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룽지
어릴 때부터 나는 늘 반려동물을 키우고 싶었다. 하지만 시골에서 키우던 닭에게 종아리를 쪼인 트라우마가 있는 아빠와, 육아에 이미 지쳐 있던 엄마에게 또 다른 생명체는 사치였다. 아빠는 아쉬워하는 나는 달래주려고 동네 수족관에서 금붕어 몇 마리를 사주셨다. 작은 어항 속에서 헤엄치던 금빛 물고기들. 하지만 산소부족으로 얼마 지나지 않아 모두 하늘나라로 떠났고, 그날 이후 나는 부모님께 더 이상 조르지 않았다.
미국에 유학을 오면서 자연스럽게 혼자 있는 시간이 길어지고, 직장 생활을 시점으로 반려동물에 대한 생각은 더 또렷해졌다. 하지만 혼자서 키워야 하는 그 책임감이 생각보다 훨씬 무거워 나의 입양 계획은 잠시 미뤄졌다.
이후 나는 남자친구를 만났고, 그는 나의 약혼자가 되어 같이 캘리포니아의 샌디에고로 이사했다. 이사 온 지 2주쯤 되었을 때, 나는 오빠에게 말했다.
"오빠, 우리 고양이 입양하는 거 알아보는 게 어때?"
우리는 연애 때부터 어떤 반려동물이 우리와 맞을지 고민하고, 우리의 시작엔 고양이가 맞다고 결론을 내린 상태였다. 샌디에고 도착하자마자 우린 입양을 본격적으로 알아보기 시작했다.
미국에서 고양이 입양을 하는 크게 3가지다. 가장 흔한 방법은 쉘터(고양이 보호소)에서 입양을 하는 것이고, 이 외에도 브리더를 통하거나 페이스북을 통해 입양을 할 수도 있다. 우리는 중성화 수술도 받고 기본 건강검진이 완료된 고양이를 데려오는 게 좋을 거 같아 샌디에이고 있는 쉘터들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그렇게 우리는 la jolla에 있는 cat lounge rescue and adoption center에 첫 방문을 하게 된다.
처음 방문한 보호소에는 정말 다양한 고양이들이 있었다. 사람 손을 많이 타 반겨주는 아이부터, 낯을 가려 구석에서 똬리를 틀고 나오지 않는 아이까지. 우리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온 건 중성화 수술을 막 받고 와 세상모르게 자고 있던 하얗고 까만 새끼 고양이들이었다. 눈은 아직 제대로 뜨이지도 않았고, 작은 발가락들이 꼼지락 거리는데 보자마자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그 아이들은 다음 날부터 입양이 가능하다고 해, 우리는 보호소 문 여는 시간을 체크해 두고 다시 오기로 했다.
다음날, 보호소가 오후 12시에 문을 여니 우리는 12시 1분에 도착했는데 이게 웬걸! 이미 두 가족이 그 새끼고양이 두 마리를 입양하려고 대기 중이었다. 우리는 먼발치서 그들이 고양이와 교감하는 모습만 지켜보다가 만져보지도 못하고 조용히 집으로 돌아왔다.
그게 시작이었을까. 그 주말 동안 우리는 거의 160km를 운전하며 정말 다양한 보호소들을 돌아다녔다. 하지만 눈앞에서 입양이 불발된 게 게 한두 번이 아니었다. 마치 2026 새해에 샌디에고 주민들이 단합해서 고양이 입양을 결심한 것처럼, 우리가 맘에 들었던 고양이들은 이미 '간택'이 되어 사라지고 없었다. 대부분의 보호소는 예약을 받지 않고 먼저 온 사람에게 기회가 돌아갔다. 결국 발 빠르게 움직이는 수밖에 없었다.
나의 허탈함을 달래주던 오빠도 실패가 반복되자 전투력이 상승해 어느 순간부터 고양이 가방을 직접 매고 다니기 시작했다. 고양이는 없고 미리 사놓은 장난감만 바라보며 같이 저녁을 먹을 때, 오빠가 Helen Woodward Animal center 웹사이트에 보더니,
"여기 새 고양이가 올라왔어."
이름은 타이. 나이는 7개월 된 호랑이 무늬의 암컷 고양이였다. 길거리에서 구조된 경험은 없고 다른 보호소에서 형제들과 있다가 현재 보호소로 왔다는 설명이 있었다. 사진이 정면샷이라 눈이 유독 매섭게 나와서 조금 흠칫했지만 그래도 만나보기로 했다. 다음날, 센터는 오후 12시에 문을 열기에 우리는 오전 11시 반부터 고양이 가방을 메고 기다렸다. 직원들은 익숙하다는 듯이 반갑게 우리를 맞이해 줬고, 드디어 우리도 다른 사람들을 눈치 보지 않고 천천히 타이와 교감을 나눴다. 타이는 다행히 낯을 가리지 않았고 우리 주변을 맴돌며 자신의 냄새를 여기저기 묻혔다. 이내 오빠와 나는 눈빛을 주고받고 입양 도우미에게 말했다.
"We would love to adopt her."
센터에서는 우리가 입양할 자격이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위해 질문지를 건넸다. 우리가 어떤 사람인지, 하루에 얼마나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는지, 고양이가 어떤 특정한 증상을 보이면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까지 묻는 질문들이 이어졌다. 그렇게 30분 동안 서류 작업을 마치고, 고양이 보험을 등록하고, 입양비를 낸 후 타이를 우리 품에 안았다.
그리고 그녀는 발바닥이 구수하다는 이유로 '누룽지'라는 새 이름을 가지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