칵테일을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미국의 달력은 맛으로 넘어갑니다.
미국맛 시즌3은
시간이 맛으로 유통되는 순간을 관찰합니다.
재능 없이는 맛있는 칵테일을 만들지 못한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한 말이다.
타고난 재능.
내가 천재가 아니라서일까?
별로 신뢰하지 않는 말이다.
나는 대체로 재능보다 반복을 믿는다.
그런데도 재능을 인정하게 되는 세계가 있다.
이를테면 칵테일의 세계가 그렇다.
좋은 한 잔을 만드는 데는 타고난 뭔가가 필요하다.
위스키와 설탕, 얼음의 비율만으론 부족하다.
잔이 놓일 자리의 온도와 공기까지 맞춰야 한다.
5월의 한 미국 경마장에서는 더더욱.
오늘은 알쓰가 말아주는 미국 칵테일 이야기다.
칵테일은 맛보단 무드가 먼저라고 말하면 하루키는 어떻게 생각하려나. 그래도 어떤 면에선 난 그렇다고 본다. 몰디브에서는 왠지 모히토를 마셔줘야 할 것 같고, 제임스 본드가 마티니 대신 피나 콜라다를 들고 있는 모습은 상상이 안 되지 않나요. 어떤 배경은 반드시 어떤 잔을 부르는 법이다. 5월의 한 미국 경마장이 이 잔을 부르는 것처럼.
매년 5월 첫 번째 토요일, 켄터키주 루이빌은 거대한 세트장이 된다. 1875년부터 이어져 온 미국 3대 경마대회, 켄터키 더비(Kentucky Derby)는 말 못지않게 사람이 주인공인 무대다. 베팅의 긴장감보다 우아함의 환상이 더 짙게 깔린 경마장에서 관객들은 고전극 배우가 된다.
챙 넓은 모자, 수트와 원피스.
소품처럼 들고 있는 컵.
경기 이틀간 이 컵은 12만 잔 넘게 팔린다.
대체 무슨 칵테일이길래?
이름은 민트 줄렙(Mint Julep).
겉만 봐선 이 칵테일의 정체를 알기 어렵다.
안을 들여다봐야 한다.
잘게 부순 얼음, 민트 잎, 그리고 버번 위스키.
끝.
이게 끝이라니. 나 같은 술알못에게 칵테일은 비주얼이 제일 중요한데. 이 칵테일은 화려한 층도 거품도 없고, 과일이 꽂힌 것도 아니다. 예쁜 분홍색이나 파란색도 아니다. 얼핏 보면 그냥 얼음 가득한 컵에 민트 좀 올라간 게 다다.
오히려 눈에 띄는 건 액체보다 컵이다. 차갑게 빛나는 금속 컵. 표면에 맺힌 성에에선 입보다 손이 먼저 얼어붙을 듯한 온도가 느껴진다. 이 컵은 차가움을 담는 동시에 보여준다.
맛은? 생각보다 세다. 그리고 직선적이다. 화한 민트향이 먼저 빵! 그 아래로 버번의 묵직한 단맛과 나무 향이 깔린다. 민트가 들어갔다고 모히토를 상상했다면 당황할 거다. 결국 중심은 버번이니까. 얼음이 녹으면서 강한 술맛을 늦춰줄 뿐이다.
그런데 이 음료, 시작은 지금과 사뭇 달랐다. 줄렙(Julep)이라는 말은 약용 음료의 역사에서 출발했기 때문이다. 장미수를 뜻하는 페르시아에서 건너와, 이후 유럽에선 쓴 약과 함께 삼키는 달콤한 시럽이나 진정제를 의미했다. 한 마디로 초기의 줄렙은 몸을 위한 음료였다.
처방전 위에 머물던 이 액체는 미국으로 건너오며 전혀 다른 종류의 치유를 시작한다. 민트가 들어오고, 술이 섞이고, 얼음이 잔을 채운다. 처음부터 버번만 쓴 건 아니었다. 럼, 브랜디, 진처럼 베이스는 다양했지만 시간이 지나며 버번, 그러니까 옥수수로 만든 미국식 위스키로 굳어진다.
그리고 얼음이 더해진다. 냉장고가 없던 시대에 얼음은 그냥 냉각 장치가 아니었다. 더위를 식힐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취향이자 여유였고, 때로는 계급의 표시였다.
가만 보면 이 조합이 미국 그 자체다. 남부의 민트, 잔을 넘칠 듯 채운 얼음, 버번. 새롭게 추가된 재료들이 어느새 맛의 주연이 된 거다.
미국은 긴 역사를 가진 나라는 아니다. 대신 '오래되어 보이는 장면'을 잘 연출하는 나라다. 연출에는 소품이 빠질 수 없다. 부활절엔 달걀과 바구니가, 할로윈엔 호박과 귀여운 코스튬이 필요하다. 기원을 따지고 의미를 설명하기 전에, 직관적인 상징들을 배치한다.
민트 줄렙도 그런 소품이다. 1930년대부터 이 술은 켄터키 더비가 열리는 처칠다운스의 공식 음료가 되었다. 그리고 기념용 컵에 담기기 시작하면서 더비의 맛을 넘어 더비의 상징이 되었다.
그런데 왜 하필 금속 컵일까? 안이 보이지 않는데. 실용적인 이유라면 이해가 간다. 금속은 차가움을 빠르게 전달하고, 표면의 성에가 그 차가움을 바로 보여주니까.
하지만 다른 이유가 있다. 초기 켄터키 더비에서 은잔은 우승자에게 주는 트로피였고, 은제 식기는 식탁 위의 취향과 여유를 드러내는 물건이었다. 즉, 이 컵은 차가움과 동시에 승리와 기품을 함께 담는 물건이었다. 그래서 우아함을 연출하는 드레스코드가 될 수 있었다.
미국은 이런 식이다. 구구절절 설명 대신 소품 하나로 분위기를 만들어버린다. 들고, 입고, 찍게 한다. 그렇게 반복된 장면은 어느새 전통이 된다. 줄렙 컵은 그 연출에 딱 맞는 아이템이다. 경기 내내 들고 다니고, 찍히고, 끝나고 가져갈 수도 있으니까.
손에 닿는 순간, 컵이 당신에게 말을 걸 거다.
Now you’re in it.
당신도 이 장면 안에 들어왔다고.
음식은 때로 경기보다 더 강한 기억을 남긴다. 켄터키 더비의 민트 줄렙처럼, 미국에서 야구하면 크래커 잭이 떠오른다. 하지만 두 음식이 기억을 만드는 방식은 완전히 다르다.
크래커잭은 관중석을 수평으로 묶는다. 아이와 어른이 함께 집어 먹게 하고, 이름이 노랫말 속에 들어가고, 관중을 후렴에 태워 '함께 있음'의 감각으로 이끈다.
민트 줄렙은 대신 관중을 장면 안에 세운다. 함께 먹는 간식이라기보다 소품으로 기능한다. 그리고 관객을 이곳에 어울리는, 제대로 '참여하는 사람'처럼 보이게 한다.
크래커잭은 우리를 관중석으로 데려가고,
민트 줄렙은 무대 위로 올려 세운다.
술보다 먼저 장면에 취하게 만드는 것.
이 칵테일의 재능은 거기에 있다.
맥주나 위스키는 병 안에서 이미 완성된 맛을 약속한다. 하지만 칵테일은 다르다. 얼음을 얼마나 잘게 부술지, 민트를 얼마나 으깰지, 젓는 걸 언제 멈출지에 따라 한 잔의 인상이 달라진다.
그래서 경마장에서 12만 잔이 넘는 민트 줄렙을 준비하는 일은 비효율적인 선택이다. 그냥 맥주나 샴페인 미니보틀을 나눠주는 편이 훨씬 쉽고 안전할 테니까. 그럼에도 더비에는 민트 줄렙이 필요하다. 이 칵테일만이 더비를 완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맛있는 칵테일을 만드는 게 바텐더의 재능이라면, 칵테일의 재능은 잔 안에 머물지 않는다. 바깥의 분위기를 만든다. 그리고 우리를 초대한다.
남부의 뜨거운 공기 속으로.
2분의 스릴과 함성 한가운데로.
150년 동안 반복되어 온 무대 위로.
얼음과 민트와 버번과 함께,
더비의 공기까지 컵 안에 섞어놓으면서.
우리가 칵테일을 찾는 건 주로 그런 때다.
맛보다 장면이 필요한 순간.
칵테일의 재능은 그런 게 아닐까.
한 모금으로 분위기를 만들고,
그날의 장면 안으로 우리를 데려다 놓는 재주.
민트 줄렙이 그러는 것처럼.
그게 내가 칵테일을 찾는 이유고,
칵테일을 말할 때 하고 싶은 이야기다.
다음 주는 한 주 쉬어갑니다 ⛵
하루키는 위스키를 더 좋아하지만,
저는 역시 칵테일 파입니다.
그중 피나 콜라다를 가장 좋아한답니다.
여러분은 어떤 칵테일을 좋아하시나요?
※ 참고한 자료
[KentuckyDerby] Mint-Jule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