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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상 속 심리학 Jan 18. 2019

그 많던 심리학 전공자는 어디로 갔을까

심리학 대학원을 졸업하며 느낀 썰

"심리학 전공하면 뭐하고 살 수 있어?"

"글쎄? 일단 대학원에 가봐야 하지 않을까...."


대학생 때 친구와 진로에 대해 이야기하다 보면, 으레 대학원 이야기가 먼저 나왔다. 심리학과는 전공을 살리려면 대학원 진학이 필수라고 이야기되던 시기였다. 학부 심리학과는 다양한 기초과목(인지심리학, 상담심리학 등)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것만으로는 사회에서 요구하는 기술을 갖추기 힘들기 때문이다. 또한 심리학에서 가장 안정적인 임상, 상담 분야는 자격증으로 인해 대학원이 필수이기 때문에, 심리학 전공 = 대학원이라는 암묵적인 공식이 존재했다. 아마 많은 심리학도들이 이 까닭으로 대학원 진학을 선택하곤 했을 것이다. 


그러나 임상, 상담 분야가 적성에 안맞았던 나는 속으로 다른 전공의 사람들은 뭐먹고 사는 거지? 라는 질문을 하곤 했다. 이 고민을 가슴에 안은 채 인지심리학 대학원에 진학하였고, 곧 졸업을 한다(무려 8년이나 심리학을 전공했다!). 이제 내가 품어왔던 질문에 답해보려 한다. 물론 심리학을 수십 년간 전공한 교수님들이나 박사님들에 비해서는 부족한 내용이겠으나, 먹고사니즘에서 대학원이 갖는 가치에 대해서는 나름의 통찰을 제공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심리학 대학원은 내공을 기르는 곳"


누군가 내게 대학원의 역할을 1문장으로 정리하라면 내공을 기르는 곳이라고 소개하고 싶다. 내공의 수준은 Lv1. 에서 Lv100. 까지 다양하다. 졸업 후 누군가는 교수나 기업연구원이 되어 전공을 활용하지만, 다른 누군가는 전공을 써먹는데 실패하기도 한다. 될놈될의 법칙은 대학원에서도 적용된다. 그렇다면 심리학에서 '되는' 인재는 어떤 특징을 가지고 있는가? 개인적인 인상으로는, "지식을 어떻게 내 일상에 적용하느냐"가 관건이었다. 이는 내 전공인 인지심리학에서 특히 두드러지는 특징이기도 하다. 


인지심리학을 간략히 정의해보자면, 인간의 판단이 상황과 맥락에 따라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실험적으로 증명하는 학문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상황과 맥락"이다.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환경은 시시때때로 변하기 때문에, 모든 현상을 하나의 원리로 설명할 수는 없다. 따라서 인지심리학자들은 항상 단서를 덧붙인다. 즉, "~~한 조건 혹은 상황일 때" 어떤 경향성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그리고 실험실에서 항상 이런 공부를 하다 문득 밖을 바라보면, 수많은 if가 매달린 세상을 목격하게 된다. 세상은 복잡계라고들 말하지 않는가.

세상은 복잡한 것 투성이!

따라서 실험실에서 세상으로 나갈 때 중요한 것은, 복잡한 세상에서 내가 배운 지식을 적용할 수 있는 "상황"을 발견하거나, 혹은 지식이 내 삶을 설명할 수 있는 "맥락"을 찾아내는 것이다. 이걸 해내지 못하면 대학원에서 배운 것은 책 속의 지식이 되어버리곤 했다. 심리학을 전공한 사람에게 묻는 질문 중 하나가 행복하기 위해선 무엇을 해야 하느냐이다. 이런 질문에 행복을 위해서는 시간에 집중하는 것이 중요해요(1)라고만 답할 수는 없다. 단편적인데다 실제로 들어맞지 않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우리나라에서는 돈이나 집안배경과 같은 외부 조건이 행복에 중요하다는 연구결과(2)도 있다. 이는 한국이 미국에 비해 겉으로 보이는 가치를 중시하는 문화를 갖기 때문에(3) 나타나는 것으로 보이는데, 이런 차이점은 한국과 미국의 문화 차이라는 맥락을 이해해야만 해석 가능하다. 


"내공을 통한 성장을 위하여"


심리학이라는 렌즈를 자유자재로 사용하는 사람들은 그때그때 말이 달라진다는 평가를 듣기도 한다. 듣는 이의 입장에서는 비슷한 질문에도 다른 답변이 돌아오니 그럴 듯하다. 사실 본인도 심리학자 타이틀을 달고 TV에 나오는 사람들을 보며 말을 꾸며낸 건 아닌가라는 생각을 한 적이 많다. 그러나 지금은 내공이 쌓인 전문가들로선 억울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상황에 따라 답변이 달라져야 한다는 것은 심리학의 기본이니까 말이다.


그렇다면 상황과 맥락에 따라 지식을 연결짓는 훈련은 어떻게 할 수 있을까? 가장 좋은 해결법으론 '일화'를 활용하라고 말하고 싶다. 자신의 에피소드는 상황과 맥락을 온전히 가질 수 있는 소재이다. 에피소드에 살을 덧붙여 설명하다보면 나도 모르게 상황과 맥락을 분리해내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만약 대학원에 있다면, 관심 주제를 찾고 논문을 써보는 것도 좋다. 논문은 특정 주제에 대해 당신만의 이유를 찾아가는 과정이므로, 그것만으로도 관점을 좁혀나갈 수 있을 것이다. 이 글을 읽는 당신과 나 모두 내공을 통해 먹고살 수 있는 날이 오기를 바란다. 


(1) Mogilner, C., & Norton, M. I. (2016). Time, money, and happiness. Current Opinion in Psychology10, 12-16.

(2) 박정현, & 서은국. (2005). 사람의 내-외적인 모습에 두는 상대적 비중과 행복관과의 관계. 한국심리학회지: 사회 및 성격19(4), 19-31.

(3) 구재선, & 서은국. (2015). 왜 한국 대학생이 미국 대학생보다 불행한가? 상대적 외적 가치, 사회적 지원, 사회비교의 영향. 한국심리학회지: 사회 및 성격29(4), 63-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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