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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밍 Aug 16. 2021

겔의 존재감

- 왜 긴장하는 거니?

겔은 듬직하고 성실한 학생이다. 내가 맡고 있는 중도입국자녀 한국어교실에서, 사실 겔이 유일하게 최근 '중도입국'한 학생이다. 부모가 어떤 이유에서 한국에 먼저 입국하고, 그 후 본국에 있던 자녀를 불러 한국에 같이 머무르게 될 경우 이 아이들을 중도입국자녀라고 부른다. 한국에서 출생하여 한국어로 의사소통이 가능한 다른 다문화가정 아이들과는 달리, 중도입국자녀는 한국에 갑자기 오게 된 경우가 많고, 갑작스러운 한국행으로 인한 정서적인 불안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에 항상 그런 부분을 보듬고 이해하며 수업을 꾸려나가야 한다. 


ㅅ초등학교는 채용공고에서 '중도입국자녀 한국어교실' 강사를 모신다고 했지만, 반이 꾸려지고 보니 한국에서 출생한 아이(그래서 한국어로 의사소통이 되는), 한국에 온 지 몇 년 되었지만 한국어를 거의 못하는 아이가 섞여 있었다.  


초등학교에서 한국어교실을 운영하는 데에 있어 가장 힘든 점은 아마도 학생들의 한국어 레벨 차이로 인한 수업 고민일 것이다. 학생들이 입국한 이유, 시기, 부모의 국적, 가정에서의 한국어 사용 여부 등등 많은 이유로 인해 아이들의 한국어 실력은 천차만별인데, 한국어교실이라는 하나의 이름으로 하나의 반으로 운영하는 곳이 많기 때문이다. 


ㅅ학교 담당 선생님께 수업 시작 전, 가능하면 고학년, 저학년은 나누어 주십사 부탁드렸다. 내 건의는 다행히 받아들여져서 한국어교실을 신청한 1학년 5명과 6학년 1명은 두 반으로 나뉘어 수업을 진행하게 되었다. 저학년은 방과 후 1시부터 2교시를 진행하고,  마지막 3교시에 6학년 학생을 1:1로 수업하는 방식으로 시간표를 짰다. 


두 차례 이렇게 수업을 진행했을 때, 갑자기 중도입국한 겔이 한국어교실에 왔다. 


담임선생님 말씀으로는 겔은 작년에 부모님 방문을 위해 잠시 한국에 입국했는데(그래서 지금까지는 한국어 학습에 대한 필요성을 못 느꼈고) 코로나와 엄마의 동생 출산 등의 이유로 본국으로 돌아가고 있지 못한 상태라고 하셨다. 그런데, 문제는, 겔의 나이는 한국으로 치면 5학년 나이인데, 한국어 실력은 그렇지 못해 3학년으로 편입하였고, 담임선생님께서는 나이가 있느니 고학년 반에 들어가는 것이 어떻겠냐고 제안하셨다. 하지만 1:1로 수업하는 6학년 리아는 이미 한글은 대부분 읽고 쓸 줄 안다(게다가 리아 역시 6학년이지만 실제 나이는 중2). 겔은 한글 자모를 읽을 줄 모른다, 3학년이지만 실제 나이는 5학년이고, ...하- 총체적 난국. 고민 고민하다가 저학년반 2교시부터 합류하여 한글 자모를 익히고 3교시 리아와는 의사소통에 중점을 둔 수업을 진행하기로 하였다. 일단 이렇게 해 보자. 


그런데, 겔이 2교시 저학년반에 합류하게 되자, 우리 저학년 귀욤이들은 약간 긴장한 눈치다. 누가 봐도 겔은 덩치가 커서 3학년처럼 안 보인다(나랑 키가 비슷하다). 특히 수업시간마다 집중시간이 짧고 산만한 젼은 겔이 오자 갑자기 얌전해졌다. 아이들의 눈치작전 덕분에 겔이 합류한 첫 시간은 어딘지 모를 긴장감과 함께 아주 부드럽게 흘러갔다. 



"음... 선생님, 언니 안 와요?"


다음 날, 수업시간에 유나가 물었다. 언니? 유나에게 언니가 있었나? 

내가 잘 못 알아듣자 유나는 어제 겔이 앉았던 자리를 가리키며 다시 물었다.


"언니 안 와요?"


아.

"유나는 여자예요, 겔은 남자예요. 그래서 '오빠'라고 말해요. '언니' 아니에요."

"네, 오빠 안 와요?"

유나가 묻자 다들 궁금하다는 듯이 날 쳐다본다. 


"겔 오빠는 쉬는 시간 끝나고 와요." 

유나, 나딘, 수수, 정원은 오빠가 오는 게 좋다는 듯, 다행이라는 듯 서로 웃었다. 그때 난 보았다. 마스크 속에서 삐죽이는 젼의 입술을. 겔의 무엇이 젼을 긴장하게 만드는 걸까. 아이들을 긴장시키는 겔의 효과가 언제까지 지속될지 궁금하다. 


[커버이미지: Photo by Feliphe Schiarolli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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