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희는 아무리 기억을 더듬어도 마지막 대화가 뭐였는지 떠올릴 수 없었다. 그날도 평소처럼 서로의 하루를 얘기했고, 별일 없었다. 단지 원호가 조금 피곤해 보였다는 것 말고는. 그런데 다음 날 아침, 원호의 답장은 오지 않았다. 어제의 기억을 떠올려보면, 물론 약간의 다툼이 있긴 했지만, 그렇다고 이렇게까지 답이 없을 정도는 아니었다. 점심이 지나도, 저녁이 지나도, 새벽이 되어도 그대로였다. 전화는 통화할 수 없는 번호라며 끊겨버렸다.
나희는 처음엔 휴대폰이 고장 났나, 아니면 급한 일이 생겼나 싶어 하루를 더 기다렸다. 친구들에게 상황을 말하자, 모두 한 목소리로 말했다.
“야… 그거 잠수이별 아니야?”
“이건 진짜 최악이다, 나희야. 최소한 말은 하고 끝내야지…”
“연락을 이렇게 끊는 건 진짜 예의 없다.”
“잠수 이별이라니… 쓰레기네.”
나희는 멍해졌다.
‘이별이라고? 이렇게?’
잠수 이별이라는 단어를 머리로는 알고 있었지만, 설마 그게 자기에게 일어날 줄은 몰랐다. 평소처럼 웃고, 안아주고, 잘 자라고 말해주던 사람이 아무 말도 없이 사라질 거라고는 상상조차 못 했다. 이별했다는 사실보다 정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는 것이 더 큰 충격이었다. 여러 감정이 나희의 안에서 휘몰아쳤다.
이제 원호의 입장으로 가보자. 원호는 나희를 좋아했다. 그녀는 따뜻했고, 솔직했고, 원호가 서툴러도 웃어주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한 가지가 점점 버거워졌다. 바로 연락이었다. 원호는 일할 때 집중하면 폰을 잘 보지 않는 타입이었다. 현장 일이 많았고, 예측불가한 일정이 많아서 답장이 늦을 때도 많았다.
그날도 그랬다. 오후 3시부터 7시까지 휴대폰을 확인할 틈이 없었다. 작업이 몰려 있었고, 팀장이 계속 일을 시켰다. 퇴근하고 폰을 열자, 나희의 메시지가 여러 개 와 있었다.
-뭐해?
-왜 답이 없어?
-일하는 거 알지만 너무 하네… 너만 일하는 거 아니잖아.
-나한테 관심이 없는 것 같아. 변한 거 같다구.
원호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죄책감이 들었고 동시에 마음에 불안감이 가득해졌다.
아… 또 늦게 봤네.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하지…
이러다 또 싸우면 어쩌지…
원호는 조심스럽게 답장을 보냈다.
-미안. 오늘 일 때문에 폰 못 봤어.
나희에게서 바로 전화가 걸려 왔다. 원호가 전화를 받자마자 나희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귀를 찔렀다.
“저번에도 이랬잖아. 맨날 일이면 다야? 내가 이렇게 불안해하는 건 생각 안 해?”
원호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입을 열기도 전에 머릿속이 하얘지고 가슴이 답답해졌다. 나희는 다다닥 쏘아대며 계속 말했다.
“솔직히 말해. 마음이 식은 거야? 왜 이렇게 연락이 안 돼?”
사실 원호의 마음이 식은 것은 아니었다. 문제는 나희와 트러블이 생길 때 원호의 입장을 설명하는 게 힘들었다. 그에게는 감정적인 대화가 가장 어려웠다.
후… 일단 진정하고, 뭐라고 말하지?
‘작업이 많았어’라고 하면 변명 같을까?
‘미안해’라고만 하면 또 반복될까?
대화하다가 말싸움이라도 나면…?
아… 너무 피곤하다… 자고 싶어.
말을 꺼내기도 전에 머릿속이 과부하 되면서 터질 것 같았다. 원호는 그 순간 자신을 잃어버릴 것 같은 두려움을 느꼈다. 그리고 말했다.
“…나희야, 우리 나중에 얘기하자.”
나희는 그 말에 더 화를 냈다.
“왜? 지금 얘기하기 싫어? 왜 자꾸 피하려고 해? 나만 이렇게 신경 쓰는 것 같잖아!”
원호는 더 이상 버틸 힘이 없었다. 대화가 감정적으로 흐르는 순간 그는 늘 도망가고 싶은 충동이 치솟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