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료 AI의 부익부 빈익빈

AI 접근권 격차, 기술 민주주의의 새로운 과제

by OOJOO

AI 시대의 새로운 격차는 단순히 지식이나 정보가 아니라 기술에 대한 접근 권한과 인프라 보유력에서 비롯된다. 과거 인터넷이 정보의 평등한 접근을 약속하며 세상을 바꿨다면 생성형 AI는 되려 그 접근의 문턱을 높이고 있다. 오늘날 대부분의 상용 생성형 AI 서비스는 ‘프리미엄 구독’ 모델을 중심으로 운영된다. 오픈AI의 ChatGPT, Anthropic의 Claude, 구글의 Gemini, 그리고 Perplexity 같은 플랫폼들은 공통적으로 무료와 유료 버전을 병행해서 제공하고 있는데 이 두가지 버전의 품질은 확연히 다르다.


예를 들어, 무료 버전의 ChatGPT는 GPT-5.1을 일정 횟수까지 사용할 수 있고 제한이 되면 mini 버전으로 바뀐다. 또한, 이미지 생성, 파일 업로드, 음성 대화, 데이터 분석 기능 등 역시 사용량의 제한이 있을 뿐 아니로 답변이 나올때까지의 속도나 대화창에 입력 가능한 정보 등에 강한 제한이 걸려 있다. 반면 월 20달러의 Plus 구독자는 메시지·파일 업로드·이미지 생성·딥리서치·에이전트 모드의 한도가 크게 늘고, 프로젝트·커스텀 GPT, 제한적인 Sora 영상 생성 등 추가 기능을 사용할 수 있다. 여기에 월 200달러의 Pro 버전은 GPT-5 Pro 및 o3 등 고급 모델에 대한 최대 수준의 접근 권한을 제공한다. 이러한 구독 구조는 단순한 마케팅이 아니라 GPU 운용 비용과 전력 소모라는 기술적 제약 때문이다. 초대형 언어모델을 실시간으로 운영하려면 막대한 전력과 인프라 자원이 필요하다. 그런만큼 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에 무료로 모든 기능을 제한없이 줄 수 없어서 비싼 비용을 지불하는 사용자에게 더 많은 혜택을 주는 것이다.


이처럼 AI 접근성의 격차는 단순한 기능 차이를 넘어 생산성과 경쟁력의 격차로 이어진다. 예컨대 무료 모델만 사용하는 직장인은 하루에 일정 횟수만 AI를 활용할 수 있고 기본 수준의 텍스트 생성 결과에 머무를 가능성이 높다. 반면 월 20달러의 Plus 구독자는 문서를 직접 업로드해 심층 분석과 인사이트 도출이 가능하며 200달러 Pro 이용자는 복잡한 전략 분석이나 코딩 작업까지 빠른 속도로 수행할 수 있다. 같은 시간을 투자하더라도 산출물의 질, 완성도, 의사결정 속도에서 큰 차이가 벌어지는 것이다.


기업 역시 마찬가지다. AI 구독 비용을 감당할 수 있는 기업은 더 많은 실험을 빠르게 반복하며 혁신의 속도를 높인다. 실제로 PwC와 Bain & Company는 2025년부터 GPT-4 엔터프라이즈 라이선스를 도입해 직원 생산성을 20~30% 향상시킨 것으로 보고했다(PwC AI Productivity Report, 2025). 반면 비용 부담이 큰 중소기업은 여전히 수동적 업무에 머무르게 된다. 이른바 ‘AI 사용 역량 격차(AI Capability Divide)’가 과거의 디지털 격차를 대체하며 부익부 빈익빈 구조를 심화시키고 있다.


이 문제는 단순한 경제적 불평등을 넘어 사회 구조 변화로 확산되고 있다. 과거 교육 수준이 소득 불평등의 주요 요인이었다면 이제는 AI 접근성과 활용 수준이 새로운 계층을 구분하는 기준이 되고 있다. 이미 글로벌 채용 시장에서는 “AI Tool Proficiency”가 이력서의 핵심 항목으로 부상했다. LinkedIn과 Indeed 등의 2025년 보고서에 따르면 AI Literacy와 Large Language Model 활용 역량은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핵심 기술로 떠오르고 있다. 실제로 많은 채용 공고에서 ChatGPT·Copilot·Gemini와 같은 도구 활용 경험을 우대사항으로 명시한다. 마케팅·디자인 직군에서는 Midjourney 등 생성형 이미지 툴 사용 경험이 우대 조건으로 적시된 사례도 빠르게 늘고 있다.


더 나아가, AI의 비용 문제는 국가 간 격차를 심화시킨다. GPU 확보가 어려운 신흥국은 자국 AI 모델을 학습하거나 운영하기 어렵기 때문에 선진국의 구독형 AI 서비스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이로 인해 AI 기술 패권은 소수 글로벌 기업과 선진국 중심으로 집중되고 기술 주권의 종속이 강화될 우려가 있다. 기술을 활용할 ‘접근력’ 자체가 새로운 불평등의 기준이 되고 있는 셈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AI의 민주화는 단순히 기술의 공개 여부가 아니라 공정한 접근성 보장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일부 정부와 공공기관은 이 격차를 완화하기 위한 시도를 진행 중이다. 유럽연합은 EuroHPC 공동 프로젝트를 중심으로 OpenEuroLLM 같은 오픈소스 LLM 개발을 추진하며, 유럽어권을 아우르는 공개 기반 모델을 만들려 하고 있다. 또한, OECD·EU·시민단체 등에서는 AI를 도로·전기처럼 공공 인프라로 바라보자는 ‘AI as public infrastructure’ 논의가 확산되고 있다. 한국 정부 역시 2025년 AI 바우처 지원사업을 통해 중소·중견기업 및 소상공인에게 최대 2억 원 규모의 바우처를 지원해 AI 도입 장벽을 낮추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시장을 주도하는 글로벌 모델 기업들은 유료화 중심의 전략을 유지하고 있다. 결국 AI의 효용이 개인과 사회 전체의 성장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AI를 독점적 서비스가 아닌 공공재적 인프라로 인식하는 전환이 필요하다. OECD와 국제기구, 시민단체는 ‘AI Commons’와 같은 개념을 통해 데이터·모델·컴퓨팅 자원을 공공재에 가깝게 운영하자는 논의를 이어가고 있다. 이처럼 기술은 공유되어야 혁신이 지속된다. 지금의 흐름을 방치한다면 AI는 지식을 나누는 도구가 아니라 계층을 구분하는 장벽으로 변할 것이다. 이런 불평등을 공정하게 개선하는 것은 결국 사회적 담론을 통해 해결 방안을 모색하면서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것이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기업의 AX, 리더의 AI 리더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