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첼에겐 앉을 시간이 없다

포드가 연 길을 프레첼이 구르기까지

by 한이람
미국의 달력은 맛으로 넘어갑니다.
미국맛 시즌3은
시간이 맛으로 유통되는 순간을 관찰합니다.




대학생 때 가장 자주 먹은 음식.

보통은 학식 아닐까?


나는 일찌감치 학식을 포기했던 사람이다.

(참고로 우리 학교는 김밥 맛집이었다.)


앉아서 점심 먹는 날이 드물었으니까.


1분 1초가 아까운 연강의 늪.

야작이 일상인 미대생에게 공강은 사치였고,

이동 시간이 곧 식사 시간이었다.


정문에서 학관까지 10분.





그 동선 한가운데 이 빵이 있었다.




이 빵은 왜 식탁을 떠났을까


4월 26일은 미국의 프레첼 데이(National Pretzel Day)다. 전국의 프레첼 체인이 프로모션을 쏟아내는 날. 이 무렵만 되면 이 빵은 평소보다 한 칸 앞으로 나온다. 앱 첫 화면으로, 푸시 알림으로, 몰 안에서는 유난히 선명한 존재감으로.


이 반죽을 느긋하게 앉아 먹어본 기억은 나에게 거의 없다. 그런데 미국에서 본 프레첼의 신세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식탁 위보다는 몰을 누비는 쇼핑백 사이에서, 혹은 놀이공원의 대기 라인에서 더 자주 목격됐으니까. 생각해 보면 이 빵은 식탁보다 이동 중인 하루에 더 잘 어울린다.


프레첼은 언제부터 이동 중에 먹는 빵이 됐을까?


전국구가 되려면 일단 진열대 체질이어야 한다. ⓒ Snyder's of Hanover


원래 프레첼은 독일 빵이다. 18세기만 해도 프레첼은 미국 전체가 공유하는 간식이 아니라, 펜실베이니아 독일계 이민자들끼리 즐기던 지역 음식이었다. 하지만 미국은 이민자 음식을 처음 모습 그대로 오래 두는 나라가 아니다. 19세기부터 프레첼은 쌓고 옮기기 쉬운 하드 프레첼로 변신하며 산업화의 길을 걷기 시작한다. 빵집에 머물던 반죽이 포장되고 운반되는 스낵이 된 거다. 프레첼의 고향이 독일이라면, 그걸 스낵 산업으로 키운 쪽은 펜실베이니아였다. 미국 최대 매출 프레첼 브랜드 스나이더스(Snyder’s of Hanover)도 이곳에서 나왔다.


한편 소프트 프레첼은 프레첼의 원래 얼굴을 더 많이 간직한 쪽이다. 이쪽은 필라델피아를 중심으로 길거리의 리듬을 타기 시작했다. 지역 공동체의 식탁을 지키던 빵이 도시로 나와, 행인들의 바쁜 걸음을 멈춰 세우는 간식이 된 것이다. 그렇게 프레첼의 미국화는 설탕을 붓기 이전에 좌석을 없애는 것에서 시작됐다.


식탁이 아닌 거리.

그게 프레첼이 미국에서 선택한 자리였다.



동선의 빈칸을 메우는 법

Pretzel Lady, Manhattan (1959) By Vivian Maier


프레첼이 거리로 나왔다고 해서 바로 지금 같은 모습이 된 건 아니다. 이 빵이 추진력을 얻은 건 미국 사회가 이동이라는 시스템을 본격적으로 가동하면서부터다.


1910년대 포디즘(Fordism)이 그 시작이었다. 같은 것을 빠르게, 많이 찍어내는 방식. 포드가 만든 건 단지 자동차만이 아니었다. 차를 타고 삶의 여러 지점을 오가는 일상까지 함께 빚어낸 것이다. 공장에서 시작된 혁명은 대량생산된 물건이 굴러갈 수 있는 대중의 삶, 곧 대중시장이라는 무대를 펼쳐놓는 일로 이어졌다.


1950년대 고속도로와 몰 문화는 그 시장의 동선을 완성했다. 도시가 팽창하고, 고속도로가 교외와 도심을 잇기 시작하자 미국의 삶은 집과 도로, 주차장과 몰, 경기장 같은 조각들로 분절됐다. 그 사이를 채우는 건 머무는 시간이 아니라 움직이고 기다리는 시간이었다. 차로 이동해 몰에 도착하고, 그 안에서 다시 걷는 삶. 미국 소비문화도 그런 바퀴와 발걸음 사이를 오가는 삶에 맞춰 재편됐다.


그 사이에 놓이는 음식에도 기준이 생겼다.


편리할 것, 효율적일 것,
그리고 어느 정도 예측 가능할 것.


프레첼은 그 조건을 조용히 다 갖춘 빵이었다.



효율적인 사랑의 형태

쥐기 좋게, 먹기 좋게, 고르기 어렵게.


이동하는 신체가 원하는 건 심플하다.

내 동선을 방해하지 않을 것.
그리고 주변에 민폐를 끼치지 않을 것.


프레첼은 이 무해함의 문법을 잘 이해하는 빵이다. 무난한 짭짤함, 적당한 쫄깃함, 손에 덜 묻는 단정한 표면. 부담스럽지 않아 어디서든 거절당할 일 없고, 익숙해서 언제든 찾게 된다. 이 무난함은 프레첼이 미국이라는 인프라 속에 녹아들기 위해 택한 전략이다. 그리고 이 전략은 맛을 넘어 형태의 진화로까지 넘어간다.


프레첼의 시그니처는 단연 그 꼬인 매듭이다. 그런데 이 매듭은 식감의 편차가 크다. 어느 부분은 쫄깃하고, 어느 부분은 바삭하다. 미국식 프레첼은 이 불균일함을 푸는 방향으로 흘러갔다. 동선을 방해하지 않는 방식으로, 손에 쥐고 이동하며 먹기 쉬운 형태로. 한입 크기의 bites, 쥐기 쉬운 rods, 식사 대용인 dogs까지. 프레첼이라는 본질은 남기되, 불규칙함을 도려내고 쪼개는 방향으로 다듬어졌다. 그렇게 탄생한 형태들은 이동의 리듬을 깨지 않으면서도 프레첼의 맛은 충실히 전달한다.


그러니까 프레첼을 덜 사랑해서가 아니다.

효율적으로 사랑하기로 했을 뿐이다.



흐름을 끊지 않는 기술

주의. 예정에 없는 정차가 자주 발생하는 구간입니다.


효율은 결국 맥락에서 완성된다. 프레첼이 유난히 잘 팔리는 공간이 있다. 몰, 공항, 놀이공원처럼 이동의 피로와 대기의 지루함이 겹쳐지는 곳들. 그래서 프레첼 체인들이 입점하는 위치도 꽤 일관적이다. 에스컬레이터 옆이나 통로 한가운데. 목적지로 직진하는 사람도, 잠시 방향을 바꾸는 사람도 한 번쯤 스치게 되는 곳이다. 걷다가 멈춰 한 손에 쥐고, 다시 걷기 좋은 동선의 한복판. 프레첼은 그런 위치에서 잘 팔린다.


이 빵은 향기도 영리하다. 시나본처럼 공간을 통째로 차지하려는 야심은 없다. 그저 갓 구운 반죽의 따뜻한 향을 매장 근처까지만 흘려보낸다. 멀지 않은 거리에서 코끝을 간지럽히며 가던 길을 늦추게 만든다. 목적지를 향한 리듬을 존중하면서 그 사이의 공백에 끼어드는 기술. 프레첼은 그렇게 미국 사회의 동선 한가운데 자리 잡았다.






공강 없는 대학 시절 내 손에 자주 들려 있던 것도, 움직이고 기다리는 시간이 길어진 미국의 일상 속에 놓여 있던 것도 결국 프레첼이었다.


그렇게 프레첼은 이동이 만들어낸 빈칸을 메워온 빵이 되었다.


우리는 자꾸 도착할 곳만 생각하지만, 삶의 많은 시간은 그곳들 사이를 오가는 데 쓰인다. 멈추고, 기다리고, 다시 움직였던 길. 그 틈과 사이까지도 결국은 내 궤적이 된다.



Pretzels sell best where no one planned to stop.



삶이 굴러가는 한, 틈은 계속 생겨난다.


그리고 어떤 음식은 늘 그 틈에 놓인다.


식탁보다 동선 위에.

한 끼보다 그 사이에.


프레첼은 지금도 어딘가에서

우리와 같은 속도로 굴러가고 있다.





이 글은 미국맛 시즌3의 15번째 맛입니다.
처음부터 먹고 싶다면 프롤로그로.
지난 맛은 시즌1·시즌2에서 확인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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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맛은 이미 꽉 찼습니다.
주유만 하고 넘어갑니다.
Fill it up, Then we go ⛽


※ 참고한 자료

[History] The Pretzel: A Twisted History

목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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