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하루에만 생일파티 두개가 있었다. 일곱살이 된 남자아이와 여섯살이 된 여자아이의 생일 선물을 사러, 아이들과 함께 장난감 가게에 갔다. 아이들 눈에는 가격이나 상표보다, 우선 부피가 큰 장난감이 제일 먼저 눈에 띄는 법이다. 아이들이 양손으로 감싸 안지도 못할만큼 큰 선물을 사서 포장하고, “Happy Birthday! You are my best friend. I love you.” 와 같이 아이들만 나눌 수 있는 말을 꼬불꼬불한 글씨로 써 넣은 카드도 써두었다. 생일 파티에 초대받은 아이들도 이렇게 신나는데, 생일을 맞은 아이는 과연 얼마나 설레일지 짐작이 되어 웃음이 났다. 며칠전에 잠깐 만났던 아이의 친구는, 생일이 한참 남았는데도 한창 들떠서 생일 파티에 대한 얘길 하고 또 했었다. 기억은 잘 나지 않지만, 예닐곱살 생일은 누구에게나 저렇게 들뜨고 신나는 날이었으리라 생각했다.
즐거운 생일 파티였다. 무엇보다 생일인 아이도 생일파티에 초대된 아이들도 흡족하고 기분 좋은 날이었다. 집에서는 한꺼번에 다 먹지 못하던 달콤한 간식들도 무제한으로 먹고, 좋은 날씨에 놀이터 옆 테이블에서, 야외 풀장에서 마련된 생일파티는 그 또래 아이들에게 최고였다. 생일을 맞은 아이의 엄마가 정성껏 준비한 음식과, 아이들 친구를 위한 작은 선물들에 감탄했다 선물을 주러 온 아이들도 선물을 받게 되었으니 이보다 더 신이 날수 없었다.
생일을 맞은 아이는 엄마가 열심히 준비한 프로그램에는 관심이 없고, 한쪽에 쌓여있는 커다란 선물 상자에 온 정신이 쏠려 있었다. 포장지를 벗겨내고 선물을 확인할 용기는 없어서, 상자를 들었다 놨다 하며 무게와 부피로 선물을 가늠하는가 하면, 상자를 몇차례 흔들어보면서 고개를 갸웃거리기도 했다. 어서 이쪽으로 오라는 엄마의 외침을 뒤로하고, 선물더미에서 눈길을 떼지 못하는 아이의 모습은 언제봐도 웃음이 나는 예쁜 풍경이다.
역시 생일 파티의 하이라이트는 선물열어보기이다. 모든 선물을 차지하고 그야말로 왕좌에 앉은 아이는 천하에 부러울 것이 없어보였다. 선물 박스에 붙어 있는 카드에는 관심이 없다. 포장지를 벗겨내고 선물박스가 실체를 드러낼때마다 왕좌 앞에 쪼르륵 앉아서 기다리던 친구들의 입에서는 다양한 탄성이 흘러나왔다.
와 ... 우아 ... 야 ... 하아 ...
우리가 준비한 선물을 열어볼 차례이면 더욱 더 긴장하며, 친구의 표정을 재빨리 살펴본다. 선물을 확인하자마자 짓는 처음 그 표정이야말로, 선물이 맘에 드는지 아닌지를 당장에 보여주는 솔직한 마음이기 때문이다. 눈이 휘둥그레져서 기쁨을 주체할수 없는 표정을 보면 함께 신이 난다. 당장 박스를 열어보겠다며 남은 선물들을 내팽게쳐 버리거나, 선물을 열어봤을때 표정이 영 신통치 않으면, 이제 엄마와 어른들이 나설 차례이다. 분위기를 몰아 더 큰 탄성을 더해주거나, 차분히 마지막 선물까지 열어보게 한다. 친구가 열어보는 선물을 다 지켜본 아이들 누구도, 친구가 좋아하니 그걸로 되었다고 생각하지는 않을 것이다. 자기가 평소에 갖고 싶던 장난감을 목격하면 씁쓸해하고, 다음 자기 생일에는 어떤 선물을 받고 싶은지 점찍어 둔다. 가끔은 친구 생일 선물을 좀 갖고 놀면 안되겠냐고 떼를 쓰다가 결국 속상해서 울고불고 하는 경우도 생기는데, 당사자와 부모들은 당혹스럽겠지만, 옆에서 보기에는 이보다 더 리얼한 즐거움이 없다.
생일 파티로 동분서주했던 하루가 다 갔다. 생일 당사자도 아니고, 생일 초대 받은 사람도 아닌데, 아이들 데리고 여기 저기 다니느라 나만 지쳤다. 저녁을 먹으면서 아이들이 오늘 있었던 생일파티 이야기를 나눈다. 역시 선물 이야기는 빠지지 않았고, 먹었던 케익이나 게임 얘기에도 신이 났다. 그래서 재미있었는지 물어봤더니 그렇다고 대답한다. 친구는 생일 선물을 진짜 많이 받아서 좋았을 거라고 얘기하고, 자기도 작은 선물을 받아와서 기분이 좋다고 한다. 역시 기승전-선물, 생일파티의 숙명이다.
얘기를 이어가다가, 아이가 묻는다.
"엄마도 재미있었어?"
기습적인 질문에, 어깨를 들석이며 "글쎄 ..." 했더니,
"왜 엄마는 재미없었어?" 라고 다시 묻는다.
"음 ... 엄마도 엄마 친구 생일 파티에 가고 싶어." 라고 말해버리고 고개를 들어보니,
식사를 하던 남편은 옆에서 킥킥 웃고, 애들은 어이없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어른들 생일파티도 해? 어른들은 애들하고 집에서 해야지.
아빠 생일날, 엄마랑 아빠랑 나랑 언니랑 넷이서 집에서 케익먹은것 처럼.
엄마도 수영장이나 놀이터에서 하는 생일파티에 가고 싶은거야?" 둘째가 또박또박 따져물었다.
이야기가 어디까지 흘러갈지 몰라 웃으며 대충 얼버무리며 식사를 마쳤다.
그러나, 나도 내 친구 생일파티에 가고 싶다고 말한건 진심이었다. 립스틱이든 스카프든 친구가 갖고 싶어하던 물건과 꽃 한다발, 그리고 약속장소에 가는 길에 제과점에 들러 작은 동그란 케익도 하나 사서, 좀 좋은 식당에서 밥을 먹고 싶었다. 식당 사장님께 양해를 구하고 작은 목소리로 생일축하 노래를 해주고, 준비해온 선물을 열어볼때마다 기분 좋은 콧소리로 고맙다고 축하한다고 얘길해주며, 따뜻한 커피나 시원한 맥주 한잔을 나눠 마시면 더 없이 좋을것 같다. 선물 받은 립스틱을 그새 입술에 발라보거나 스카프를 목에 두르기도 할테다. 그렇게 함께 했던 생일 파티가 쌓여가며 지금 이 나이가 되었는데, 나와 함께 생일 파티를 했던 친구들은 지금은 누구와 생일파티를 하는지 모르겠다. 대부분은 나처럼 집에서 아이들과 여느 다른 어른들처럼 생일을 보내겠고, 또 누군가는 지금도 여전히 친구들과 웃음소리를 날리며 생일파티를 하고 있겠지. 밥상을 치우고 설거지를 하는 동안, 가만히 머릿속에 남겨진 생일파티 장면 몇개가 떠올랐다 지워졌다 했다.
그야말로 '어른'이 되어서 만나는 친구와는 서로 생일을 물어보는 일은 드물다. 어릴때처럼 생일이 언제인지 크게 궁금하지 않아서 일까, 생일 말고도 나누어야 할 얘기가 많아져서 일까. 어떤 이유로든 생일을 묻는 일은 없는것 같다. 가끔 어쩌다가 생일을 알게 되면 멋쩍게 축하인사를 건네지만, 내가 미리 알아서 챙겨주지 않은 생일이니 머쓱하기만 했다. 아주 가끔 내 생일을 모르는 사람들 몇명과 약속을 잡아 점심을 먹으며 오늘 내 생일이니까 내가 밥을 사겠다고 하면, 생일인지 몰랐다며 오히려 미안해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아이쿠 .. 내가 괜히 그런말을 했구나 싶기도 했다.
어쩌다 전해주게 되거나 받게되는 어른들의 생일 선물은 대게 아무거나 살수 있는 기프트카드가 대신한다. 어른들은 부피만 큰 선물을 좋아하지도 않으니 선물을 하기가 쉽지 않고, 서로의 취향도 잘 모르니 옛날처럼 내눈에 예쁜 핑크색 립스틱을 가볍게 살수도 없으니, 기프트카드를 선물하는 것이 주는 사람도 받는 사람도 안전하다. 그러나 그 기프트카드는 대개 지갑에서 오래 맴돌다가 장볼때나 아이들 물건을 살때 아무 생각없이 써버리고 말게 된다. '아, 저건 내 선물로 받은 기프트카드니까 내 물건을 사야지.'라고 생각했다 하더라도, 일주일이 지나고 한달이 지나면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내가 건네준 기프트카드도 그집 아이들 속옷을 사거나, 어느날 장보는데 쓰여졌을거라고 생각하면 웃음이 나온다.
아이들 친구 생일파티 덕분에 긴 시간여행을 했다. 오랫동안 한국을 떠나 살고, 가정을 꾸려 아이들을 키우면서는 아이들 친구의 생일파티만 쫓아다녔다. 지난 시절 잃어버린 생일파티를 되돌려 하지는 못하더라도, 함께 생일을 축하해주고 웃고 떠드는 것이 마냥 좋았던 사람들마저 잃게 되는게 아닌지 가끔은 허전했다. 아이들과 남편, 내 부모님의 축하는 늘 분에 넘치는 커다란 기쁨이었지만, 종종 '아, 오늘 누구 생일이네.'라며 친구들의 생일이 떠오르기도 했다. 어릴적 친구는 아무리 오랫동안 잊고 지냈어도, 다이어리에 스티커를 붙여가며 별표를 해뒀던 생일은 희안하게 기억에 남아있었다. 누구의 생일인지 떠올랐어도, 시간차가 14시간이나 나는 이 곳에서, 오랫동안 연락도 하지 않던 이에게 이제와 생일축하를 하기는 어려웠다. 그냥, '아 오늘은 누구의 생일이었는데'라고 혼잣말을 하며 이런저런 집안 일을 하다가 보내기 마련이며, 이제는 그렇게 기억에 남는 생일도 몇 남지 않았다.
애들 생일파티가 마음을 흔든 탓일까. 생일이 한참 전에 지낸 친구에게 케익 기프티콘을 보냈다. 사실 한국으로 기프티콘을 보내는걸 한달 전에야 배웠다. 전화카드를 사서 국제전화를 하거나 전신으로 송금을 하던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면 고리타분하기 그지 없겠지만, 페이스타임을 하고 페이팔로 돈을 보내는 것에 더해 메신저로 기프티콘을 보내는 건, 기술발전이 느려도 한참은 더딘 미국에 사는 나에겐 새로운 경험이었다. 느닷없는 케익 기프티콘에 놀란 친구가 이게 뭐냐고 바로 메세지가 왔다.
"우리 옛날에 생일 파티 같이 했던 생각이 나서. 지금은 네 가족들이 축하해주는 생일을 행복하게 보내겠지만, 가끔은 옛날처럼 친구들에게 받는 생일축하도 생각나는것 같아. 립스틱 하나 스카프하나 못보내지만, 맛있는 케익 먹고 친구가 축하해주는 생일도 즐겨. 우리딸이 친구 생일카드에 이렇게 쓰더라. I love you. 나도 그래"
고작 생일축하를 건낸거였는데, 내 마음은 더 뜨거워졌다.
그저 덤덤한 말들을 메세지로 보낸것 뿐인데도 목이 잠겨 말을 할수 없는 기분이었다.
"지지배 … " 친구가 민망하면 잘 쓰던 말이 메신저를 타고 왔다. 뒤에 점 세개로 친구의 마음이 전해졌다. 이내, "나 울것 같애" 라고 다시 메세지가 왔다.
더 감성적이 되면 곤란할것 같아서, "울면 안돼!!!" 뒤에 우스꽝스러운 이모티콘을 두세개 보내고 대화를 마쳤다. 그러지 않으면 우리 둘다 오늘 하루를 잘 마치지 못할것 같았다.
앞으로도 애들 생일파티에 갈일이 생기면 오늘 친구에게 늦은 생일케익을 기프티콘으로 보낸일이 떠오를것 같다. 한해 한해 잘 살아가고 있다고 수고했다고 말해주고 싶은 친구들에게, 생일을 딱 맞춰보내지는 못해도 축하를 보내야겠다고 생각했다. 예전에 한자리에서 케익 촛불을 끄고 노래를 부르던 생일파티는 아니지만, 축하한다는 마음과 곁에 남아줘서 고맙다는 마음은 멀리서 보내는 메세지로도 전해질 거라 믿는다. 핑크색 립스틱이나 스카프가 아니라 케익 기프티콘이지만, 마음은 온전히 가 닿길 바란다. [YJ]