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ira Nov 10. 2019

오버드레스보단 언더드레스 (1)

힘 빼고 옷 입기의 어려움

(커버 사진출처: goop.com)


언젠가 월요일, 친구와 애프터워크를 하러 맥주집에서 만났다. 테이블 앞에 서서 포옹으로 인사를 하기도 전에 그의 입에서 나온 첫마디는,


“넌 어쩜 그렇게 스타일리시하니!”


다른 이들이 갖고있는 물건에 관심이 많고, 내 방식을 무척이나 좋아해주는 친구여서 이런 이야기를 하는 거다. 체격과 머리색 피부색이 나와 완전 정반대여서 본인이 시도하지 못하는 경우의 수를 나에게서 보는 대리만족의 탓도 있을 거라 생각한다. 우리는, 만나면 식당의 그릇을 유심히 보고, 여성혐오와 각종 편견에 분노하고, 술잔의 눈금이 조금씩 내려갈 때마다 건배할 거리를 찾는다. 다시 말해, 외모 얘기 남 얘기는 좀처럼 하지 않는 편이다. 그날은 알 수 없는 이유로 옷 이야기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나보다는 좀 더 갖춰 입어야 하는 직장에 다니는 내 친구는 오래 전 같이 알던 J의 이야기를 꺼냈다. “그거 있잖아, 완전히 J 같은 느낌.” 더 이상 설명 안 해도 뭔지 안다. 속눈썹까지 흴 정도로 창백한 J는 금색머리를 늘 올백으로 하나로 묶고, 10센티는 족히 되는 힐을 신었다. ‘난 하체가 너무 비대해’라는 말을 여자들끼리 있을 땐 종종 했는데, 커브가 눈에 띄는 몸 형태에 늘 하이웨이스트 치마를 잘 매치했다. 옷 자체는 큰 무늬가 없이 수수했어도 J 스타일을 만든 건 늘 볼.드. 그 자체였던 귀걸이 컬렉션과 어깨를 쫙 편 채 그 하이웨이스트에 손을 얹던 파워포즈였다.


그 친구의 커브와 카리스마와 허스키한 저음의 목소리에 참 잘 어울리는 조합이었고 내 친구에게는 그것이 일종의 지향점이었던 것 같다.

한편 난 힘 주는 건 더 이상 못 하는 지경에 왔다고, 오버드레스의 촌스러움을 견딜 수 없어서 차라리 언더드레스를 하겠다고 말했다. 내가 이런 말을 하다니, 스스로도 재밌다고 생각했다.




나는 옷입는 환경 관련 몇 번의 스윙(!)을 심하게 겪었다. 옷은 예나 지금이나 나에게는 개성 표현보다는 실용적인 목적으로만 기능한다. 실용적이라 함은, 물리적 보호막에 더해 내가 추구하는 어떤 이미지에 다가가는 수단이라는 뜻도 있다. (나에게 그런 이미지란 환경과 야망을 반영하는 것이라 자기표현의 개성이라는 의미와는 좀 다른 것 같다)


Phase 1. 꽤나 차려입어야 하는 첫 직장이었다. 남자들은 모두 타이를 했고 젊은 여자는 별로 없는 그곳에서 뭘로 하나 빠지고 싶지 않았다. 사도 사도 비슷한 이젠 이름만 들어도 지겨운 ‘정장’을 모았다.


Phase 2. 입사한 지 오래지 않아 뉴욕에서 한 달간 글로벌 트레이닝이 있었다. 뉴욕에서는 클라이언트 미팅이 아니고서야 타이를 하지 않는다고 했다. 거기서 나랑 가장 친했던 동기는 농담삼아 나를 uptight라고 불렀다. 트레이닝이 끝난 후 서울에 돌아온 나는 라이트 브라운 면 치마와 플랫슈즈를 신고 회사에 가도 하늘이 무너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Phase 3. 유럽에서 긴 프로젝트를 하게 되었다. 거대한 산업시설이었고 모두 오버롤을 입고 다녔다. 어쩌면 거기에 훨씬 오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고, 출근 때 입을 청바지 + 휴가 때 입을 선드레스 정도면 충분했다.


Phase 4. 다른 곳으로 옮겨, 늘 사무실에서 깨끗한 셔츠를 입는 사람들과 일하게 되었다. 사무실에 나타나기만 하면 다가 아니라 ‘프로’같이 보여야 했다. 그렇다면 동양인 여자라는 라벨보다는 차라리 옷으로 기억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하이힐과 치마를 챙겨갔지만, 이내 깨달았다. 너무 차려입으면 어색한 게 게임의 규칙이었음을. (다음에 계속)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