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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ra Aug 22. 2019

미술 전시 - 큰 잔치상의 불편함

다다익선의 미덕은 없네요

2014년 7월 2일


북유럽계 직장의 장점 - a.k.a 나의 현 직장의 유일무이한 장점:

퇴근을 제시간에 한다. 심지어 5시에 나와도 되고 사정이 여의치 않을 경우 아침부터 재택근무를 할 수도 있다.

--> 저녁 일정에 시작시간보다 일찍 도착했다

--> 일찍 도착한 사람들에게만 주셨던 전시 초대권을 받았다.

--> 저 초대권으로 데이트하면 돈이 3만 원은 굳을 거라 격려해주셨지만, 나는 전시 초대권을 멍하니 바라보고 다른 생각을 한다.



르누아르와 데미안 허스트는 대체 무슨 상관인가.

--> 20세기의 위대한 미술가라고?

--> 화풍도 다르고 매체도 다른데 왜 이들을 한 자리에서 봐야 하는가

--> 사람들이 한꺼번에 보길 원하니까 그렇지 않을까

--> 음 맞아, 전시도 1년에 몇 번밖에 없고 비싼 돈 주고 들어가니까 많이 뽑아오고 싶어 하겠지들..

--> 그러네, 그러고 보니 시립미술관이나 예술의 전당에서 하는 전시들은

        1. 미술사조 하나를 통째로 훑거나,

        2. 이번 전시처럼 시대를 통째로 훑거나,

      3. 한 작가 생애를 통째로 훑는 전시들이었어 대부분....

        아 4. 박물관 하나를 통째로 훑어주는 전시도 많아!



이렇게 꼬리에 꼬리를 물고, 한국에서 하는 전시에는 왜 이렇게 테마가 없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보았다.


The Tribuna of the Uffizi by Johann Zoffany (1772 - 78)


위 그림은 Zoffany의 The Tribuna of the Uffizi. 이 그림이 발주되던 1700년대의 사람들은 한 그림을 사도 여러 그림을 사고 걸어놓는 효과를 보고 싶어 해서, 이렇게 캔버스 하나에 수십 점의 그림을 구겨 넣은 회화들이 인기였다고 한다. 최소의 비용으로 최대의 효과를 보려는 노력이 어찌 보면 귀엽기도 하고 촌스럽기도 하다. 그리고 요즘 우리나라 대형 미술관 전시형태와도 많이 닮았다. 거의 모든 음식을 맛볼 수 있는 뷔페처럼 한 상에 다 볼 수 있기를 원하는 것이 관객인지, 미술관이 시작한 판매전략인지는 모르겠다만 가끔은 체할 것 같다.


루브르 특별전은 말할 것도 없고, 당장 중국에서만 해도 "메디치 시대의 피렌체", "서구 미술에서의 자연의 묘사"등의 구체화된 전시 제목을 봤다. 특정 테마나 100년 안쪽으로 기간을 제한한 특별전은 수박 겉핥기를 넘어서 그 시대의 모습을 다각도로 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일례로, 작년 루브르 특별전에서 도나텔로와 브루넬레스키를 통해 같은 시대를 다른 방식으로 살아가는 이들의 예술세계를 실타래처럼 정교하게 꼬아두었던 것이 기억난다. 오디오 가이드 코멘터리 역시 비교, 대조, 설명을 적절하게 섞어두어 더욱 상상력을 자극했다. 작품이 역사적 맥락에서 따로 놀거나, 한 걸음 건너뛰면 100년 200년이 훌쩍 지나가는 황당한 전개가 없었음은 물론이다. 한편 북경에서 봤던 “Earth, Sea, and Sky: Nature in Western Art” 전도 100년이 넘는 기간의 작품들을 전시하고 있었지만 자연이라는 일관된 흐름이 있어 보기가 편했다. 미술에 대해 잘 모르는 상태에서도 시대를 지나며 혹은 지리적 공간에 따라 화가들이 자연을 바라보고 묘사하는 방식이 달라졌음을 눈치채고 그 과정에 흥미를 가질 수 있게 했다. 여기서도 난데없는 인물화나 추상화가 등장했다면 이렇게 단순한 사고의 흐름조차도 방해를 받고 난 길을 잃었을 것만 같다.



어떤 영상 전문가의 코멘트를 건너 건너 들었다. "한국에서 영화를 가장 잘 파는 방법은 지적 허영심을 자극하는 것"이라고.


미술에서도, 그 지적 허영심의 입김이 강한 것일까 궁금해졌다. 사람들은 조금만 보고도 많이 이해한 것처럼 만들어주는 무엇인가를 원하고, 큰 미술관들은 어차피 들여오는 미술작품 다양하게 크게 묶어 티켓 많이 팔고, 그러다 보니 전시는 배부른 밥상이지만 엣지는 사라지는 무언가가 돼 버려 3-5년 주기로 같은 주제가 반복되고... 그 와중에 마스터피스급 작품을 handpick 해 들여올 자본이 없을 작은 미술관들은 좋은 테마나 인테리어에도 불구하고 밀려나는 건 아닌가.


어떠한 미술사조를 이해한다는 것은 유명한 몇 작품만 보고 되는 일이 아니라, 그 사조를 통과하는 이들의 대작 범작 졸작 등 방대한 작품 베이스를 훑어야 훨씬 쉽고 오래간다 (적어도 나의 경우는 그랬다). 그리고 이러한 방대한 컬렉션은 유럽 몇몇 미술관들의 상설전이 아닌 곳에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상설전 하기에는 작품 소장 규모가 너무도 작고, 문화적 역사적 특수성 때문에 루브르나 우피치 같은 '항시 인기 많은 상설전'이란 꿈도 꿀 수 없기에 특별전으로 대박을 터뜨리고 싶은 우리나라 미술관장님들의 고민을 이해 못 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특별전 공간에서 상설전의 탈을 쓴 전시를 본 많은 이들이 특별전만큼의 식견을 가지고 상설전이 주는 value를 얻었다고 자부하는 것을 적잖이 봤고, 이런 관람 문화가 먹을 것 없는 잔치상 기획을 재생산하는 것 같아 아쉽고 또 아쉽다. 미술계에서 일하는 분께 조만간 이 주제로 질문을 해 봐야겠다.



2014년에 쓴 글이라 최근 전시 트렌드에 뒤떨어진 코멘트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작년 한국 방문 시 본 뒤샹 전시는 구성이나 범위 선정 면에서 괜찮았다고 생각한다. 뒤샹의 작품 세계 전체를 커버하긴 해도 생각보다 난잡하지 않았다. (다만 작가의 여성 신체 대상화가 너무 불편해서 앞으로 세계 어디에서든 뒤샹 전시는 안 가기로 결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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