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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희량 Oct 04. 2023

뮤지엄한미 윌리엄 클라인 전시 리뷰: 패션을 중심으로

윌리엄 클라인은 정적인 매체인 사진에서 움직임을 다룬다는 점이 특히 인상 깊었다. 그는 갑작스럽게 등장하거나, 사라지거나, 움직이는 피사체에 환호했다. 흔들림을 적극적으로 활용함으로써, 멈춰 있지만 멈춰 있지 않은 역동적인 사진을 찍었다. 무질서한 일상의 찰나를 담아냄으로써 삶의 연속성을 담았고, 그렇게 가장 실제와 가까운 모습을 표현했다. 완벽한 균형과 구도로 찍는 사진을 거부하고, 자신이 보는 세상을 가장 솔직하게 담는 것이다. 그의 사진에서 세 가지 특징이 눈에 띄었다.



모델의 실존과 주체성


패션 사진은 보통 피사체와의 거리가 멀다. 모델은 친숙한 존재가 아니라 낯설고 쉽게 닿을 수 없는 존재처럼 나타난다. 다수와 차별화되고 대중의 열망을 유도해야 하는 패션의 특징이 반영된 결과다. 그러나 클라인의 사진에서 모델은 거리와 같은 일상적인 공간에서 등장한다. 걸어가는 모습을 찍거나, 멈춰 있더라도 동적인 자세로 등장한다. 실제로 살아있는 사람처럼 모델의 존재를 포착한다.


클라인의 사진에서 모델은 피사체로서의 대상이 아닌 주체로 존재한다. 스스로 움직임을 선택하고 역동적으로 살아 있는 주체이다. 카메라 렌즈를 정면으로 응시함으로써 사진을 보는 사람과 눈이 마주치는 듯한 느낌을 받고, 심지어 카메라를 가리키기까지 한다. 모델의 생동감 있는 모습은 시선을 빼앗는다. 클라인의 사진은 정돈된 스튜디오보다 더 모델에게 시선을 집중시킨다.


패션쇼 무대 뒷편을 찍은 사진에서는 흔들림이 많고 격한 움직임이 느껴지는데, 이 장소의 급박한 분위기를 생생하게 전달한다. 백스테이지 사진은 잔뜩 흔들려 선명한 피사체가 없지만, ‘살아 있는’ 패션의 현장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그의 사진이 가진 역동성과 생동감은 패션을 담았을 때 가장 빛났다.





도시와 패션


전시에는 몇 개의 영상이 있는데, 그중 빠르게 명멸하는 네온사진을 찍은 영화가 있다. 도시의 밤을 상징하는 네온사인이 끊임없이 움직이고 반짝이는 모습을 담았다. 도시의 역동적인 공간성을 가장 효과적으로 보여준다. 밤에도 빛이 꺼지지 않고, 멈춤이 없는 장소. 네온사인과 다양한 간판은 도시의 거리를 상징한다. 클라인의 사진 중에는 네온사인이나 호텔 간판을 배경으로 모델이 우뚝 서 있는 모습이 여럿 보인다.


도시의 역동성은 패션과 맞닿아 있다. 패션 또한 끊임없이 변화하고 역동적인 분야이며, 무엇보다도 다수의 관심이 집중된다는 점에서 도시와 같다. 움직임에 주목하는 클라인이 지속적인 변화를 내포하는 도시와 패션을 찍는 것은 자연스러운 흐름이 아니었을까. 특히 모델이 파리의 지도를 배경으로 서 있는 사진이 있다. 짙은 회색으로 칠해진 파리의 거리가 검은 옷을 입은 모델로 수렴하는 모양새다. 도시의 관심이 주목되는 패션을 형상화한 듯하다.


도시는 패션과 깊이 연결되는 공간이지만, 도시에는 여러 장소가 있다. 고급스러운 상점가가 있는가 하면, 그래피티나 포스터가 가득한 낡은 거리도 있다. 클라인이 선택한 배경은 횡단보도나, 간판이 가득 걸려있는 곳, 또는 금이 간 건물의 외벽이다. 패션의 도시적인 성격 덕분에 거리의 배경과 모델의 모습은 잘 어울리는 듯하지만, 한편으로는 대중적이고 지저분할 수 있는 공간과 깔끔하고 고급스러운 모델의 모습이 이질적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금이 가고 흠집이 난 건물 외벽과 벗겨진 페인트 흔적은 세련된 옷차림의 모델과 아주 대조적이다. 클라인은 스튜디오와 같이 깔끔하게 정리된 배경에서 벗어나며 기존의 촬영 관행을 거부했지만, 오히려 모델의 모습을 더 강조하는 방법을 보여주었다.




거울


거울이 여럿 등장한다. 대상을 다각도로 비추는 거울의 존재로 인해 어떤 시선이 강하게 느껴졌다. 사진을 보는 관람자의 시선뿐만이 아니라, 사진 속에서도 모델을 응시하는 시선이 사방에 존재했다. 거울은 사진의 사각형 테두리가 담지 못한 외부의 시선을 사진 내부로 가져왔다.


클라인은 카메라 정면에 거울을 배치하여 모델의 모습을 여러 방향으로 담았다. 이를 통해 모델을 바라보는 여러 시선이 드러난다. 사방에서 모델을 응시하는 시선이 존재함을 알린다. 그 시선은 외적 아름다움에 대한 지나친 집착이자, 타인의 외모를 재단하고 평가하는 사회적 시선이다. 이로써 타인의 시선을 가정하는 거울의 역할이 극대화된다.


모델 한 명을 굴곡진 거울이 비추는 사진이 있다. 거울은 모델을 비출 뿐만 아니라 반대편 거울도 비추며 수십 명의 모델을 만들어낸다. 똑같은 옷을 입고, 똑같은 자세를 한 모델이 조금씩 다른 각도로 서 있다. 거울은 그 어떤 사각지대도 없이 모델을 비춘다. 모델을 바라보는 무수한 시선이 느껴진다. 외적인 완전함을 추구하는 미적 기준, 타인의 아름다움을 끊임없이 평가하는 시선이다.





재현은 실재가 될 수 없다. 그러나 종종 극도의 연출이 극도의 사실을 표현해내기도 한다. 레슬리 제이미슨의 『비명 지르게 하라, 불타오르게 하라』에서는 “…사진에 대한 욕망은 … 중재를 거치지 않은 현실의 모습을 보여줄 것이라는 집단 망상의 방증”이라는 서술이 있다. 사진은 현실을 있는 그대로 재현하리라는 기대를 받지만, 실제로는 인위적인 연출이 선행되고, 또 연출되었기 때문에 더 사실 같은 장면을 담아낸다는 것이다. 클라인은 의도적인 연출과 우연한 상황을 동시에 담았다. 우연적인 장면은 현실을 사실적으로 다듬는 연출에 힘입어 더욱 생생해진다.


클라인은 정지된 화면의 역동성과 연출된 장면의 사실성으로 사진의 역설을 보여주었다. 이 역설은 패션을 담았기에 더 강조되었다. 클라인은 패션 사진에 예술성을 더하고, 관습적인 이미지에서 벗어났으며, 비판적인 메시지를 담았다. 패션의 안팎에서 바라본 시선 덕분에 패션에 대해 다방면으로 사유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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