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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밍 Aug 17. 2021

겔의 존재감 2

겔의 인기는 사뭇 진지했다. 아이들을 보고 있으면 웃음도 나고 귀여웠다.


1학년 아이들 수수, 나딘, 정원, 유나는 겔을 좋아했다. 특히 나딘은 오빠 옆에 앉고 싶다며 2교시에 겔이 오면 그 옆으로 자리를 옮겼다. 한글 자모를 배우고 단어를 써 보는 시간, 겔은 당연히 1학년 동생들보다 더 깔끔하고 빠르게 쓰기를 완성했다. 아이들은 겔의 그런 모습에 감탄하며 "오빠~, 와우!" 연신 엄지를 치켜세웠다.


겔은 오빠로서의 역할도 톡톡히 했다. 내가 앞에서 설명할 때에도 수다를 멈추지 않는 정원에게 "쉿!" 하면서 제지시켰고, 색종이를 이용한 활동 후에는 아이들에게 앉은자리를 정리해서 쓰레기를 치우도록 지휘하며 몸소 모범을 보였다. 특히 젼이 나의 눈을 벗어나 뭔가 장난을 시도하려는 조짐이 보일 때는, 마치 나이차이가 많이 나는 큰 형아가 막내 동생을 혼내듯 눈빛으로 젼을 압도했다.


하루는 수업시간에 갑자기 겔이 손을 들고 질문한다.

"선생님, 얘들아, 과자 가져왔어?"


아이들도 나도 무슨 말인지 몰라 잠시 생각하고 있는데, 다시 한번 똑같이 말한다.


아. 끝을 ~왔어?라고 올려서 잘 이해하지 못했는데 본인이 과자를 가져왔다는 뜻인 것 같다.

"겔, 과자를 가져왔어요?"


겔은 이제야 통했다는 듯 "네네네네!!" 하면서

"선생님, 먹어요, 괜찮아요?"라고 묻는다.


"네, 지금은 공부해요, 쉬는 시간에 같이 먹어요. "


2교시가 끝나고 1학년들이 집에 가기 전 겔은 포테이토칩 육개장 사발면 맛을 꺼내 놓았다. 아이들은 서로 너무 맛있다며, 오빠 고맙다며 먹는다. 그 와중에 나딘은 정원이 너무 많이씩 먹는다며 울상을 짓는 바람에 서로 한참을 또 웃었다. 동생들과 나눠 먹고 싶어 들고 온 겔의 마음이 예쁘다.


한바탕 짧은 과자 파티가 끝나고, 1학년 아이들은 집으로 돌아갔다. 겔은 3교시를 다시 공부에 열중한다. 이 시간은 수다쟁이 저학년들이 없어서 나도, 겔도 더 집중할 수 있다. 겔이 조금 힘들 법도 한데, 매번 괜찮다고 한국어 공부 재미있다고 나를 안심시킨다.  


"오--!! 선생님, 너무 무서워요!!"


겔과 수업에 집중하고 있는데, 갑자기 나딘이 들이닥쳤다. '들이닥쳤다'라는 표현이 딱 맞는 게, 정말 교실의 그 큰 문을 한번에 확 열면서 뛰어 들어왔다(평소에는 화장실 갈 때도 낑낑거리며 두 손으로 겨우 여는데). 겔과 나는 깜짝 놀라서 무슨 일인지를 물었는데, 나딘의 설명으로는 친구들과 모두 함께 하교하는데 본인만 뭔가 늦어서 아이들을 놓쳤고, 혼자 5층에서 1층까지 내려가다가 3층쯤에서는 도저히 무서워서 못 내려가겠다는 것이다. 학교에 아무도 없다면서. 그래서 다시 올라왔다고.


나딘이 조금 엄살을 떨고 있다고 느껴졌지만 사실 학교에 사람이 없는 것은 맞았다. 전 학년이 온라인 수업으로 전환되어 방과 후 수업도 없으니 이 시간에는 대면 수업을 하는 돌봄 교실과 한국어교실에만 학생들이 있었다.


내가 괜찮다고 달랬지만 나딘이 혼자서 갈 기미가 없자, 겔이 자기가 데려다주겠다며 같이 가자고 한다. 둘이 가는 뒷모습을 니 딱 동생 학교 데려다주는 오빠 모습이다.


조금 후에 겔이 돌아왔다. 어디까지 데려다주었냐 물으니 교문 앞까지 데려다주었다 한다. 5층까지 다시 올라오는 데 선생님이 기다릴 것 같아 엘리베이터를 타고 왔다고.


겔의 마음 씀씀이가 너무 예뻐서 정말 진심으로 "고마워요."라고 인사했다.


[커버 이미지: Photo by Kevin Gent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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