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은 학원 선생님과 무슨 이야기를 할까.
엄마, 아빠도, 학교 선생님도 아닌, 스스로 선택한 어른과 말이다.
영어 강사로 일하던 중 원장 선생님의 권유로 고등 전임이 되었다. 초등, 중등을 거쳤지만, 고등은 또 다른 영역이기에 고민했다. 초등학생을 대할 때처럼 한 명 한 명 껴안아 줄까? 삡, 절대 안 된다. 입을 꾹 다문 중학생의 관심을 끌듯이 온갖 연예인 포토카드를 내비칠까? 그것도 이미 지나갔다.
‘학원에 와서 원하는 게 뭐겠어?
따라가기만 하면 1등급 받을 수 있는, 뭐 그런 거잖아.’ 혼자 결론지었다.
그래서 우선 수업을 잘해보기로 했다.
잠을 줄이며 열심히 준비했고, 하다 보니 요령도 생겼다. 특히 첫 수업의 중요성을 깨달았다. 시간을 철저히 통제하며 이끌어 주니, 친구를 따라왔던 아이들의 눈빛이 초롱초롱해지는 게 보였다. 뿌듯했다.
“선생님, 좀 무서워졌어요.”
수업을 잘한다는 평가에 의기양양하던 내게, 어느 날 한 아이가 말했다. 초보 강사 시절부터 함께 성장해 온 아이였다. 내가 무섭다니, 어설프던 모습도 믿고 따라와 준 아이였기에, 그 말이 주는 무게는 컸다.
사실, 바쁘다는 핑계로 외면했지만 알고 있었다. 아이들이 내 앞에서 입을 다문다는 걸.
이상했다.
수업을 잘하고, 카리스마 있는 선생님이 되면 아이들은 알아서 잘 따라올 거라고 믿었다. 물어보면 무엇이든 척척 답하는, 완벽한 어른을 원해서 나를 찾아온 줄 알았다. 어른의 미덕은 그런 거라고 생각했다. 엄청난 착각이었다.
고등 학원 선생님은 어떤 사람이어야 하냐고 친구들에게 물었을 때, 모두가 편하고 재밌었던 선생님을 떠올렸다.
그랬다. 매일 마주하는 학원 선생님은 완벽한 어른이어서는 안 됐다. 늘 정답만 말하는 벽창호에게, 속마음을 털어놓을 수 없으니까.
그때부터 나는 의도적으로 어설퍼졌다.
내가 살면서 얼마나 많은 실수를 저질렀고, 때로는 바보 같았는지 이야기했다. 몰래 원장 선생님 성대모사를 하며 웃고, 지나가던 옆 반 선생님을 불러 아이들 앞에서 투닥거렸다. 어깨에 힘주고 다니는 선배 언니들이 무섭다며 앓는 소리를 하고, 어른이 되어서도 엄마에게 잔소리를 듣는다고 하소연했다.
그러자 어리둥절해하던 아이들은 하나둘씩 찾아와 비밀을 나누기 시작했다.
‘실은 엄마가 제 폰에 위치추적 앱을 깔아놨어요. 그래서 몰래 다른 휴대폰을 쓰고 있어요.’
‘늦둥이라서 나이 많은 엄마, 아빠가 답답해요. 형은 무섭구요.’
‘학교에 친한 애가 없어요.’
‘저 ㅇㅇ이 좋아해요.’
‘교회 가기 싫어요.’
물론 학원 선생님의 제1 덕목은 기술적으로 잘 전달해서 학습에 도움이 되는 것이다.
하지만 아이들에게는 아무 말이나 들어주는, 어설픈 어른도 필요하다.
또래에게 말하긴 자존심 상하고, 다른 어른들에게 말하면 너무 큰일이 될 것 같다. 본격적으로 문제를 해결해주지 않더라도, 마음을 알아주는 어른이 있으면 좋겠다. 똑같은 어려움을 겪고 있는 어설픈 어른 말이다.
모든 걸 뒤로 하고 떠나온 지금, 성인이 되었을 아이들의 안부가 문득 궁금하다.
내가 어설픈 어른이 되어 주었는지.
정답 없는 대화가, 충분히 위로가 되었는지,
여전히 그런 어른이 필요하진 않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