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이너는 예쁜 걸 만들고, 변리사는 지킬 걸 만든다

창작만큼 권리도 만들어진다

by 함영석 변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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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대생으로서 기술을 다루다가 처음 패션 분야의 자문을 맡게 되었고, 많은 디자이너분들, 특히 이미 성공하신 분들보다는 이제 창업의 세계에 뛰어드는 분들, 창업 초기의 데스밸리를 넘으려고 안간힘을 내는 분들을 만나면서 새로운 세계를 접하게 되었습니다.


상표나 디자인은 시험공부를 할 때도 흥미로운 분야라고 생각했지만, 다양한 디자인과 창작의 세계, 그리고 단순히 예술이나 작품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직접 입고, 들고 다니고, 사용하는 유용한 제품으로 만들어지는 과정은 정말 예술과 상업을 넘나드는, 그야말로 ‘예술의 경지’인 것 같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예술의 경지에 올라도 ‘모방’과 ‘데드카피’ 앞에서는 속수무책이 되기도 합니다. 누구나 다 인정하는 디자인의 주인을 정작 수요자들은 몰라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모방으로 인한 가치의 저하, 가격 경쟁의 심화, 우후죽순으로 만들어지는 유사품들로 인해 나의 창작물은 흔하디 흔한 디자인 중 하나로 전락하기도 합니다.


변리사가 말하는 창작물의 권리


아무래도 변리사로서 다양한 디자이너분들을 만나다 보면 곤란할 때도 많습니다. 자신의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매우 상세하게 설명하시고, 몇 년을 고심해 만들어진 브랜드라고 하시는데도, 사실 상표법상 도저히 등록받기 어려운 표장인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그런 경우 등록을 위해 변경하시는 분도 계시고, 컨설팅이 끝난 지 1년여 후 어느 국내 박람회에서 다시 마주쳤을 때, 여전히 그 브랜드를 사용하고 계신 경우도 종종 있습니다.


창작물의 의미는 권리가 인정되어야 비로소 분명해집니다. 권리가 없다면 모방은 쉬워지고, 다양하게 모방된 상품들 사이에서 누가 창작했는지, 이것이 창작적 가치를 지닌 것인지 점점 모호해지기 때문입니다.

전체적인 아름다움을 보는 것이 아니라, 형태를 특정하고, 그 형태와 이미 알려진 형태 혹은 모티브로 삼은 원본 형태 사이의 유사성을 바라보는 것이 변리사의 시선입니다. 저 사람과 나의 권리가 공존할 수 있을지, 중첩되는 권리가 되어 내가 쓰지 못하게 되는 것은 아닌지가 더 큰 관심사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디자이너가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부분의 변경이 필요할 때도 있고, 디자이너의 창작적인 핵심 부분에 대해 “이미 나와 있는 디자인과 유사합니다”라고, 다소 눈치 없어 보일 수 있는 이야기를 하게 될 때도 많습니다.


패션이라는 상업시장에서 독점적 권리의 중요성


예술 분야에서 권리라고 하면 흔히 저작권을 떠올리게 됩니다. 그런데 저작권에서의 창작은 매우 주관적인 영역입니다. 그야말로 한국의 나와 지구 반대편 누군가의 그림이 동일하더라도, 각자가 독립적으로 창작한 것이라고 인정되면 두 창작물의 권리는 모두 인정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상업시장에서의 모방은 권리 침해가 될 수 있고, 부정경쟁행위가 될 수도 있으며, 이름도 모르는 나라의 디자인이라 하더라도 우연히 유사하게 되면 디자인 등록 자체가 어려워질 수 있습니다. 반대로 말하면, 상업시장에서 창작물의 독점적 권리는 타인의 모방을 막고, 부정경쟁행위를 막고, 유사한 디자인의 등록 또한 저지할 수 있게 해 줍니다.


예쁜 것을 버리는 것이 아니라, 예쁜 것을 더욱 권리로 만드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패션 브랜드의 제품을 만드는 일 또한 창작의 영역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상업적 시장에서는 구매력 역시 중요한 만큼, 트렌드를 무시하지 않으면서도 각자의 창작성이 드러나는 제품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래서 더 어렵고, 그 어려움 때문에 단순한 디자인의 카피나, 모티브로 삼았다고는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유사한 제품들이 나오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예쁜 것을 버릴 수는 없습니다. 예쁜 것을 추구하되, 그것이 권리화될 수 있는지 여부를 사전에 검토하고 조율하면서, 내가 창작한 콘셉트가 제품에 이르는 과정 속에서 보다 치밀한 지식재산의 테두리를 만들어갈 필요가 있습니다.


패션 제품이라고 해서 모두 디자인권의 대상이 되는 것도 아니며, 그렇다고 제품에 붙이는 상표만이 상표가 되는 것도 아닙니다. 이미 많은 유명 제품들은 그 자체로 브랜드가 되기도 하고, 디자인으로 시작했지만 지속적인 판매를 통해 시그니처 디자인이 되면, 어느 순간 그 디자인 자체가 브랜드가 되기도 합니다.

디자인과 달리 브랜드는 상표법상 ‘창작성’의 개념이 없습니다. 다만 수요자가 나를 알아봐 주는 식별력이 필요하기 때문에, 디자인 등록과는 또 다른 요건이 요구됩니다.


나의 창작물을 온전히 보호하기 위한 전략과 노력도 필요합니다


창작의 영역만큼이나 지식재산의 영역도, 단순히 창작한 것을 내밀어 등록받는 곳이 아님을 알게 됩니다. 창작과 더불어 치밀하게 고민하면서, 예쁜 것과 멋있는 것 어느 하나도 버리지 않고 온전한 권리로 만들어내기 위한 노력도 분명 필요합니다.


한석봉 어머니가 떡을 썰고 한석봉이 글을 쓰듯, 그렇게 따로따로는 안 됩니다. 함께 협력하고, 최대한의 권리 속에서 디자이너의 창작 의도를 온전히 반영할 수 있는, 예쁘지만 온전하게 지켜질 수 있는 ‘권리’를 만드는 일을 이제 시작해야 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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