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번에는 남편에게 물어보기로 했다. 예상했듯이 남편은 '어머님이 잘못했다고 느끼고 계신다면 한번 만나 봐도 괜찮지 않을까? 자기가 결정 할 일이지만 난 자기랑 어머님이랑 잘 지내면 상관없어 '
남편이 싫어하는건 엄마와의 관계에서 내 마음이 다치고
괴로워하는 거니까 내 의견이 최우선이었다.
나는 몇 번의 고민끝에 엄마를 만나보기로 결심했다.
'한번 정도 만나서 얘기해보는 것도 나쁘진 않겠지, 그리움
이 크니까 별일 없겠지' 하고 마음을 가라앉혔다.
남도 아니고 수십년을 살았던 엄마를 보는 일이 이렇게 힘들
고 떨리는 일이될지 몰랐었다.
내가 엄마를 보겠다는 의지가 엄마에게 전해졌고 만남의
날은 일찍 정해졌다.
엄마가 어떻게 변했을지, 날 보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혼자 가야하나, 밝음이만 데리고 가야하나....
그날이 되었고 나는 두근거리는 마음을 안고 아들과 함께
여동생의 집으로 향했다. 한시간의 거리가 어떻게 흐르는
지도 모르고 도착하니 여동생과 조카 선아, 제부가 반갑게
맞아줬다. 셋 다 상기된 표정이었다. 그리고 곧 엄마가
눈물젖은 얼굴로 나와서 나를 끌어안으며 울었다.
' 아가, 우리 큰 딸... 엄마보러 와줬니? 미안하다.... 엄마
가... 네가 너무 보고싶어서.. 참을수가 없었어. 엄마 안보고
싶었어?'
마치 이산가족 상봉이라도 한듯 얼떨떨하고 실감이 나지
않는 상황이었다. 엄마는 밝음이도 안고 볼을 부비며 계속
눈물을 흘려 눈까지 충혈되었다.
우리는 두세시간을 이야기했다. 못보는 동안 쌓인 이야기
들을 조금이라도 풀어야 할 의미가 있었다.
꽈배기처럼 틀어졌던 모녀 사이가 풀려야 할 이유가 있었
다. 우리 모두는 언젠가 죽을테니 그전에 서로를 이해하고
보듬어야 할 과제가 주어졌다.
아이들은 당연히 상황을 파악하지 못하니 꼬맹이들끼리
따로 베란다에서 놀고 엄마와 나 여동생은 대화를 이어갔다.
엄마가 먼저 지난 몇년간의 심정을 털어놓았고 들으면서
서 조금씩 내 감정을 풀어냈다.
' 여행아, 엄마가 그렇게 무서운 엄마였니? 저번에도
네 동생한테 들었지만 정말 너희들한테 욕하고 때리기도
하고 그랬어? 딱 한번만 그랬던게 아니라 몇 번이나 그랬다
고...? 하... 너희들한테 너무 미안하구나.... 내가 죄가 많다.
정말 미안하다...... '
엄마는 진심으로 마음 아파하며 눈물을 흘렸고, 나는 그런
엄마의 손을 잡아주었다. 이전과는 다른 엄마의 뉘우치는
모습에 내 얼었던 마음도 조금은 녹는것 같았다.
엄마를 안본시간에 어색함이 자리잡은듯 낯선 기분이
들었다. 3년이면 짧은 시간은 아니었나보다.
딸, 엄마가 부끄럽고 미안해... 그때는 엄마가 삶이 너무 힘들어서 미쳐있었나봐. 미쳐야 살 수 있는 환경이었어. 엄마는 늘 할머니가 무섭고 싫어서 '나는 딸들한테 우리 엄마처럼 되지 말자' 고 다짐했었는데 결국은 너희에게 똑같이 큰 상처를 준 엄마였다니 너무너무 가슴이 아파.... 이제부터 엄마가 너희에게 잘못했던거 몇배로 갚는 다는 심정으로 잘할게. 우리 남은 시간들은 잘 풀어나가자. 앞으로는 전같은 일 없도록 엄마가 많이 노력할게. 내 아가야, 이 엄마를 만나줘서 고맙고 미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