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 후, 영후의 폰이 진동했다. 화면에 '미아'라고 떠 있었다. 그 짧은 진동만으로도 영후의 표정이 사색이 되었다. 그는 자연스럽게 소리를 낮추고 전화를 받았다.
“여… 여보세요?”
스피커 너머로 미아의 날 선 목소리가 쏟아졌다.
“주변 보여줘. 지금 몇 명 있어? 왜 이렇게 소리가 시끄러워? 누구랑 있는데? 여자 있어? 카메라 좀 돌려봐.”
친구들 모두 순간 조용해졌다. 공기가 텅 빈 것처럼 느껴졌다. 영후는 얼굴이 하얘졌다가 금세 붉게 달아올랐다.
“아… 지금… 그냥… 친구들이랑…”
말을 더듬는 영후의 손이 떨렸다.
결국 그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휴대폰을 들어 카메라를 천천히 돌렸다. 우리 셋의 얼굴이 차례로 화면에 잡혔다. 지은이와 수정이는 당황해서 어색하게 손을 흔들었고, 나도 순간적으로 어쩔 줄 몰라 인사를 꾸벅했다. 미아는 그런 우리 모습에 더 자극받은 것인지 소리를 마구 질렀다.
“여자네? 여자가 왜 있어? 내가 말했잖아! 여자 있는 데 가지 말라고!!! 지금 장난해? 왜 거기 있어? 아까는 남자 셋이라며? 거짓말한 거야?”
술집 한가운데서 고함이 울리는 것 같았다. 주변 테이블 사람들도 고개를 돌려 우리를 바라봤다. 미아는 붉어진 영후의 얼굴을 아는지 모르는지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댔다.
“지금 당장 집에 가! 지금 바로! 카메라 켜둔 채로 가! 내가 보고 있을 거야.”
우리는 서로를 바라보며 말문이 막힌 채 앉아있었다. 지은이의 입이 살짝 벌어졌고 수정이는 혀를 차며 고개를 저었다. 우리는 모두 어이없는 실소를 내뱉었다.
미아의 행동은 집착을 넘어선 스토킹에 가깝다. 미아는 왜 이런 행동을 할까? 우리는 미아의 행동을 단순 집착으로 치부하기보다 그 안에 어떤 마음이 있는지 확인해봐야 한다. 우리 자신이나 우리가 만나는 상대가 미아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미아에게 사랑은 느끼는 것이 아니라 확인해야 하는 것이었다. 애정 결핍이 있는 사람은 자꾸 확인하고 싶어진다. 특히 그들은 상대가 나에게 대하는 것이 조금만 달라져도 부정적으로 해석하곤 한다. 혼자 있는 시간이 길어지면 자기만의 부정적 세계에 갇히는데 그것이 두려워져서 더욱 상대의 관심과 애정을 갈구한다.
그들은 내가 사랑받고 있다는 명확한 증거를 요구한다. 그게 미아가 했던 위치를 공유하거나, 폰을 검사하거나, 영상통화를 하거나, 그의 하루를 확인하려고 하는 것들이다. 통제를 위한 행동도 맞지만 동시에 자신의 구멍을 메우려고 하는 행동이기도 했다. 애정 결핍이 심하면 사람은 사랑 자체보다 사랑받는 확신을 더 갈망한다. 애정결핍과 함께 나타나는 것은 확인욕구이다. 미아는 영후에게 끊임없이 물었다.
“나 좋아해?”
“왜 답장 늦었어?”
“지금 누구랑 있어?”
“나 사랑하는 거 맞아? 확실해?”
자꾸 묻는 이유는 확신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확인 욕구의 특징은 확인을 받아도 오래가지 않는다는 점이다. 잠깐 안심되지만 조금만 시간이 지나도 불안은 다시 제자리로 돌아온다. 그래서 다시 확인하고, 또 확인한다.
불안 -> 의심 -> 질문 -> 안심 -> 다시 불안 -> 안절부절 -> 확인 요구 -> 잠시 안정 -> 다시 폭주 -> 불안 -> 의심 …
이런 패턴을 반복한다.
문제는 확인이 한번으로 충족되지 않아 계속 반복하게 되고 상대는 점점 지치게 된다. 이유는 이런 반복적 패턴이 더 강하고, 더 자주, 더 깊은 요구로 이어지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