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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생 여행자 Jun 24. 2021

엄마와 싸우고 울면서 내려온 날.

나는 왜 엄마를 떠났나. 01

※ 거친 표현이나 욕설이 섞일 수 있습니다.

양해 부탁드립니다.



 결국은 일이 터지고 말았다. 엄마는 성난 암사자처럼 길길이 뛰며 내게 고래고래 소리를 쳤다. 안 그래도 크고 무서운 눈을 치켜뜨니 맹수가 포효하는 것 같았다.


 언제나 이런 식이다. 엄마는 화가 나면 나를, 우리를 치켜뜬 큰 눈으로 쏘아보았다. 위아래로 상대방을 훑어보는 그 눈빛은 너무도 사납고 무서웠다.

 나는 엄마의 그 눈빛에 1차적으로 상처 받았고 엄마의 폭언에 2차적으로 상처 받았다. 그리고 그 상처는 시간이 지나도 아물지 않는 흉터가 되어 내 몸 곳곳에 잔인한 흔적을 남겼다.


 나랑 엄마가 싸우는 이유는 성인이 된 이후로 늘 비슷했다. 엄마가 서운해하거나 내가 서운해했고 그 뒤에는 전쟁 같은 싸움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날은 내가 엄마에게 서운함이 쌓여 결국, 봇물처럼 터져버린 날이었다. 그날따라 내 몸 상태는 궂은 날씨처럼 찌뿌둥한 것이 무거웠다.


나는 결혼 후 1년 반 만에 유산을 겪고 그 후로 3년 만에 다시 임신해서  아이(밝음이라고 칭함)를 낳고 친정에서 2주 정도 산후조리를 했었다. 그 후로 사는 곳이 서로 멀어 친정의 도움은 일절 받지 못한 채 남편과 둘이 육아를 했다. 시어머니의 도움이 간간이 있기는 했지만 그마저도 녹록지 못한 상황이었다.


 그 전에도 친정에 어버이날, 부모님 생일, 명절 등을 챙긴다며 오고 가곤 했었지만 이번에는 사정이 달랐다.


 밝음이를 낳고부터 180도 달라진 생활을 견디며 많이 힘들었기에 이번만큼은 친정에서 엄마의 따뜻한 밥을 먹으며 비비려고 했던 마음이 잘못이었을까? 철없는 딸자식의 큰 기대였을까......




 

 저녁을 먹고 아빠는 2층 안방으로 들어가신 후였고 엄마랑 나는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며칠을 머물기로 했었는데 엄마는 여전히 변한 것이 없었다.

 '바쁜 일이 없으니 너랑 밝음이랑 지내보자'라고 하더니 그 말 한지 겨우 며칠 지나자 태도가 바뀌었다. 아빠가 어딘가로 가자고 한다며 아이와 둘이 있으라는 거였다. 순간 욱하고 가슴속에서 뭔가가 치밀어올랐다.


' 그래, 늘 이런 식이지. 딸들은 결혼했다고 출가외인 이라더니 무조건 아빠 하자는 대로만 끌려다니고 '

마음속에 쌓여있던 서운함이 고개를 들었다.


 엄마와 과일을 먹으며 조용하던 저녁을 깨버린 건 나의 서운하다는 얘기로 시작되었다. 그때는 내 서운함이 그렇게까지 큰 사건으로 번질 거라는 예상은 전혀 하지 못했다.


 엄마는 내 서운하다는 얘기가 불쾌했는지, 또 심기를 건드린 건지 눈을 치켜뜨며 소리를 질렀고 그런 엄마의

변함없는 태도에 화가 난 나는 딸을 왜 그렇게 째려보고 소리를 지르냐며 반격했다.


 결국 엄마는 온몸이 흔들릴 정도로 방방 뛰면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또 시작이었다. 엄마의 대단한 성질. 아귀도 무서워서 울고 갈 기세로 나를 쏘아보며 악을 쓰고 발을 굴러댔다.

 

 " 이 은혜도 모르는 나쁜 년! 너 왔다고 너 좋아하는 찌개 끓여주고 밥 해 먹였더니 뭐가 어쩌고 저째? 서운해? 뭐가 그렇게 서운해? 어?

야! 너는 엄마가 집에 갔을 때 밥 한번 제대로 해먹 인적 있어? 너도 내 나이 먹어봐, 사위랑 딸자식들 해먹일

려고 밥 해대는 게 얼마나 힘든 줄 알아? 엉?!

그리고 아빠가 그리 불편하면 앞으로 친정 오지도 마! 나도 귀찮아 죽겠으니까 오지 말라고!!!"


 그 뒤로 이어지는 어마 무시한 폭격에 잠시 멍해있던 나도 소리쳤다.

 " 그러는 엄마는, 몇 년 동안 단 한 번이라도 밝음이 한번 봐주며 쉬게 해 준 적이나 있어? 내가 친정에 몇 번이나 와서 비볐다고, 내가 몇 번이나 엄마한테 도움 요청했다고 그래? 이렇게 악쓰고 소리칠 일이야?"


 엄마는 분노로 번뜩이눈으로 그런 나를 위아로 훑어보며 뺨을 때릴 것 같더니 내 등짝을 몇 번 손바닥으로 후려치며 당장 가버리라고 떠밀었다. 다시는 오지 말라고. 너 같은 딸년 필요 없다며 원수 보듯 하는 엄마의 눈빛에 질리고 진절머리가 났다. 무당 널뛰듯 분노가 삼켜버린 몸을 흔들며 내게 삿대질을 하고 악을 써대는 엄마의 형상...... 수십 년째 잊을만하면 반복되는 비슷한 상황이 끔찍했다.



 나도 이미 그간의 쌓인 것이 폭발해서 터져버리기 일보 직전이었고 그 감정들은 눈물이 되어 흘러내렸다. 서럽게 울면서 밝음이를 바라보니 밝음이 역시 울부짖으면서 우리에게 손을 내밀고 있었다. 외할머니와 엄마가 서로 악쓰고 싸우는 모습에 많이 놀란 것 같았다. 처음 보는 처량한 아이의 모습에 더욱 가슴이 미어지는 듯했다. 그런 밝음이를 쳐다보는 엄마의 시선이 곱지 않다는 걸 보는 순간 쌓였던 화가 가슴속에서 더욱 치밀어 오르는 듯했다.


 어느 틈에 남동생이 들어왔는지 소리치는 엄마를 뜯어말리며 안방으로 들어가라고 떠다밀고 있었다. 평소에는 있는 듯 없는 듯 온순한 남동생이 엄마에게 제발 그만하라고, 엄마는 독사라고 소리치는 걸 들으며 울고 있는 밝음이를 얼른 품에 안고 우리 짐이 놓인 방으로 들어갔다. 그 뒤로 엄마가 안방 문을 쾅 소리 나게 닫고 들어갔다.

 아빠는 시끄러운 소리가 나자 잠시 나와서 '왜 또 그래, 그만해.' 하고 한 마디 하시더니 2층 안방으로 들어가서 나오지 않았다. 잠시 후 안방으로 들어간 엄마와 아빠의 흥분한 말소리가 들려왔다.


 두 볼로 쉴 새 없이 흘러내리는 눈물은 닦을 새도 없이 정신없이 짐을 쌌다. 일분일초라도 빨리 이 집을 벗어나고 싶었다. 경기할 정도로 울고 있는 밝음이를 보고 있으니 가슴이 찢어질 듯 아프고 후회스러웠다. 차라리 친정에 오지 말았어야 했는데.





 엄마를 안방으로 쫓아낸 남동생이 와서 택시 타는 곳까지 태워준다고 했다. 안쓰러운 눈으로 큰누나와 조카를 보던 남동생에게 고맙다 하고 택시를 타러 갔다.

 그때가 밤 11시를 향하는 시각이어서 가만있어도 땀이 흐를 한여름이었지만 사방은 깜깜했고 더웠던 기억도 나질 않는다.


 택시를 타고 가며 남편에게 전화를 해서 대충 상황을 이야기하고 이어서 여동생에게 전화했다.

 내가 울며 이야기하자 여동생은 당한 나보다 더 분통을 터뜨리며 끊었다. 나중에 들으니 그간 엄마에게 쌓였던 서운함과 원망을 내 몫까지 퍼부었다고 했다.





 꽤 긴 시간을 달려 집에 도착하니 남편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우리를 맞아주었고 별 말없이 나를 안아주었다.

남편도 말은 안 했지만 분명히 화나 있을 것이었다.

 울면서 안겼던 밝음이는 꿈나라로 가있었고 잠든 아이의 얼굴을 보자 더욱 많은 감정들이 올라와서 마음이 진정되지 않았다.


 엄마와의 지난 30여 년... 어디서부터 감정이 꼬였으며 얼마나 서운함이 쌓였고, 무엇이 잘못된 걸까? 흔히 모녀 사이를 '애증의 관계'라고 표현하던데 세상의 모든 모녀 관계가 애증일까?

 온갖 생각을 하며 잠을 설치던 그날, 나는 전쟁 같았던 하루를 겨우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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