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를 품은 가전과 로봇
지난 1월초 CES에 소개된 제품들 상당수는 AI와 최첨단의 기술이 깊게 스며들어가 새로운 가치와 경험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즉, AI가 전통 제조업의 핵심인 ‘제품 그 자체’로 깊숙이 들어왔다. 그 상징적인 사례가 레고의 스마트 플레이 시스템과 삼성전자와 LG전자의 AI를 품은 가전과 로봇이다. 레고는 이번 CES에서 스마트 플레이 시스템과 함께 20여 개의 특허 기술을 집약한 스마트 브릭을 공개했다. 이는 단순한 신제품 발표가 아니라 레고 역사에서 보기 드문 구조적 변화다. 레고는 1978년 미니피겨 도입 이후 오랜 기간 ‘플라스틱 블록’이라는 정체성을 유지해왔다. 디지털 기술은 레고 게임이나 콘텐츠 영역에 국한되어 있었고 물리적 블록은 철저히 아날로그의 영역에 남아 있었다. 그런데 이번 스마트 브릭은 센서, 마이크로 컨트롤러, LED, 사운드 모듈을 블록 내부에 통합해 조립된 구조와 사용자의 행동에 따라 빛과 소리, 반응이 달라지는 새로운 경험을 제공했다. 디지털과 오프라인의 경계를 허문다는 표현이 과장이 아니다. AI로 현실 속 장난감과 멀어지는 아이들을 AI를 품은 레고 블록으로 다시 끌어당기려는 시도라는 점에서 제조업 기반 제품 혁신의 방향을 분명히 보여준다. 한마디로 아날로그의 감성과 디지털의 경험으로 '반아반디'(반은 아날로그 반은 디지털)로 재탄생했다.
이 변화는 완구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가전과 전자제품 영역에서도 AI는 제품의 성격 자체를 바꾸고 있다. 삼성전자는 AI 가전을 ‘스마트한 기능 추가’ 수준이 아니라 사용자 삶의 맥락을 이해하는 방향으로 확장하고 있다. 냉장고, 세탁기, 에어컨과 같은 전통적 가전은 이제 센서와 AI 모델을 통해 사용자의 패턴을 학습하고 에너지 효율과 유지보수까지 스스로 관리하는 존재로 진화하고 있다. 제품은 더 이상 출고 시점에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사용되는 동안 지속적으로 학습하며 가치가 확장되는 구조로 바뀌고 있다. 삼성전자의 더 프리스타일+는 AI 화면 최적화 기능을 통해 투사 면의 형태와 색상, 패턴을 분석해 직사각형에 가까운 화면으로 실시간 보정한다. 벽과 천장, 모서리와 굴곡진 커튼 위에서도 화면을 자동으로 보정하는 이 기능은 AI가 하드웨어의 물리적 한계를 소프트웨어로 극복하는 대표적인 사례다.
LG 클로이드는 AI가 제조업 제품의 ‘역할’을 어떻게 확장하는지를 보여준다. 가정용 로봇 클로이드는 단순한 가전이나 로봇 청소기의 연장이 아니라 안내·돌봄·서비스를 수행하는 생활 공간의 AI 파트너로 설계되었다. 클로이드는 센서와 음성 인식, 환경 인지 AI를 결합해 가정과 상업 공간, 요양시설과 같은 다양한 맥락에서 사람과 상호작용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제조업이 더 이상 ‘기능을 가진 물건’을 만드는 산업이 아니라 특정 공간과 상황에서 지속적으로 가치를 제공하는 ‘지능형 서비스 제품’을 만드는 산업으로 이동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하드웨어 완성도가 경쟁력이던 가전 산업에서 이제는 AI가 만들어내는 경험과 관계가 핵심 차별화 요소로
떠오르고 있다.
이렇게 AI는 제조업을 혁신시키고 있다. 과거 제조업의 경쟁력은 원가 절감, 대량 생산, 품질 관리에 있었다. 그러나 AI 시대의 제조업 경쟁력은 제품이 얼마나 ‘지능적 경험’을 제공하는지 그리고 그 경험이 얼마나 지속적으로 진화하는지에 달려 있다. 레고의 스마트 브릭은 플라스틱 블록이라는 원가 경쟁에서 벗어나 빛과 소리로 블록을 살아 숨쉬게 함으로써 장난감과 상호작용하며 놀이가 교육으로 확장할 수 있는 경험을 만들어낼 수 있다. AI 가전기기들 역시 제품의 성능과 기능 그리고 편의 세마리 토끼를 한 단계 향상시키는 가치를 제공해준다.
AI가 제조업에 가져온 가장 큰 변화는 ‘제품 수명 주기의 연장’이다. 과거 제품은 출고와 동시에 가치가 고정되었지만 AI가 탑재된 제품은 사용 과정에서 데이터로 학습하며 시간이 지날수록 더 똑똑해진다. 이는 제조업을 일회성 판매 산업에서 장기적 관계 산업으로 전환시키는 결정적 계기다. 이러한 변화는 기업의 조직과 전략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제조업 기업은 더 이상 하드웨어 엔지니어만으로 경쟁할 수 없다. AI 모델, 데이터 아키텍처, 소프트웨어 업데이트 체계 그리고 플랫폼 비즈니스를 동시에 운영해야 한다. 제품 개발 조직과 IT 조직, 서비스 조직의 경계는 빠르게 무너지고 있어 AI를 ‘기술 부서의 과제’가 아니라 핵심 경영 자산으로 다뤄야만 한다.
결론적으로 AI는 제조업에 과거의 영광을 되돌리는 차원이 아니라 ‘미래 산업의 중심’으로 끌어올리는 트리거가 되고 있다. 레고의 스마트 브릭, 삼성전자의 AI 가전과 LG전자의 클로이드는 모두 같은 방향을 가리키고 있다. AI는 공장만을 똑똑하게 만드는 기술이 아니라 제품에 새로운 생명력과 가치를 만들어내 제조업의 의미를 다시 정의해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