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루밍 Aug 22. 2021

씁쓸한기억

- 한국어교실에 민원이 들어왔습니다

나는 중국어를 가르치고, 한국어를 가르친다. '중국어 강사', '한국어 강사(교원)'이다. 한국어를 가르칠 때는 보통 다문화가정 자녀들을 만나고 있기 때문에 '다문화교실 강사'나 '한국어교실 강사'도 되었다가, 중국어권 학생들을 대상으로 중국어로 한국어를 가르치기도 하니 '이중언어 강사'가 되기도 한다. 


이중언어 강사로서 첫 면접은 ㅁ초등학교였다. ㅁ학교는 대부분의 초등학교 다문화교실이 방과 후에 이루어지는 것과는 달리 오전에도 수업이 있었다. 나에겐 오히려 오전 시간을 활용할 수 있어서 좋겠구나, 생각했다. 


첫 면접에 조금 긴장했지만 선생님들의 질문에 잘 답변하고 있었는데, 면접관 선생님의 다음 말씀에 면접에 끝까지 집중할 수가 없었다. 


"저희가 중국어를 가르칠 수 있는 이중언어 선생님을 모시려고 하는 것은, 다문화 학생들에게만 한국어 수업의 기회를 따로 제공한다는 학부모님들의 민원으로, 일반 학생들에게도 정규수업에서 중국어를 배울 수 있도록 하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네? 민원이요? 


하마터면, 입 밖으로 내뱉을 뻔했다. 


오전 수업의 미스터리가 풀리는 순간이다. 그러니까, 오전에는 일반 학생들에게 중국어 수업을 하고, 방과 후에는 다문화교실을 운영하며 한국어 수업을 하는 방식이었다. 


결과적으로 나는 불합격했고 ㅁ초등학교에서는 수업을 할 수 없게 되었지만, 그 '민원'이라는 말은 여전히 지워지지 않았다. 면접관 선생님은 분명 '학부모들의 민원'이라고 말씀하셨는데, 왜 학부모님들은 다문화가정 자녀들이 '한국어 수업'을 받는 것에 민원을 넣었을까. 


한국어 교원 자격증 공부를 위해 사이버대학에 입학하고 관련 수업을 들으며 우리나라의 다문화 관련 정책이나 법규 등에 대해 알아가고 있다. 공부를 하며, 우리나라의 다문화정책에 대한 '역차별' 논쟁을 처음 알게 되었는데, ㅁ초등학교의 한국어교실이 이 논쟁의 상황에 처한 듯 보였다. 


현재 우리나라의 다문화 정책은 한마디로 말하면 통합적이지 못하다. 하나의 관리 시스템 하에 운영되는 것이 아니라, 법무부, 여성가족부, 교육부, 보건복지부 등 여러 부처에서 관리하며 관련 정책을 쏟아내고 있고, 당연히 이로 인한 중복지원이나 그 반대의 소외대상이 생겨난다. 그로 인한 예산 낭비와 각 부처 간의 갈등도 야기된다. 이와 더불어 뿌리 깊은 단일민족이었고, 또 그것에 자부심을 느꼈던 우리나라 사람들은 아직도 '다문화'를 잘 받아들이지 못한다. 수용하고, 포용하며 다양성을 인정하는 '다문화주의'가 아니라, 소수를 우리의 것으로 만들려는 '동화주의'적 관점이 강하고, 이마저도 받아들이지 못하고 배척한다. 


정부의 다문화정책에 대한 역차별 논란의 중심은 아마도 '우대'라는 말에 있을 것이다. 주택, 대학입시, 취업, 어린이집 입소 대기 순위 등 여러 분야에서 이들에 대한 우대 정책이 존재한다. 이 우대정책들이 역차별 논란의 중심에 섰고, 그로 인해 정부도 임대주택 당첨기준에 다문화가정의 소득 수준 경계를 두는 등 점차 정책을 수정해가고 있다. 하루빨리 좀 더 정제되고 통일되기를 소원한다. 


내가 존경하는 중앙대학교 김누리 교수님의 저서 <우리의 불행은 당연하지 않습니다>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한국 사회는 인권 감수성이 대단히 모자라는 사회입니다. 기본적으로 '사람에 대한 예의'가 정말 부족합니다. 특히 난민이나 장애인, 문화적, 성적 소수자에 대한 기본적인 인식이 상당히 왜곡되어 있습니다. 

: 경쟁의 덫에 걸린 한국 교육 - 인권 감수성과 소비 감수성의 부재 - (p.108)

나는 '인권 감수성의 부족'이라는 관점에 매우 동의한다. 각종 날것의 혐오발언이 쏟아지던 예멘 난민사태에서 보듯 (이때의 난민 신청자 549명 중 난민 인정자는 단 두 명에 불과했다), 우리나라는 아직 인간에 대한 혐오가 죄가 되지 않는 나라이다. 다문화가족은 현재 우리와 함께 하고 있고 앞으로도 그러하다. 너희들에게 내가 낸 세금을 쓸 수 없다고, 너희 나라로 돌아가라고 혐오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계속되는 역차별 논란은 정부의 시혜성 정책과 우리나라의 인권 감수성 부족이 더해져 나온 결과물이라는 생각이다. 


ㅁ초등학교의 학부모님들의 민원은, 아마도 우리 학생들은 방과 후 수업에 비용을 지불하고 있는데, 저 학생들은 무슨 특혜로 비용도 지불하지 않고 수업을 듣고 있지요? 에서 발현된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 역시 '우대'라는 생각에서 기인한 것이다(이것은 내 생각일 뿐이다. 확인한 바는 없으므로). 


아이들은 ㅁ초등학교 학생들이다. 외국인이든, 이중국적을 가졌든, 귀화를 해서 한국인이든 말이다. 아이들은 한국어가 많이 부족하고, 한글을 몰라 교과서를 읽을 수 없다. 이런 아이들이 방과 후에 따로 시간을 내 한국어 수업을 받는 것이 우대 정책일까. 


한 초등학생이 2학년인데 한글을 잘 못 읽는다. 담임선생님은 방과 후 기초학력지원 교실에 그 학생을 보내 학습에 도움을 받도록 한다. 이것도 특혜라고 말할 수 있을까? 


씁쓸함이 남는, 기억이다. 






작가의 이전글 겔의 존재감 2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