 시뮬레이션 같은 전략적 가치에 더 집중한다. 독일 지멘스와 미국 GE가 보여주듯 디지털 트윈은 불량률 감소와 정지 시간 단축에 강점을 발휘하고 있으며, 중국과 한국의 사례는 제조 AI가 센서 데이터와 품질 관리 자동화로 현장의 생산성을 높이는 데 기여하고 있다.
❏ Physical AI가 만들어가는 Dark Factory
더 나아가 제조AI와 Physical AI는 구분해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 두 단어가 혼용되어 사용되는데 이 2가지의 AI 키워드는 서로 다른 용어다. 제조AI가 데이터 분석과 예측, 공정 최적화 같은 두뇌 역할이라면 Physical AI는 그 학습된 판단을 실제 로봇·설비에 적용해 물리적 움직임으로 구현하는 영역이다. 즉, Physical AI는 산업용 로봇, 협동 로봇, 심지어 휴머노이드 로봇까지 포함하며 실제 공장에서 스마트하게 작동해 사람없이 운영되는 공장, 농장, 광산까지 가능하게 만든다.
사람이 없는 공장, 일명 Dark Factory는 이 Physical AI로 구현되는 대표적인 목표다. 일본 파낙(FANUC)은 자사 로봇을 활용해 전등조차 켤 필요가 없는 로봇이 자동화되어 운용되는 24시간 무인 생산을 실현했다. 중국에서도 선전 등 주요 제조 거점에서 스마트폰 부품 및 전자제품 생산 공장의 일부 공정을 무인화하는 시도가 이루어지고 있으며, 샤오미와 같은 기업들이 자동화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 미국 테슬라의 기가팩토리는 배터리 생산 라인에서 높은 수준의 자동화를 구현하고 있으며 AI를 활용한 에너지 최적화와 HVAC 시스템 제어로 생산 효율을 높이고 있다. 유럽 BMW는 독일 딩골핑 공장에 AIQX라는 AI 품질 관리 시스템을 도입해 음향 분석 기반의 자동 불량 탐지와 비전 검사를 통해 품질 관리 프로세스를 고도화했다. 이 과정에는 컴퓨터 비전, 엣지 컴퓨팅, 5G/6G 네트워크, 자율제어 알고리즘, 전력 관리 기술 등이 결합된다. 포스코는 제철소 고온 공정에 AI 로봇을 투입해 안전사고를 줄였고 LG에너지솔루션은 배터리 생산 공정에 AI 기반 공정 제어 및 이상 탐지 시스템을 도입하여 품질 향상과 수율 개선을 달성했다.
따라서 Dark Factory는 단순한 인력 절감이 아니라 Physical AI가 로봇과 인프라를 통해 초정밀·무결점·무중단 생산 체계를 실현하는 것이다. 한국은 반도체·배터리·통신 장비를 모두 공급할 수 있는 강점을 기반으로 위험 공정과 고부가가치 라인부터 점진적으로 확산하는 방안을 고려해야 할 것이다. 다만, Dark Factory와 같은 완전 무인 생산 시스템은 특정 공정에서 성공 사례가 있으나 전체 제조업으로 확산되기 위해서는 안전 검증, 표준화, 투자 비용 문제 등을 해결해야 하며 단계적 확산에 상당한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전망된다.
❏ 상품을 혁신시키는 Embodied AI
제조 AI의 진화는 공장과 로봇을 넘어 제품과 서비스로 스며들고 있다. Embodied AI는 기기 자체가 환경을 인지하고 학습해 사용자 맥락에 맞춰 동작하도록 만든다. AR과 공간 컴퓨팅이 결합되면 사용자는 물리 세계 위에 디지털 정보를 겹쳐 보며 기기를 단순 기능이 아닌 지속 업데이트되는 서비스로 인식하게 된다.
실제 사례도 빠르게 늘고 있다. 애플 비전 프로와 메타 퀘스트는 공간 컴퓨팅 환경에서 AI를 보조 작업자로 삼아 사용자의 의도와 작업 흐름을 이해하고 안내한다. 이케아는 AR로 거실에 가구를 미리 배치하게 하고 산업 현장에서는 홀로렌즈·리모트 어시스트가 번역과 시각 인식을 결합해 원격 유지보수를 지원한다. 중국 샤오미는 로봇청소기와 스마트 가전에 내장된 AI로 생활 패턴을 학습해 자동화를 강화하고 한국의 삼성·LG는 냉장고·세탁기·TV·로봇청소기에 AI를 심어 자가 진단, 원격 제어, 맞춤형 추천, 에너지 최적화를 구현한다.
핵심은 관점의 전환이다. 제조AI와 Physical AI가 공정의 생산성·안전·품질을 높이는 공급자 중심 혁신이라면, Embodied AI는 소비자 경험 그 자체를 바꾸는 수요자 중심 혁신이다. 사용자는 구독, 애드온, 데이터 기반 애프터서비스, AR 콘텐츠 구매 등 새로운 비즈니스로 기업의 사업 가치를 만들어내고, 사용 과정에서 축적되는 데이터는 고스란히 디지털 트윈과 연동되어 설계 개선, 공정 파라미터 조정, 차세대 제품 반영으로 이어진다.
이렇게 세 축은 하나의 순환을 이룬다. 제조AI는 데이터를 학습해 의사결정을 내리는 두뇌이고, Physical AI는 그 결정을 실행하는 팔과 다리이며, Embodied AI는 사용자의 손안에서 경험을 재구성해 새로운 수익 모델을 만든다. 순환 고리가 닫히면 현장 데이터가 모델을 개선하고 개선된 모델이 다시 공정과 사용자 경험을 최적화하는 플라이휠이 형성된다.
한국이 중국과의 경쟁에서 차별화하려면 이 세 축을 단일 전략으로 묶어야 한다. 제조AI는 반도체·배터리·정밀화학 등 고난도 공정에서 신뢰 가능한 데이터 거버넌스와 품질 추적성을 무기로 삼아야 한다. Physical AI는 국제 규격과 안전·보안 표준을 선제적으로 내재화해 글로벌 신뢰를 확보해야 한다. Embodied AI는 가전·모빌리티·의료기기에서 디바이스와 서비스를 구독형으로 묶어 새로운 사업 혁신을 꾀하고 데이터 이전성과 프라이버시를 전면에 내세워 세계 시장에서 신뢰를 선점해야 한다.
결론적으로 한국은 제조AI–Physical AI–Embodied AI의 루프를 전략적으로 통합해야 한다. 그래야 공장 효율 개선을 넘어 사용자 경험과 비즈니스 모델 진화를 동시에 달성할 수 있다. 이때 공장의 혁신이 시장 혁신으로 연결되고 대규모 투자 중심의 중국과는 다른 품질·신뢰·서비스형 수익에 기반한 차별화 경로를 확보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