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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잎풀 Sep 03. 2016

배낭이 알려준 삶의 무게

선택하고 덜어내기




"♬♬♪♩♬♬♪♩"


한동안 조용했던 핸드폰이 울린다. 오랜 친구 S인 것을 확인하고는, 나는 지레짐작을 했다. 평소 고향에 내려올 때면 소식을 전했던 지라 습관적으로 그렇게 생각했나 보다. 통화 버튼을 누르고 망설임 없이 먼저 인사를 전했다.


"어, S. 내려왔나."

"Z. 서울에 올라와서 잠깐 내 일 좀 도와줘."

"...?"


통화는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때마침 요즘 반복된 일상으로 매너리즘에 빠진듯한 상황에 있었다. 무언가 환기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던 내게 S의 연락은 기회가 될 것 같았다. 짧은 고민 후, 연일 뜨거웠던 올해 여름을 피해 나는 바닷가가 아니라 서울로 가기로 마음먹었다. 저녁에 답을 준다고 전하고는 서울에서의 일정과 경비 등의 계획을 하기 시작했다.



갑작스레 결정된 서울행이었지만, 짐은 바로 싸려 했다. 사놓고 쓸 일이 없어 한참을 구석에 박혀있던 배낭을 꺼내, 이제 쓸 수 있겠다는 생각에 기뻐하며 먼지를 털었다. 짐을 꾸리다 보니 배낭은 금방 가득 채워졌고, 곧 아쉬움이 뒤따랐다.


이것도 있었으면 좋겠는데...


이 아쉬움을 다 메우기에는 배낭이 작게 느껴졌다. 그래서 계속 짐을 더했다 뺐다를 반복해야 했다. 그러기를 몇십 분째, 짐을 꾸린 것이 계속 마음에 들지 않았다. 뭐가 계속 이런 생각이 들게 하는지 잠시 짚어봐야 했다.


'... .. .... .. '

'...!'


가만히 보니까 내가 배낭에 짐을 채웠던 과정은 '이건 없으면 안 되겠다.'에서 출발한 게 아니라, '이건 있었으면 좋겠다.'에서 시작한 것이었다. 정말 당장에 필요한 것보다는, 언젠가 쓸 일이 있어 보이는 짐을 더하다 보니 배낭은 이내 잠글 수가 없던 것이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어쩌면 필요할지도 모를 짐들은 어디서든 그리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을 것 같다. 정말 필요한 순간이 올는지에 대한 의문도 막 들기 시작했다. 일말의 깨달음 덕분인지 짐에 대한 우선순위가 확실해졌고, 이후로 어렵지 않게 배낭 하나로 모든 짐꾸러미를 완성시켰다. 적당히 잘 꾸렸다는 만족감과 함께 여행 가는 기분에 빠져있는 나도 발견했다.



잠깐의 전쟁을 치르고 방바닥에 철퍼덕하고 앉았다. 영혼이 빠진 듯 눈에 초점도 없이 멍하니 있었다. 고개를 드니 시야에 많은 것들이 들어온다. 행거에 걸린 옷들, 책장에서 잠자는 책들, 전자기기와 잡동사니들... 그러다 문득, '저게 정말 필요한가?' 라며 질문이 던져졌다. 짐 꾸리기의 여파였다. 눈에 밟힌 것들 중에는 거의 안 쓰는 것들이 분명 있었다. 쓸 날이 오겠다며 놔둔 그것들은 내 공간을 줄였다. 배낭의 무게만큼이나 삶의 그것 역시 경량화가 필요해 보였다. 내가 그리 많은 것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그중에서 책장의 책들은 분명 정리를 해야 했다. 읽고 싶던 책들을 구비해놨지만 아직 자리만 차지하는 게 많았다. 당장에 하나를 집어 짐꾸러미에 넣었다.






나를 복잡하게 하는 것


요즘 서점가에 잘 나가는 도서들을 보고 있자면 자존감과 정리라는 두 가지 키워드가 떠오른다. 얼마 전까지는 힐링이 화두였기도 했다. 이걸로 모든 것을 판단할 수야 없지만은, 대략적이나마 짐작해 볼 수는 있다. 지금 한국에 사는 사람들은 어떤 부분에서 위축이 많이 되고 있고, 위로가 필요하며, 삶이 많이 복잡해졌다고 느끼고 있다고 말이다. 그러고 보니 어디선가 이런 이야기도 들어봤던 것 같다. '현대화된 사회일수록 사람들은 더 많이 정신과를 찾는다.'


확실히 내가 살고 있는 한국은 오래전보다는 물질적으로 부족함은 더 줄었고, 편한 것들이 많아졌다. 이와 동시에, 생활에서 접하는 정보나 서비스의 양 역시 그러해서 신경 써야 할 게 늘어났다. 어떤 브랜드가 좋고, 어떤 혜택이 있고, 무엇을 먹어야 하는 등 이용할 수 있는 정보나 서비스의 가짓수가 늘어날수록 머릿속이 복잡해진다. 그래서인지 이런 것을 한 데 모아 한눈에 볼 수 있고 관리할 수 있는 서비스가 나오면 각광을 받곤 한다.


배낭에 짐을 꾸리며 방을 둘러봤던 건, 내가 물건을 샀다기보다는 어딘가 홀려서 산 걸 발견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잘 이용하지도 않는 그것들을 보고 있으면 돈을 낭비했다는 생각도 들고, 공간을 차지하며 관리나 정돈을 해야 하는 등의 신경 쓸 거리를 더 만들게 됐다는 걸 알게 된다. 이건 분명 그리 썩 유쾌하지만은 않은 감정을 주는 것이었다. 복잡한 것은 내 앞에 놓인 문제들이면 충분하고, 생활에서만큼은 신경 쓸 것이 적어졌으면 하는 마음이 커졌다. 그냥 좀 홀가분해졌으면 좋겠다는 느낌 말이다. 이 대목에서 나는 법정 스님의 <무소유>가 번뜩 떠올랐다.


사실, 이 세상에 처음 태어날 때 나는 아무것도 갖고 오지 않았다. 살 만큼 살다가 이 지상의 적(籍)에서 사라져 갈 때에도 빈손으로 갈 것이다. 그런데 살다 보니 이것저것 내 몫이 생기게 되었다. 물론 일상에 소용되는 물건들이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없어서는 안 될 정도로 꼭 요긴한 것들만일까? 살펴볼수록 없어도 좋을 만한 것들이 적지 않다.

우리들이 필요에 의해서 물건을 갖게 되지만, 때로는 그 물건 때문에 적잖이 마음이 쓰이게 된다. 그러니까 무엇인가를 갖는다는 것은 다른 한편 무엇인가에 얽매인다는 것이다. 필요에 따라 가졌던 것이 도리어 우리를 부자유하게 얽어맨다고 할 때 주객이 전도되어 우리는 가짐을 당하게 된다. 그러므로 많이 갖고 있다는 것은 흔히 자랑거리로 되어 있지만, 그만큼 많이 얽혀 있다는 측면도 동시에 지니고 있다.

법정, <무소유> 中, www.beopjeong.net 참조


한 번씩은, 내가 가진 것들이 내 것인지 아닌지 모르겠는 순간도 있다. 엄밀히 말해서 세상에 내 것이라 할 수 있는 게 있던가? 이런 때에는, 내가 가졌다고 생각하는 것들이 그냥 잠깐 나한테 들렀다가 흘러가는 것일 뿐이라는 생각이 든다.




소비와 행복의 관계


EBS에서 방영했던 프로그램 중에 <다큐프라임 자본주의 5 부작>이라고 있다. 시청했던 많은 분들이 좋은 평점이나 평가를 내렸고, 나 역시 그중 한 명이다. 홀가분한 삶을 바라는 마음이 커졌던 요즘, 이 다큐멘터리가 머릿속을 스쳤다. 5 부작 중 2 번째 '소비는 감정이다' 편에서는 소비를 4 단계로 분류한다.


생존 소비 < 생활 소비 < 과소비 < 중독 소비


이를 보고 있자면, 막연했던 소비라는 것에 대해 구분이 명확해지는 느낌이 든다. 소비를 이렇게 분류할 수 있는 눈이 생긴다면 내 공간을 채울 것들의 필요를 좀 더 확실히 할 수 있을 것 같다. 이는 불필요함을 덜어내는 삶을 구성하는데 분명 도움이 될 거다.


또, 소비를 이렇게 구분하는 것뿐만 아니라, 몇 가지 실험을 보여주면서 우리가 '왜' 소비를 하는지에 대한 이야기도 풀어낸다. 많은 전문가들에 따르면 사람들은 기본 생활을 충족시키는 소비 외에도 (감정이 차지하는) 무의식으로 소비를 결정한다고 한다. 이런 감정이 어찌 발현되는지, 거기에 연관된 호르몬의 작용과정도 보여준다. London 대학교의 Adrian Furnham 교수는 '사람은 불안할 때, 우울할 때, 화났을 때 더욱 소비한다'라고 말한다.


자존감이 낮으면 현실 자아와 이상 자아 간의 차이가 크다. 그 간극을 메우기 위해 더 많이 소비하게 된다.


여기서 보여주는 실험이나 결과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있다 보면 고개를 절로 끄덕이게 된다. 수많은 광고에 노출되어있는 우리는 마케팅 분야의 전문가 앞에서 맥없이 무너지고 마는 것이다. 그들은 우리를 너무 잘 알고 있고 이를 이용한다. 우리가 어떻게 소비하는지에 대한 이런 통찰은 이성적인 판단과 함께 스스로를 경계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행복지수 = 소비 ÷ 욕망


1970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였던 Paul Anthony Samuelson 은 행복지수를 위와 같이 정의 내렸다. 어떻게 생각하든 소비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아무리 부자라도 이용할 수 있는 현실의 자원은 한정적이기 때문이다. 반면에 인간의 욕망은 끝이 없다. 그럼 여기서 행복지수를 올리는 확실하고 빠른 방법은 욕망을 줄이는 것이다. 내 안에서 꿈틀대는 이것을 그저 따라가는 데만 익숙할 게 아니라, 계속 왜라는 질문을 던지다 보면 내 욕망의 정도를 이해하고 조절하는데 도움이 된다. 이는 곧 나를 아는 길이기도 하다.


Less is more - Ludwig Mies van der Rohe




홀가분한 삶을 찾아서


홀가분하게 산다는 건 얽매이는 게 적다는 말과 같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가 가진 것을 줄여야 한다. 나는 이를 조금 다른 표현으로 '선택한다'라고 하겠다. 내 것들의 가치나 의미를 생각해보고 그 우선순위를 따져서 정말 필요한 것을 찾는 과정. 선택을 하려면, 그전에는 무심코 지나쳤던 것들에 대해 다시 한번 들여다보게 된다. 거기에 우선순위가 떨어지는 불필요한 것들을 버릴 수 있다면, 남는 것은 좀 더 가치나 의미가 있는 것들 뿐이다. 여기까지 오면 행복도 한결 가깝게 느껴지는 것 같다. 의미는 우리를 행복하게 하기 때문이다.


삶에서 어떤 물건이 차지하는 비중은 그리 크지 않을 것이다. 거기에 어떤 사정이나 의미가 들어가 있다면 이야기가 달라지겠지만, 그게 아니면 물질적인 것이 손으로 잡을 수 없는 것에 비해 가치나 만족감, 그 지속력이 크지 않는 경우가 많다.


정말 필요한 것들이 이미 구비되어 있다면, 이후에는 경험에 소비하는 방향으로 하는 것은 어떨까? 나를 위해서든 누군가에 선물하는 것이든 관계없이 말이다. 이를 테면, 공연장이나 전시회 관람 티겟을 산다거나, 맛있는 식사를 초대한다든가, 주변이나 어딘가의 어려운 사람을 도우러 간다든가의 식으로 말이다. 경험을 하는 것은 그 순간이 즐겁기도 때로는 아닐 수도 있지만, 그런 일화들로 우리의 삶을 채워가게 되는 것이다. 시간이 흘러 나중에 돌아보니 정말 큰 자산이었다고 생각되는 건 이런 경험의 흔적, 역사가 아닐까?





사람들 모두가 좀 더 의미가 있는, 행복한 삶을 잘 찾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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