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지만 이방인이라고 스스로를 굳이 정의하고 싶지도 않습니다.
#꾸준히 글쓰는 연습 + 한국어 연습을 위한 일환으로 일주일에 한 번씩 수필을 업로드하려고 한다. 주말을 놓쳐 밀릴 수도 있겠지만 그러면 그다음 주에 두 개를 쓰는 식으로. 올해 연말에 52개의 글을 돌아보고 싶다. 12주를 그냥 보냈으니 당분간은 손가락을 바삐 놀려야 할 것 같다. 다소 개인적이고 급하게 쓰는 글이니만큼 완성도에는 별로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려고 한다. 브런치에 잡소리 하나 더 늘리는 것뿐일 텐데 결국.
외국인으로서 살면, 많은 부분에서 설명 생략이 가능한 점이 참 좋다. 이건 내가 잘 모르는 + 나를 잘 모르는 타국에서 유효하고, 시공간 때문에 고국에서의 많은 부분을 놓치게 되는 점 때문에 한국에서도 거리두기에 유용하다. 최근 어딘가에서 짧은 글을 보고 나의 피곤한 과거가 떠올랐다. 또래와 관심사를 공유하지 않고 자란 글쓴이가 늘 질문을 받고 설명을 요구받는다는 내용이었는데, '외국인'이라는 정체성이 생기는 순간 그걸 잊고 살았다는 생각이 문득 들어 글을 쓰게 됐다.
하지만 소제목에 썼듯, 이방인이나 외국인 자체가 내 정체성이 되는 건 또 달갑지 않다. 그런 정체성이 관심 몰이나 마케팅 수단이 되는 것을 보는 게 가장 불편하고, 새 정체성을 체화할수록 옛날 모습과 부지불식간에 비교하려는 경향이 커지는 부분도 피하고 싶어서이다. 그냥 자기가 있는 자리를 좀 더 나은 곳으로 만들어나가려는 1인일 수 있다면 가장 좋겠다.
모에화..라고 해야 하나. 많은 사람들이 본인의 성장과정에서 특별했던 점을 이야기하고 싶어 할 것 같다. 나도 예외는 아닌지, 학창 시절을 떠올리면 '넌 정말 특이해'라던 또래들의 코멘트가 몇 다스는 거뜬히 떠오른다. 나이 든 요즘이야 쟤가 저러든 말든 하고 버려두겠지만 호기심과 에너지 많았던 시절의 아이들답게 질문이 많았고, '넌 왜..'로 시작하는 답 없는 질문이 아직도 선명하다.
"넌 왜 좋아하는 가수가 없어?"
"넌 왜 가요를 안 들어?"
"넌 왜 그런 책을 읽어?"
"넌 왜 매점 가는 게 싫어?"
그만큼 나도 물었다.
"다들 왜 화장실에 짝을 지어 가?" (혹시 같은 칸에 들어가는 거니?)
"다들 쓰지도 않을 펜을 왜 커다란 필통 가득 넣어 다니는 거야?" (그 펜 언제 다 써?)
"왜 매일 가수와 결혼한다고 하는 거야?" (일어날 수가 없는 일이잖아!)
그리고 아이들은 내가 왜 이런 질문을 하는지조차 이해하지 못했다. (이쯤 되면 사회성에 문제가 있었다고 볼 수도...)
관심이 밖으로 향해 있는 사람에게 안에서 가해지는 압력은 잘 안 보였던 것 같고, 그래서 또래와 제한적인 것만 공유하고 살아도 큰 문제는 없었다. 그렇지만 늘 '왜'라는 질문을 받고 나를 설명해야 하는 일은 좀 피곤했다. 준거집단이 무작위로 선택되는 동년배가 아니라면 그 피곤함이 사라질 거라 막연히 기대하며 중고등학교 시절을 '견뎠다'.
몇 년이 흘렀고 내 기대는 사회에 그야말로 팽 당했다. 내가 모르는 연예인에 대한 가십을 여전히 들어야 하고 (=이해하지 못했고) 노래방에 가면 나를 뺀 모든 이들이 모든 가요를 다 알고 떼창을 했다. 대학을 졸업하고도, 언젠가 만나던 남자 친구는 진지하게 "너 정말 그때 한국에서 학교 다닌 것 맞아?"라고 묻기까지 했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모든 사람들과 공유하지 못하는 것은 상관없는데, 사람들과의 평행선을 매일매일 확인하는 것은 불편했다. 'ㅇㅇ년대 대중문화'라고 하여 내가 공부를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냥 시간을 돌려야만 하는 일이었으니.
젊은 여성에게 가혹한 사회문화적 장벽을 다 들어내고라도 이런 개인적 불편함이 환기되는 순간, 외국인으로서 산다는 것의 장점을 다시 보게 된다. 국적 혹은 자라온 환경 관련해 적당히 이야기할 수 있으면 충분한 그 지점, 내가 좋아하는 것은 누군가와 어울리기 위한 것이 아니라 그냥 나를 설명하는 수단일 뿐이라는 가정 (그리고 곧 기억 속에서 사라질 정보라는 점). 그 편리함이 너무도 강력한 나머지 이젠 그때처럼 내가 누군지 정의하려는 노력을 그만뒀다. 몇 년 생이면 이걸 알아야 하고 이걸 반드시 경험했을 것이라는 가정이 참 불편했는데 도망칠 구멍이 있어 다행이었다.
어디서 왔는지, 어디에서 사는지 가늠할 수 없는 사람이 된다면 제일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