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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희량 Jul 03. 2023

여성은 레깅스를 자유롭게 입을 수 있는가

레깅스를 입는 것이 좋다. 모든 움직임이 편하고, 다리에 펄럭거리는 천이 없어 깔끔하다. 그 어떤 방해도 받지 않고 자유롭게 다리를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이 흡족하다. 맨다리를 드러내는 것과는 다르다. 더운 여름 날, 많은 사람들이 앉았던 지하철 의자에 맨살이 닿는 게 싫기 때문이다. 여러모로 레깅스는 내게 논리적으로 유용한 아이템이다. 그러나 레깅스를 입는 것은 쉽지 않다. 레깅스를 입을 때마다 레깅스에 얽힌 복잡한 가치 충돌을 마주하기 때문이다.


레깅스의 시초는 14세기 무렵 스코틀랜드에서 시작되었다고 하는데, 그때는 남성이 주로 착용했다.  당시에는 스코틀랜드 군대에서도 사용했다고 하니, 레깅스의 시작은 기능성이 주요 목적이었던 것이 분명하다. 이 목적은 현대에 와서 더 극대화된 셈이다. 활동성, 신축성, 땀 흡수력 등 레깅스는 발전된 기능성을 증명했다.

그러나, 현대의 레깅스는 여성복에 가깝다는 걸 생각해보자. 지난 해 젝시믹스의 남성용 레깅스 매출액은 전체의 13%에 그쳤다. 성장세라고는 하나, 여전히 여성 소비자가 다수다. 여성만 레깅스를 즐겨 입는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우리 사회는 여성의 다리를 드러내는 것에 더 익숙하다. 레깅스를 입는 것이 기능성에 주목한 결과라면 남녀노소 불문하고 레깅스를 입어야 하지만, 여성에 편중되었다는 점은 레깅스가 여성의 신체와 밀접한 관련을 갖기 때문이다. 두 가지 측면에서 살펴보자.


첫째, 레깅스는 여성의 신체, 특히 다리에 적용되는 이상적인 미적 기준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아이템이다. 레깅스를 판매하는 브랜드는 팔다리가 길쭉하고, 마르고 날씬한 (백인) 여성을 모델로 세운다. 이상적인 몸의 모습은 소비자들의 구매 욕구를 자극한다. 뿐만 아니라, 이상적인 몸을 자기 관리에 연결해서, 부지런한 사람만 얻을 수 있는 가치로 암시한다. 그러나 꾸준한 운동과 관리는 ‘피지컬100’에 나온 장은실 선수처럼 근육질의 몸으로도 연결되어야 하지 않나. 레깅스는 얇고 마른 몸, 동시에 가슴과 엉덩이 볼륨은 갖춘 몸만을 기준으로 소구될 뿐이다.


둘째, 레깅스는 여성의 몸매, 특히 신체의 섹슈얼한 부위를 드러낸다. 레깅스를 입을 때 겪는 불편함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다리를 쳐다보는 시선이고, 다른 하나는 엉덩이를 가리기 위해 꼭 긴 티셔츠를 함께 입어야 한다는 점이다. 레깅스를 입은 남성을 선정적이라고 생각하는가? 민망하다고 생각할 수는 있다. 여성의 레깅스는 그와는 다른 섹슈얼한 맥락이 있다. 여성이 레깅스를 입는 것이 선정적이라고 느껴진다면, 다리를 드러내는 행동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 여성의 다리에 부여된 선정성이 잘못된 것이다. 여성의 신체 라인을 드러내는 행위가 유독 섹슈얼하게 여겨지지 않았다면, 지금보다 더 자유롭게 레깅스의 편안함을 누릴 수 있었을 것이다.


만약 여성의 다리가 날씬한 모양으로부터 자유롭고, 그저 신체의 일부로 받아들여진다면 레깅스의 기능성은 더 인정 받을 수 있을까? 아무런 제약 없이 몸의 편안함을 추구하고 싶은데, 몸을 드러내든 가리든 어떤 외부의 압박 없이 자유롭게 선택하고 싶은데, 가능한 일일까?




본 글은 단대신문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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