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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심과 열심 Jun 02. 2024

Q. 좋아하는 노래 가사는?

무한 반복해 듣는 한 줄을 찾아서

A.


줄넘기할 때면 음악을 듣는다. 음악 구독 사이트로 지니뮤직을 이용하고 있는데 김윤아 님의 다섯 번째 솔로 앨범이 최신 음악으로 떠 있었다. 호기심에 전곡 재생 버튼을 눌렀다. 《관능소설》이라는 이번 앨범의 큰 주제는 사랑이었는데, 마치 영화음악처럼 짙고 웅장했다. 귀를 열어두고 열심히 줄을 넘다가 나도 모르게 한 곡에서 멈추게 됐다. 새소리로 시작하며 앞선 곡들과 분위기가 확연히 달랐다.

앨범의 아홉 번째 트랙에 있는 〈해피엔딩〉이라는 곡이다. 이 곡의 전반적인 분위기는 무척 경쾌한데, 가사는 현실적이었다. 아이를 키우며 일도 잘 해내고 싶지만 그게 잘 안돼서 울컥하는 순간이 담겨 있었다. 김윤아 님의 솔직한 에세이처럼 느껴졌다.      


비오는 일요일 아침 혼자 아이와 집에서

내내 웃는 표정만 짓느라 얼얼해진 뺨

너무 오래 예쁘게만 말하면 목이 조여오고

지끈지끈 머리가 아파지는 걸 모르는 넌 모르겠지     


내 어깨엔 낡아빠진 통증이 매달려 있고

내 머리에는 흔해빠진 고민이 매달려 있고

주르륵 주르륵 주르륵 수도물 흐르는 소리


마음에 가득 찬 응어리들은 이제 닦여지지 않네     

내 어깨엔 놓을 수 없는 내가 겨우 매달려있고

내 머리에는 버릴 수 없는 내 일이 매달려있고

달그락달그락 설거지통에 손을 담그면

주르륵주르륵주르륵주르륵 눈물이 멈추지 않아   

  

비가 오는 일요일 아침 풍경으로 시작하는 곡은 오후에 비가 갠 뒤 무지개가 뜨고 아이의 작은 손을 잡고 함께 노래 부른다는 내용으로 끝난다. 수미상관을 이루는 서사 구조라서 곡을 다 듣고 나면 마치 드라마 한 편을 본 것만 같다.

이 노래 가사에서 내가 특히 좋아하는 포인트가 있는데 곡 중간과 끝의 조사 변화다.   

   

해피엔딩 이후에 삶은 흘러가고

해피엔딩 이후에 내가 여기 있어     


해피엔딩 이후에 삶은 흘러가고

해피엔딩 이후에 진짜 나를 알았어     


해피엔딩 이후에‘도’ 삶은 흘러간다고 느끼던 막막한 시선이 해피엔딩 이후에‘야’ 삶은 흘러간다고 자신의 상황을 담담히 받아들이는 것으로 바뀌었다. 이 미묘한 어조의 변화가 재미있으면서도 힘이 되었다.

한 노래에 꽂히면 질릴 때까지 같은 곡만 반복해 듣는 독특한 취향을 가지고 있는데, 이 노래는 앨범까지 사서 출근길에도 퇴근길에도 아이들과 산책할 때도 족히 100번은 들었다. 가사 내용 때문인지 비 오는 일요일이면 꼭 이 음악을 찾아 듣게 된다. 그렇게 두둠칫 개운한 리듬을 내 안에 채운다.      


이 노래를 시작으로 김윤아 님의 거의 모든 앨범을 찾아서 들었다. 중고등학생 때 듣던 〈일탈〉과 〈매직 카펫 라이드〉는 20년 만에 들은 것 같다. 그러다 또 한 곡에 꽂히게 됐다. 〈팬이야〉라는 곡이다. 아래 가사를 듣다가 숨이 멎는 듯했다.      


나는 알고 있어

너도 나와

똑같다는 것을

주저앉지 않기 위해

너도 하늘을 보잖아     


많은 사람이 하늘을 올려다보는 이유가 ‘주저앉지 않고 싶어서였구나, 다들 이렇게 살아가는구나!’ 하고 깨달았다. 완벽해 보이는 김윤아 님도 이런 감정을 느끼신 적 있다니 놀랍다. 이 노래는 에너지를 수혈받고 싶을 때마다 찾아 듣는다. 내가 나의 팬이라는 게 어딘지 오글거릴지는 몰라도 인정하고 나면 든든해진다. 아래 가사처럼 지지 않고 살아갈 수 있을 것만 같다.    

  

어디론가 남들 몰래 사라져 버릴 수만 있다면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은 없었던 사람인 것처럼

내보일 것 하나 없는 나의 인생에도 용기는 필요해

지지 않고 매일 살아남아 내일도, 내일도     


최근에 김윤아 님이 출연한 〈킬링보이스〉 채널에는 이런 댓글이 달려 있다. “김윤아가 살린 사람들이 얼마나 많을까”라고. 우연히라도 뵙게 되면 나도 그중 하나였다고 감사하다고 말씀드리고 싶다.      


"주저앉지 않기 위해 너도 하늘을 보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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