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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희량 Mar 20. 2023

장인 정신은 구시대적 가치일까

기술(technology)의 시대, 기술(skill)을 생각하다

패션 위크에 스프레이로 옷을 만들거나(코페르니), 자외선으로 옷에 색을 입히는(언리얼에이지) 브랜드가 등장했다. 코페르니와 언리얼에이지는 전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바야흐로, 기술의 시대다. 하지만 아이러니한 일이다. 지금껏 패션에서 가치를 인정받아온 브랜드들은 수작업의 가치를 품고 있었다. 획기적인 아이디어와 디자인을 장인의 손으로 구현하는 것이 럭셔리 패션의 본질적인 가치다. 그렇다면, 이 기술의 시대에 장인 정신¹⁾은 어떤 가치를 지닐까?


1) 장인 정신: 이 글에서 장인이란 오랫동안 익힌 기술을 바탕으로 정교하게 물건을 만드는 사람이다. 디자이너가 아닌 제작자를 의미한다. 봉제, 자수 등 다양한 분야가 있다.


언리얼에이지 2023 Fall 런웨이, 이미지 출처: dezeen / 코페르니 2023 Spring 런웨이, 이미지 출처: 보그





패션 산업에서 장인 정신이란


예술의 역사에서 장인 정신은 굴곡진 흐름을 탔다. 중세 시대에는 장인 문화가 발달했으나, 미술의 가치가 높아지며 장인의 가치가 격하되었고, 산업화 이후 대량생산 시스템을 거치며 장인의 가치는 약화되었다. 하지만 현대 패션에서 장인 정신은 매우 중요하다. 제품의 가치를 높이는 핵심 요인이기 때문이다. 특히 럭셔리 패션의 브랜드 가치는 장인 정신과 단단히 결탁되어 있으며, 장인 공방에서 출발한 럭셔리 브랜드들은 브랜드 헤리티지에 장인 정신이 우뚝 자리잡고 있다. 패션산업은 다른 어떤 분야보다도 장인 정신을 중요하게 인식하는 분야일 것이다.


이미지 출처: The Fashion Law


물론 럭셔리 패션에서의 장인도 그 존재 자체로 예술적 가치를 지닌다기보다는, 디자이너가 제시한 예술적 아이디어를 구현하는 역할에 그친다. 만약 장인이 예술적 가치를 인정받았다면, 장인은 디자이너 뒤가 아니라 앞에 위치했을 것이다. 우리는 어떤 장인의 이름도 모르지 않는가. 하지만 럭셔리 패션과 장인 정신은 아마 어떤 혁신적인 기술로도 끊을 수 없는 사이일 것이다. 장인의 손길을 거쳤다는 사실은 제품의 높은 품질을 증명하고, 희소성을 가리킨다. 오랜 시간 정성을 다해 만든 결과물로, 진정성까지 함축한다. 즉, 장인 정신은 ‘럭셔리’의 기본적인 정체성을 형성하는 중요한 조건인 것이다.


따라서 럭셔리 패션 브랜드는 장인 관리에 힘을 쏟는다. LVMH는 ‘메티에르 덱실랑스 교육 기관(Institute of métiers d’excellence LVMH)’을 운영하며 장인을 양성하고 훈련하는 데 힘을 쓰고 있으며, 샤넬은 니트웨어, 자수 장식, 주름 장식, 금세공 등 다양한 분야의 공방과 파트너십을 맺으며 장인 관리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다. 특히 샤넬은 2022년 1월 ‘Le 19 M’이라는 공방 복합 공간을 오픈하며, 600명의 장인들이 작업하고 작품을 전시하는 커뮤니티 공간을 마련했다. 이처럼 럭셔리 패션 브랜드는 장인과의 더 효과적인 협업을 위해 고민하고, 장인의 후대 양성을 위해 노력한다.



서구 기반의 장인 정신


한산모시짜기 장인의 모습, 이미지 출처: 국가문화유산포털


하지만 현재 패션산업에서 활용하는 장인은 보통 서구 문화 기반이다. 패션의 장인은 테일러링, 구두 등 서구의 방식으로 패션 제품을 제작하는 사람들이다. 전 세계 패션 문화가 서구 복식 중심이니 당연한 일일 것이다. 패션산업 역시 여전히 세계를 지배하는 식민주의적 위계에 깊이 물들어 있다.


반면 비서구 국가에서 전해내려온 장인 문화는 철저히 배제되어 왔다. 우리나라를 생각해보자. 한복뿐만 아니라 염색, 누비, 자수, 매듭, 모시짜기, 명주짜기 등 다양한 분야에 장인이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전통 장인은 문화유산이라는 고증적 가치만 인정받아왔고, 서구 패션의 장인들처럼 경제적 가치를 인정받기 힘들다. 수요도 적고, 후대 양성도 어려운 경우가 많다. 장인에 대한 공공 지원도 활동비 지원이나 작업환경 개선과 같이 예술의 존속과 장인의 생존에 초점이 맞춰 있다.


이처럼 패션 산업은 서구 중심적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문화적 전유 논란이 끊이지 않는다. 서구에서 바라본 일방적인 시각으로 비서구 문화를 그리고, 존중 없이 사용하는 것이다. 만약 비서구 국가의 전통예술을 체화한 장인이 패션 산업의 적극적인 참여자로 존재한다면, 타자화된 시각이 아닌 주체의 시각을 보여줄 수 있을 것이다. 비서구 국가의 장인도 문화재가 아닌 산업 종사자로 거듭날 수는 없을까? 비서구 국가의 장인 문화는 어떻게 경쟁력을 인정받고 세계로 뻗어나갈 수 있을까?



한국 장인 문화의 방향성


미스 소희(Miss Sohee)의 작품, 이미지 출처: 신세계 매거진


그렇다면, 한국의 장인들을 한국 패션 산업만의 고급 인력으로 구성해보는 것은 어떨까. 국내 전통예술 장인 공동체를 좀 더 체계적으로 관리함으로써 한국 패션의 품질과 진정성, 그리고 지역성을 높이는 것이다. 럭셔리 패션 브랜드의 장인 관리 시스템을 참고해볼 수 있을 것이다. 공방을 기반으로 패션 하우스를 구축하여 디자이너와 장인의 협업을 모색하는 것이다.


이를테면, 최근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얻은 한국인 디자이너 브랜드 ‘미스 소희(Miss sohee)’를 보자. 한국적인 자수가 눈에 띄는 작품이 많다. 만약 미스 소희에 국내 전통자수 장인들을 연결시켜 장인 기반의 생산 시스템을 구축하면 어떨까. 미스 소희의 자수는 장인의 작업을 통해 정통성을 얻고, 품질 또한 보증할 수 있을 것이다. 장인과의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더 진정성 있는 전통예술을 구현하게 될 수도 있다. 이를 통해 국내 전통예술 장인의 입지가 높아지고, 새로운 수요를 이끌어내며, 한국 기반의 또 다른 패션 브랜드가 나타나게 되는 등 선순환적인 구조를 마련할 수도 있다. 전통예술 보전을 위한 소극적 지원을 넘어서서, 장인 공동체를 형성하고 수요를 집중하며 활동 범위를 확장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럭셔리 패션 브랜드가 장인을 대하고, 장인과 함께 일하는 모습을 생각해보자. 한국에서 럭셔리 브랜드의 방식을 그대로 따라할 수는 없겠지만, 장인을 존중하고 공생하기 위한 방법을 찾는 모습은 배울 만하다. 이들을 어떻게 자본과 연결시킬 것이며, 경쟁력을 높일 것인지 고민하는 것이다. 이는 지역의 특색 있는 문화를 소중하고 자랑스럽게 여기는 태도에서 비롯될 것이다. 흩어져 있는 한국의 전통예술 장인을 모아 공동체를 형성하고, 지속적인 수요를 제시할 수 있는 방법을 다 같이 고민해볼 수 있길 바란다.






장인 정신의 가치가 더 빛나기 위해서는 그 빛을 알아보는 사람이 더 많아져야 할 것이다. 가장 지역적이고, 오래되고, 느린 가치를 소중히 여겨주는 사람이 더 많아졌으면 한다. 이러한 바람을 담아, 유튜브 채널 하나를 소개하며 마무리한다. 한국문화재재단에서 운영하는 문화유산채널로, 장인이 공예품을 만드는 과정을 ASMR 영상으로 담는다. 장인의 정성이 빚어내는 느리고 촘촘한 가치. 참 귀하다.






참고문헌

홍준영, 전재훈 (2021). 슬로 패션의 가치를 지향하는 디자이너 브랜드 분석: John Alexander Skelton과 Geoffery B. Small을 중심으로. 한국의류학회지, 45(1), 136-154

Ma, J. (2023) Traditional Fashion Practice and Cultural Sustainability: A Case Study of Nubi in Korea. Fashion Practice, 15(1), 64-90

우드플래닛, 공예의 의미, 역사적 변용과 현대적 상황(2021)



이 글은 문화예술 플랫폼 안티에그에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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