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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희량 Jul 24. 2021

『지구를 위한다는 착각』

지속가능한 발전이란 무엇일까


'진심 어그로 끈다.'


이 책을 처음 알게 되었을 때 한 생각이다.


목차부터 훑어보는데, 내용이 이러했다. "여섯 번째 멸종은 취소되었다", "플라스틱 탓은 이제 그만하자", "저임금 노동이 자연을 구한다", "고기를 먹으면서 환경을 지키는 법"...


진심으로 이런 이야기를 하는 건지, 비꼬는 건지, 아니면 관심을 유도하기 위해 지나치게 과장한 건지 감이 오지 않았다. 그래서 읽었다.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려나 보려고.


여섯 가지 주제로 정리해보았고, 내 생각을 하나하나 달아보았다.




1. 개발도상국을 개발해야 한다.

개발도상국에서는 여전히 나무를 연료로 사용하고 있고, 이건 석탄을 사용하는 것보다 온실가스 배출량이 높다. 그리고 나무를 사용하는 것 그 자체가 숲을 파괴하고 생물 다양성을 파괴하는 행위다. 그렇기 때문에, 개발도상국에서는 에너지 밀도가 높은 연료를 사용한 발전소를 구축하는 것이 시급하다.

개발도상국의 도시화를 촉진시켜 인구 밀집도를 높이고, 나머지 구역의 자연을 최대화하여 보호하는 것이 인간과 자연이 공존하기 위한 최선의 방법이다.

선진국의 재활용 쓰레기는 개발도상국으로 이동하고 버려진다. 하지만 개도국에는 보통 쓰레기 처리 시스템이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아 결국 많은 수가 바다에 버려진다.

개발도상국에 농업 기술을 도입하여 식량 생산량을 높이고, 제조업을 수용해 국가 경제 수준을 높여야 한다.   


기후변화라는 굵직한 주제 아래 우리가 잊고 있었던 중요한 문제를 수면 위로 끌어올린 점에서 의의가 깊다. 바로 불평등의 해소다.


지속가능성이라는 말은 추상적이다. 이제는 기후변화 대응, 온실가스 배출량 감축 등과 동일한 의미로 여겨지곤 하지만, 지속가능성이라는 단어가 포괄하는 범위는 넓다. 유엔에서 SDGs(Sustainable Development Goals, 지속가능한 발전 목표)로 제시하는 내용은 다음과 같다.


기후변화 대응은 17가지 목표 중 하나다. 전 세계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서는 식량 문제와 경제적 불평등, 성차별 등등의 많은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이 모든 지속가능한 목표가 가리키는 방향은 무엇일까? 지속가능하다는 것의 정의는 '모든 사람이 보편적으로 적당하고 안전한 풍요를 누리는 것'이 아닐까.


아직 먹고 사는 것이 힘든 사람들은 수없이 많고, 이 취약한 사람들은 기후변화에도 취약하다. 이 책에서 작가가 말하는 것은 환경의 개선과 함께 사회의 개선에도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것이다. 지구 반대편, 깨끗한 물과 음식조차 구하기 힘든 사람이 최소한의 의식주를 보장 받고 살기 위해서는 개발도 필수적이라는 관점이 새로웠다. 그들 입장에서는 당연한 문제였을 텐데. 금까지 환경을 위해서라면 앞으로는 개발하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해왔기 때문에, 개발과 보호가 공존해야 한다는 말에 머리를 얻어맞은 것 같았다.


물론 수없이 많은 개발도상국들이 모두 선진국 수준으로 개발에 성공했을 때, 온실가스 배출량이 얼마나 많아질지는 짐작도 되지 않는다. 하지만 그렇다고, 너희는 개발하지 말고 계속 그대로 살라거나, 비효율적인 신재생 에너지로만 발전하려고 안간힘을 써보라고 말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이들에게 개발은 현재를 살고자 하는 행위다. 멈추고 노력해야 하는 것은 선진국의 몫이겠지.



2. 신재생 에너지는 비효율적이다.

신재생 에너지는 에너지 밀도가 낮다. 효율이 떨어진다. 넓은 땅을 사용해야 하고, 꾸준한 생산을 유지하기 힘들어 예비용으로 화석 연료 발전소 또는 배터리를 구비해야 한다. 에너지는 형태를 바꿔서 저장할수록 효율이 떨어지고 비용이 높아지기 때문에, 태양열이든 풍력이든 해 쨍쨍 내리쬐고 바람 불 때 잔뜩 생산해뒀다가 저장해서 사용하는 것은 그다지 합리적이지 않다.

특히 신재생 에너지 중 풍력 발전은 야생 동물(특히 조류)에게 매우 큰 위협이라 생물 다양성 파괴에 일조한다.

선진국에서는 개발도상국이 신재생 에너지를 활용하도록 종용하는데, 자기들은 화석 연료 써서 지금 수준까지 발전했으면서 개도국은 그러지 못하게 하고 에너지 도약이니 뭐니 하면서 에너지 밀도 낮은 신재생 에너지를 강요한다? 불공정하다.


충분히 납득할 수 있는 얘기다. 개발도상국도 에너지 밀도가 높은 연료를 사용할 수 있도록 개발이 필요하다는 것과, 신재생 에너지의 효율은 다소 떨어진다는 것. 심지어 수많은 야생동물을 해치고 있었다는 것. 나는 그동안 신재생 에너지로 100% 활용할 수 있도록 바꿔야한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잘 몰랐던 거였다. 세상이 그렇게 흑백으로 나뉘어지는 게 아니란 걸 염두에 뒀어야 했다.



3. 원자력은 지속가능한 에너지다.

원자력 나쁘다고 하는 거 과장이다. 지금까지 발생한 원전 사고의 피해는 알려진 것처럼 심각하지 않고, 안전성과 효율성, 에너지 밀도 등 모든 면에서 봤을 때 가장 친환경적인 에너지 자원이다.

체르노빌 원전 사고로 방사능 피해를 입었을 가능성이 있는 사람은 예상과 달리 25%, 5천 명에 그쳤다. 갑상선암 발생률은 1%다. 지역 주민들의 암 사망 기대치는 0.6퍼센트 높아졌다.

오히려 화석 연료와 바이오매스 연소 시 발생하는 미세물질로 인해 2016년 한해 800만 명이 사망했다. 원전 사고로 인한 피해만 대중에 부풀려져 전달되어 있다.


작가가 말하는 바는 모두 이해한다. 에너지 밀도도 높고, 환경오염 수준도 낮다. 원전 사고로 인한 피해자 수는 화석 연료 발전으로 인한 사망자 수와 비교했을 때 소수다. 신재생 에너지는 현재 인류의 에너지 수요를 충족시킬 만큼 충분한 에너지를 생산하지 못하고 화석 연료는 온실가스 배출량이 많기 때문에, 지속가능성을 놓고 봤을 땐 원자력 발전을 필수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원자력 발전소의 이점은 분명하다.


하지만 작가는 마치 방사능의 위험이 낮다는 것처럼 이야기한다. 단언한 것은 아니지만, 자연 방사능 수치가 다른 곳보다 높은 지역의 암 발생률이 전혀 높지 않다고 말하거나, 후쿠시마나 체르노빌 사고로 인한 암 발생률이 높지 않다고 강조하는 부분에서 나는 순간 정말로 원자력 발전이 괜찮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내가 느끼는 원전 사고에 대한 두려움이 꽤 막연했던 것 같아 피폭 사고의 구체적인 피해 사례를 찾아보게 되었다. (나무위키 참고했음) 결론은, 역시나 원자력에 쉽사리 찬성할 수 없다는 것이다.


각종 방사능 피폭 사고를 보면 굉장히 끔찍하다. 개개인의 사례가 너무 잔인하고 끔찍하다. 세상에 어떻게 이런 종류의 고통이 존재할 수 있을지 공포스럽다. 무인으로 가동된다면 모를까, 소수라도 혹시나 피폭될 가능성이 있는 원자력 발전을 감히 찬성한다고 말할 수가 없다. 작가는 방사능이 위험하지 않다는 게 아니라, 원전 사고로 인한 피해 규모가 다른 에너지원에 비해 상대적으로 크지 않은 것뿐이라고 강조해야 했다. 독자가 방사능에 대한 위험을 경시하지 않도록 설명해야 했다. 경제적인 관점에서는 사고 발생 가능성이 낮고, 피해 규모가 다른 에너지원에 비해 적은 편이니까 원자력 발전이 최선의 선택이라고 말는 것은 너무나 이해가 잘 된다. 하지만 작은 가능성이라도 혹시 누군가가 죽음보다 끔찍한 고통을 겪을지도 모르는데, 쉽사리 찬성한다고 말을 꺼낼 수가 없다. 그렇다고 내가 다른 효과적인 에너지 자원을 제시할 수도 없지만...



4. 플라스틱은 심각한 문제가 아니다.

플라스틱이 발명되기 이전까지는 동물의 껍질, 가죽, 상아, 뼈, 수염 등으로 온갖 소비재를 생산했다. 플라스틱의 발명은 야생동물의 멸종을 멈추게 했다.

어종의 멸종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남획, 혼획이 원인이다.


해양생물 다양성에 가장 큰 위협을 끼치는 것은 플라스틱이 아니라 상업 어업이라는 사실은 <씨스피라시>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플라스틱이 발명되었기 때문에 야생동물의 남획을 막을 수 있었다는 건 신선한 관점이었다. 하지만, 우리가 일회용 플라스틱 용품을 지나치게 많이 쓰고 버리는 것이 문제라고 말할 때, "원래 플라스틱은 발명 당시 환경보호에 큰 도움을 줬고 더 심각한 문제는 따로 있어"라는 대답이 그 문제 해결에 어떤 도움을 주는지는 모르겠다. 플라스틱의 존재 덕분에 야생동물을 지킬 수 있었기 때문에 우리는 플라스틱을 일회용으로 남발해도 되는 것인가? 다른 심각한 문제가 따로 있기 때문에 플라스틱 문제는 가볍게 넘어가도 되는가?



5. 공장식 축산업이 방목형보다 친환경적이고, 채식해봤자 환경적 효과는 미미하다.

IPCC 시나리오에서는 2050년까지 전 세계인이 비건이 되고 목초지를 숲으로 되돌려도 효과는 전체 탄소배출량 중 10%만 절감하는 데 그칠 거라고 했다고 한다.

'리바운드 효과'로 육류 소비를 줄여도 그만큼 다른 소비가 늘어날 것이라 탄소 배출량 감소는 미미할 것이라고 한다.

선진국에서는 육류 생산을 위한 토지 사용 면적이 감소 중이다. 사육의 효율성이 증가했기 때문이다.

방목형 축산은 공장식 축산보다 14-19배의 땅이 더 필요하고, 먹이나 물 등의 자원 사용도 증가한다.

동물의 마음을 편하게 해주기 위해 방목해서 길러야 할 필요는 없다. 축사가 깨끗하고 스트레스가 없는 환경이면 충분하다.

코요테의 습격을 받아 껍질이 벗겨져 죽는 것보다 고통 없이 도살장에서 죽는 것이 나을 것이다.


나는 <옥자>를 보고서도 돼지를 먹을 수 있었던 사람이다. 내 입의 즐거움이 더 중요한 이기적인 사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채식을 결심할 수 있었던 결정적 계기는 환경을 위해서였다. 공장식 축산업이 환경에 미치는 영향이 심각하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온실가스 배출은 물론, 가축 사료를 재배하기 위한 토지 사용과 배설물 처리까지, 내 입으로 고기 한 점이 들어오기 전까지 사용되는 자원과 배출이 어마어마하다는 것을 달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채식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니 축산업의 다른 문제도 비로소 실감했다. 바로 윤리적 문제다. 육식에 대한 인간의 집착이 심각하고, 그 엄청난 수요를 감당하기 위해 동물이 공장 제품처럼 취급되는 것에 불편함을 느꼈다. 우리의 수요가 폭력적이란 걸 깨달은 순간부터 '금지'까지는 아니지만 '자제'는 충분히 시도할 수 있게 되었다. 이제는 채식의 환경적 효과가 미미하다고 말하더라도, 윤리적 문제 때문에라도 현재의 플렉시테리언 또는 그 이상을 위해 노력할 수 있다.


이처럼 축산업의 문제는 환경과 윤리의 문제로 정리할 수 있는데, 작가는 환경적 영향에 대해 가볍게 이야기한다. IPCC의 시나리오에서 육류 소비를 줄여도 효과가 미미할 것이라는 말 속이 불편해다. 국제기구의 연구자료라니 허황된 데이터는 아니지만, 여태껏 책을 읽어오면서 축산업의 환경적 영향이 심각하다는 정보는 무지 많이 보아왔다. 온실가스 배출량이 자동차의 온실가스 배출량을 상회한다는 데이터처럼. 어느 쪽이 사실일까. 설령 IPCC의 데이터가 틀림없다 해도, 실컷 고기 먹으라고 말할 수 있을까?


축산업의 환경 문제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고 생각하고 넘겨보더라도 이 책에서 제시한 근거들은 축산업의 윤리적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동물에게 어떤 삶이 낫고, 어떤 죽음이 나을 거라고 우리가 넘겨짚고 결정하는 것에서부터 잘못됐다. 아주 먼 옛날부터 동물을 잡아먹고 가축으로 키우며 살아온 인류의 모든 역사를 부정하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육식에 대한 현대사회의 광기 어린 수요를 되돌아보자는 거다. 공장식이든 방목형이든, 환경적이든 윤리적이든 문제가 되는 이유는 수요가 지나치기 때문이다. 특히, 선진국에서 풍요롭게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그에 대한 책임이 막중하다. 덜 먹으면 그만큼 덜 길러도 되잖아.


한 커뮤니티에서 가장 쉽게 실천할 수 있는 비건 활동이라며 글이 올라왔다. 바로 SNS에 육식 사진을 업로드하지 않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의 고기에 대한 식욕을 자극하는 것이 곧 고기에 대한 소비로 이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날카로운 지적이다. 우리는 육식을 자랑하고 전시하는 것에 익숙해져 있다. 육식에 대한 열광이 얼마나 뜨거우면, 이 행위를 자제하는 것에서부터 비건의 시작이 될 수 있을까.



6. 기후변화는 심각하지 않다.

자연재해로 인한 사망자 수는 1920년대에 비해 2010년대 들어와 90% 감소했다.

해수면 상승은 점진적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대응할 시간이 충분하다. 네덜란드는 이미 해수면 상승에 적응을 완료했다.

자연재해로 인한 피해금액이 늘어난 것은 도시 인프라가 확대되었기 때문이다. 개발 수준을 고려했을 때 피해금액은 증가하지 않았다.

티핑 포인트 시나리오는 비과학적이며, 가능성이 낮은 재앙을 위해 극단적인 조치를 취하는 것은 비합리적이다.


기후변화가 심각하지 않다고 하는 말에는 공감하기 어려웠다. 데이터를 분석해보면 과거에 비해 피해 수준과 규모가 심각하지 않다는 것은 흥미롭게 받아들였지만, 오늘도 기사에서 본 내용은 쉽게 지나칠 수 있을 만한 내용이 아니었다. 아메리카 대륙 서부 지역의 기온이 54도까지 오르고, 신호등과 타이어가 녹았다. 독일과 벨기에에서는 전례 없는 홍수로 100여 명이 사망했다. 기후변화가 심각한 이유는 '예상치 못한' 재해가 많아지기 때문이다. 예측할 수 없다는 것은 제대로 대비하지 못한다는 의미다. 이것이 기후변화로 인한 재해가 심각한 피해를 주는 이유다. 독일, 벨기에, 캐나다, 미국과 같은 선진국도 속수무책으로 피해를 볼 수밖에 없는 이유다. 종말이라는 극단적인 표현까지는 아닐지 몰라도 기후의 변화가 우리에게 피할 수 없는 위험으로 다가오는 것 분명하다. 지구 곳곳에서 재해 소식이 들려오는데 기후변화가 심각하지 않다는 말을 어떻게 믿지?  예상치 못한 피해에 대비하는 게 극단적이고 비합리적이라면, 내진설계는 왜 해.


 



호들갑을 지적하고 싶은 거라면 이해한다. 우리가 다시 수렵생활을 하던 시절로 돌아갈 수 있는 것도 아닌데, 극단적인 상황을 조장할 필요는 없으니까. 공포를 자극하고, 행동하지 못하는 사람을 비난한다고 긍정적인 변화를 유도할 수는 없으니까.


환경운동에 우리가 모르는 정경계의 비리가 녹아있다는 지적 또한 감사했다. 쉽게 접할 수 없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작가가 제시하는 지속가능한 에너지 대안, 즉 원자력에 나는 찬성할 수 없다. 채식이 무용지물이고 공장식 축산업이 자원 사용에 효율적이라는 얘기에도 동의할 수 없다. 플라스틱 사용으로 인한 피해가 심각하지 않다는 말에도 수긍할 수 없다. 기후변화가 심각하지 않다는 말 또한 믿을 수 없다.


과분한 면죄부를 쥐어주는 느낌이었다. 노력하지 않아도 된다고. 기후변화에 대한 위험이 높지 않다고 해서 지금껏 그래왔던 것처럼 자원을 펑펑 써대는 걸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해야 하나? 플라스틱 쓰레기는 여전히 많을 거고, 축산업과 어업은 여전히 잔인하고 낭비적이겠지. 이게 왜 지구를 위한 착각이야.


현재의 환경 문제는 허황된 소문이 아니고, 예측할 수 없는 피해를 불러온다. 선진국을 포함한 모두가 직면한 문제다. 변화를 위한 노력이 필요한 것은 분명하다. 경 문제를 조금이라도 늦추고, 대비하기 위한 노력 필요하다. 저자가 말하는 것 중 중요한 부분은 그 노력의 주체가 개발도상국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개발이 필요한 건 개발도상국이지 선진국이 아니다. 이미 선진국은 풍요롭고, 지나친 낭비가 익숙하다. 개도국의 개발을 이야기했다면, 선진국의 제동도 언급했어야 했다.


개발도상국 국민들이 인류가 누릴 수 있는 보편적인 생활 인프라를 누릴 수 있기 위해 발전소를 건설하고 공장을 세우는 동안, 선진국에서는 플라스틱 사용을 줄이고, 쓰레기를 줄이고, 육류 및 어류 소비를 줄여야 비로소 지속가능한 발전이 완성되지 않을까. 지속가능한 발전이란, 개도국의 인프라 수준을 높이고 선진국의 낭비 수준을 낮춰 공정한 균형을 찾아가는 과정일 것이다. 나는 깨끗한 물을 마시고,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고, 위생적인 화장실과 충분한 경제활동을 할 수 있는 선진국 국민으로서, 지금까지 노력한 부분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채식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고, 플라스틱 사용을 줄이기 위해 노력할 것이고, 물과 전기를 아껴쓰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물론, 작가의 관대한 시선에 심적 여유를 찾을 수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나는 지금까지 대체로 환경에만 신경 썼고, 기후변화가 날로 심각해지기 때문에 내가 극단적으로 소비를 자제하고 육식을 줄이지 못해 죄책감을 가졌다. 근데 정말, 지금 당장 큰일이 날 것도 아니고, 우리가 지금까지 이뤄온 모든 발전을 부정할 것도 아니고, 지금의 생활양식을 퇴보하지도 않을 거라면 한두번 타협하는 걸 무조건 나쁘다고 책망하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싶었다. 조금씩이라도, 느리더라도, 꾸준히 하는 게 중요하지. 우리가 누려온 삶의 즐거움을 포기하지 못해 스트레스 받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할 수 있는 선에서 함께 즐겁게 줄이는 방향이 장기적 관점에서도 지속가능할 것이다. 1명의 완전한 비건보다는 100명의 어설픈 비건이 낫다는 그 말처럼.


이 책에 대해서 동생과 꽤 깊은 얘기를 나눴는데, 인상 깊은 말을 해줘서 마무리를 장식한다. 우리가 지금까지 고민하고 행동해온 것은 지구를 위한 착각이 아니다. 미래를 위한 노력이다.


 누군가 비행기를 만들 때,
낙하산을 만드는 사람도 필요하대.
<인사이드 아웃>에서 슬픔이가 결국 중요한 존재임을 깨닫듯이






커버 이미지는 Iva Rajović, unsplash.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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