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테크 기업이 왜 CES에 참가해야 하지?
이번 CES가 개최되고 나서 많은 이야기들이 오가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은 단연코 CES 2024에서 확인되는 핵심 트렌드가 무엇이냐이겠지만, 이 외에도 우리 기업들이 호구짓을 하고 있다는 이야기에서부터 빅테크 기업들은 거들떠 보지도 않은 CES에 왜 그렇게 안달이냐는 비아냥까지 있다. 다른 내용들은 그렇다 치고 빅테크 기업이 CES를 외면한다는 것에 대해서만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참고로 CES 2024의 핵심 트렌드에 대해서는 이전 글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https://brunch.co.kr/@iotstlabs/332
많은 사람들이 하는 이야기 중에 테슬라, 애플, 엔비디아, 페이스북 같은 빅테크 기업들은 CES에 참가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더 정확히 말하면 여기에 마이크로소프트, 아마존, 구글까지 언급한다. 흔히 매그니피센트 7 (Magnificent 7)은 CES 같은 거는 거들떠 보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는 사실과 다르다. 이번에도 아마존, 구글, 엔비디아는 CES에 참가했다. 그리고 테슬라나 마이크로소프트는 간접적으로 주목을 끌었다. 삼성전자는 에너지 관리 서비스에 있어서 테슬라와의 제휴를 소개했고, 월마트 키노트 발표에서는 마이크로소프트의 CEO가 깜짝 등장해 주목을 끌었다. 심지어 마이크로소프트는 2023년에는 직접 부스를 열기도 했다.
엔비디아의 경우 전시장은 열지 않았지만, 여러 개의 미팅 룸을 잡고 고객들을 만났으며 특별 발표도 했다. 나도 NVIDIA의 미팅 룸을 방문해 보지 않아서 단정할 수는 없지만, 아마 미팅 룸에 자신들의 주요 제품을 전시하고 고객들을 맞이했으리라 생각한다.
이렇게 따지면, 7개 빅테크 기업 중에 애플과 페이스북만 불참한 셈이다. 사실, 이 둘은 CES에 참가한 이력이 거의 없는 기업들이라서 굳이 이들이 CES에 참가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조차 우습꽝스럽다.
여기서 생각해 봐야 할 것이 있다. 과연 모든 기업들이 CES에 참가해야 하는 것인가?? 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사실 CES는 가전이 중심이 되는 전시회다. 수년 전부터 그 영역을 스마트폰, 자동차나 인공지능, 푸드테크, 뷰티테크, 심지어는 스페이스테크 분야로까지 확대하고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메인 전시장인 LVCC Central은 가전 기업들이 중심이 된다. 다른 분야 기업들이 참가를 하더라도 이들은 게임이나 메타버스 (물론 이들도 LVCC Central의 한쪽 코너를 차지하고 있지만) 혹은 그들이 강조하고 싶은 기술 분야에 부스를 열어야 한다. 즉, 자신들과 맞는 전시회가 아닌데 굳이 참가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가전이 아닌 다른 분야의 기업들은 왜 CES에 참가하는가? 첫번째는 CTA의 마케팅에 넘어간 것이다. 굳이 CES가 아니더라도 모바일 관련 기업들은 MWC가 기다리고 있고 (그래서 모바일 기업들은 거의 CES에 나오지 않는다.) 스마트홈 기업들은 IFA나 CEDIA 같은 전시회가 있다. (스마트홈 기업들은 CES에도 열심히 나온다. 가전이 스마트해지고 있으니..)
자동차 기업들도 주로 다양한 모터쇼에 참가를 한다. 이번에도 주요 자동차 기업으로는 벤츠, 현대, 기아 정도고 나머지는 다소 짜치는 기업들이다. 반면 자동차 부품사들은 많이 출전했다.
자 다시 질문으로 돌아가자. CES와 성격도 맞지 않는 기업들이 굳이 CES에 나올 필요가 있나? 답은 아니다이다. 즉, 나오지 않는 것이 정상인 것이다.
또 다른 측면에서 생각해 보자. 이는 CES를 넘어 전시회의 목적이 무엇이냐 하는 것이다. 사실 이 점 때문에 떼거지로 나간 우리 기업들, 눈먼 돈(세금)으로 그들을 부추긴 정부 산하기관이나 지자체 등이 욕을 먹는 것인데, 바로 고객을 만나기 위함이다. 기업은 고객을 만나서 자신들의 상품을 판매할 기회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무엇이든 해야 한다. 그래서, 어마어마한 비용과 시간을 들여가며 라스베가스로 향하는 것이다.
그런데, 주요 빅테크 기업들은 굳이 그럴 필요가 없다. 그러지 않아도 고객으로 흘러 넘친다. 자신들이 큰 돈을 들이지 않더라도 다른 기업들이 자신들을 대신 홍보해 준다. 그런데, 굳이 돈과 시간과 노력을 들여 CES에 참가할 필요가 있나? 테슬라는 광고조차 하지 않는다. 애플은 자신들의 광고비를 통신사들에게 떠넘기는 걸로 악명이 높다. 그런 기업들이 CTA 같은 양아치들에게 돈을 주고 전시회에 나갈 이유가 있을까?
그런데, 우리 기업들은 열심히 CES에 참가한다. 물론, 우리 기업들 중에도 참가하지 않는 기업들이 더 많다. 굳이 관련도 없는데 참가할 필요가 없는 것이 정상인 것이다. 그런데, 쓸데 없이 기업 이미지 홍보하기 위해서 (별로 홍보도 안 된다만) 수십 억을 들여 CTA의 꼬임에 넘어가는 기업들이 너무 많다. 그러니 많은 사람들이 이런 기업들을 보고 호구라고 한다.
말 나온 김에 우리 기업들 이야기도 해보자. 올해 CES에 참가한 우리 기업은 772개다. 미국 1100여 개, 중국 1100여 개 다음으로 많다. 전체 참가 기업이 4300여 개라고 하니 대략 20% 정도가 우리 기업이다. 여러 지표들을 기준으로 했을 때 과연 우리나라가 이런 행사의 5분의 1을 차지할 정도로 많이 참가해야 하는지 의문이 드는 부분이다.
우리 기업이 다른 나라에 비해 열심인데다 기술력도 앞선다는 점은 부정하고 싶지 않다. 이런 점은 전세계가 부러워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그런데, 그렇다고 이렇게 많은 기업이 CES에 참가해야 할까? 실제로 CES에서 만나 본 우리 기업들을 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았다. 왜 나왔는지도 모르겠다는 기업도 있고 너무 준비 없이 나왔다거나 그냥 나온 것 자체를 후회하는 기업도 있었다.
게다가 어떤 기업은 국내 전시회에서처럼 자신들의 상품과는 직접적으로 관련도 없는 구조물들을 이용해서 전시장을 도때기 시장으로 만들어 놓는다. 전시 철학을 설명 듣기 전까지는 전시 내용을 이해할 수 없는 곳도 몇 군데 있었다. 자기들끼리는 자화자찬 했을지 모르겠지만, 관람객인 직관적으로 내용을 이해할 수 없었다면 큰 돈만 낭비한 셈이다.
물론, 모든 기업이 그런 것은 아니다. 약 3분의 2 정도는 준비도 잘 했고 그래서 나름 소기의 성과도 얻었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하지만, 나머지 3분의 1은 그렇지 않아 보였다. 문제는 3분의 1에 해당하는 기업이 대략 250개 정도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좀 심하게 말하면, 이들에게 투입된 피같은 세금이 낭비된 것이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그래도 커다란 경험이 됐을 것이라고 한다. 이런 경험이 자양분이 되어 나중에 더 큰 기회를 얻게 될 것이라고 한다. 정말 배부른 소리다. 내 돈을 내더라도 뭐 하나 본전을 뽑을 만큼 열심히 하기 쉽지 않은데, 남의 돈으로 뭐를 제대로 하는게 과연 말처럼 쉬울까? 절대 아니라고 본다.
올해 CES에 참여한 우리 기업들의 숫자는 2023년에 비해 무려 29%나 증가했다. 앞에서 이야기했던 3분의 1에 해당하는 약 33%의 기업에 버금가는 숫자다. CES에 참가한 모든 기업이 알차게 준비하고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는 것은 불가능하겠지만, 30%라는 숫자는 너무나 커 보인다.
전시회에 몇 개의 기업을 내보내고, 이들 중에 몇 개의 기업이 혁신상을 수상하느냐가 KPI가 되어서는 안 된다. 그보다는 새로운 고객을 얼마나 확보하고 계약을 얼마나 따 내고 투자를 얼마나 받아내게 되었는지가 기준이 되어야 한다. 물론 이런 지표들은 단기간에 그 성과를 확인하는 것이 쉽지 않아서 보고서를 써야 하는 사람들에게는 바람직하지 않은 것일지 모른다. 하지만, 이왕 세금 쓰는 거, 좀 어렵게 쓰는게 낫지 않을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