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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심과 열심 Jun 10. 2024

누군가의 기억 속에도 존재하는 너

그 사랑까지 모두 다 줄게

모처럼 평화로운 일요일. 아이들이 있는 곳에서 줄넘기를 마치고 땀이 난 얼굴을 씻고 있는데 어디서 익숙한 얼굴의 아저씨가 들어오셨다. 아빠가 다가가 인사를 건네셨다. “오랜만이에요. 잘 지내셨어요” 하고. 아저씨의 눈이 아이들 집을 향했고 그제야 나는 눈치챘다. ‘소라 아저씨구나’ 하고. 예전에 소라를 키우다가 우리에게 주셨던 아저씨를 거의 2년 만에 뵈었다.     


동물과 사람, 아니 그냥 서로를 기억하는 사이

아저씨는 소라를 보기 위해 아이들 집 앞에 다가가셨고, 소라도 아저씨를 한눈에 알아보고는 방방 뛰었다. 나는 얼른 소라에게 산책줄을 해주고는 아저씨 앞에 데려다주었다. 소라는 좋아서 안기고, 뛰고, 앉아도 하며 아저씨 곁에 껌딱지처럼 붙어 있었다. 아저씨의 말 한마디에 손도 바로바로 내주었다. 내게 “손”은 간식 있을 때만 해주면서…. 아저씨의 말을 잘 듣는 소라에게 서운하기보다는 소라가 여전히 아저씨를 기억하고, 아저씨 역시 소라가 보고 싶어 용기 내서 찾아오신 게 감사했다. 소라가 아저씨와 노는 모습이 무척 자연스럽게 느껴졌다. ‘우리 소라 사랑받았었구나’ 하는 생각에 벅찼다.      


아저씨가 소라를 보며 말씀하셨다.      


“호강하네.”     


그 소리가 마음에 찌르르 울려 퍼졌다. 우리가 소라를 못 키우고 있지는 않구나 인정받은 거 같아서 안도했다. 나도 아저씨께 말씀드렸다. “소라가 저희 집 보물인 것 같아요”라고. 그러자 아저씨도 감동한 얼굴로 나를 쳐다보셨다. 아저씨는 제주도로 이사 가지 않았으면 소라를 계속 키웠을 거라고, 여전히 문득문득 소라가 보고 싶다고 이야기해주셨다. 소라는 나만큼이나 아저씨에게도 무척 특별한 존재였다. 우리 가족 외에도 소라를 기억하고 사랑하고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소라가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소라의 정확한 나이를 알게 됐다

엄마와 나는 아저씨께 소라의 정확한 나이를 여쭤보았다. 아저씨는 7살쯤 되었을 거라고 하셨고, 어느 가족 분께 전화하시더니 8살이라고 정정해주셨다. 소라가 엄마 젖을 다 먹고 2개월이 되었을 때 아저씨가 진도에서 데려오셨고, 아저씨 댁에서 1년 반을 살다가 우리에게 오게 된 것이다. 아저씨가 소라를 데리고 오시지 않았다면 우리는 영영 만나지 못했을 거다. 소라와의 인연을 만들어주신 아저씨께 감사했다.

소라와 함께 아저씨를 배웅해드렸다. 아저씨는 마지막까지 소라에게 눈길을 주셨다. 소라도 아저씨가 떠나시는 모습을 똑똑히 지켜보았다. 나는 소라가 슬퍼하지 않을까 내심 걱정했는데, 모든 걸 다 안다는 듯이 소라는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우리 곁에 남았다.  

    

너로 인해 가능해진 것들

지난주에 참 많은 일들이 있었다. 그중 하나는 선배가 돌봐주는 강아지가 다쳤고, 그로 인해 곤란한 상황에 놓인 선배의 상황을 알게 됐다. 조금이나마 힘을 보태고 싶었다. 누군가에게 도움받기를 극도로 경계하시는 선배가 다행히 내 도움은 허락하셨다.

강아지의 퇴원 일에 맞춰 여러 물품을 선배 집으로 보냈다. 아이들을 반려하면서 쌓은 경험으로 넥카라 크기에 맞는 켄넬과 오래 씹을 수 있는 껌, 습식 캔 등을 적절히 실수 없이 보낼 수 있었다. 마음은 있어도 성격상 누군가에게 도와주고 싶다는 말을 쉽게 꺼내지 못한다. 그런데 아이들 덕분에 그 말을 할 수 있었다. 이번에도 아이들에게 기대 또 한 발자국 나아갔다.      


너로 인해 깊어진 것들

지난주 좋았던 기억 중 또 하나는 나와 성향이 비슷해 보이는 다른 팀 동료와 보낸 점심시간이다. 말하지 않아도 우리의 MBTI가 같다는 걸 서로 알고 있었다. 나도 느꼈다. 사람들 사이 그 친구가 애쓰는 모습이 보였기 때문이다. 마치 예전의 나 같았다.

맛있는 밥을 먹고 커피를 마시며 서로가 지나온 일상에 대한 이야기를 진솔하게 나누었다. 어느덧 강아지 이야기가 나왔고 네 마리의 반려견을 키우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자 동료는 지갑을 열고 지갑 바로 앞쪽에 들어 있는 강아지 사진을 보여줬다. 작년에 무지개다리를 건넌 16년간 키웠던 반려견이라고 했다. 덤덤하게 이야기하는 동료를 보며 동료와 강아지가 함께한 오랜 시간을 떠올려봤다. 아마 동료의 성장기와 학창 시절, 사회생활 모두를 그 강아지는 지켜봤을 거다. 아이들 덕분에 처음 밥을 먹어본 동료와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우리의 남은 시간을 가늠해봤다

강아지의 평균 수명은 20년이 안 되고 대형견의 수명은 더 짧다. 처음에 만났을 때와 비교해 소라의 얼굴에서도 세월의 흔적이 느껴진다. 그래서 때론 조바심도 난다. 소라가 세상에 있는 동안 좋은 경험과 기억을 가득 심어주고 싶은데, 언제 제대로 해줄 수 있을까 싶어서.

소라의 인생에서 가장 오래 만난 사람은 우리 가족들일 테고, 그중엔 나도 있다. 네가 나눠준 깊고 진한 사랑을 나도 너에게 주고 싶다. 아저씨의 빈자리가 얼마나 클지 가늠할 순 없지만 모두 다 채워주고 싶다. 너와 만나는 모든 순간 사랑을 가득 담고 있기! 이것부터 시작해볼게.


아저씨께는 차마 다 말씀드리지 못했다. 우리 사이엔 얼마나 많은 이야기가 쌓였고, 너로 인해 내가 어떻게 달라졌는지, 네가 나에게 어떤 존재인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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