깎고 기르고 잘라온 털에 담긴 의미
우리는 온몸의 털(hair)을 깎고 기르고 자르고 다듬기 위해 늘 고민한다. 당신이 남자든 여자든 몸의 털로 인해 무수한 시간을 들여보았을 것이다. 누군가는 깎기 위해 애를 쓰고, 누군가는 기르기 위해 애를 쓴다. 우리가 털에 공을 들여온 역사는 깊다. 온몸을 뒤덮고 있는 털의 이모저모를 살펴보자.
털은 생물학적인 동시에 사회적이다. 여러 문화권에서는 털에 서로 다른 의미를 부여해왔다. 지역의 기후에 따라 털을 관리하는 방법이 달라지기도 하고, 종교적인 의미로 털을 깎아내기도 했다. 예를 들어 고대 이집트 사회에서는 모래 바람이 자주 불어서, 모래 알갱이를 빼내기 쉽도록 머리를 짧게 깎거나 제모하는 일이 잦았다. 또, 사제는 머리카락을 짧게 깎아야 하며 이틀마다 온몸을 제모해야 하는 관습이 있었다. 이처럼 털은 환경적 이유로, 사회적 이유로 이리저리 변형되어 왔다.
털을 관리하는 방법은 오랫동안 발전해왔다. 제모를 위한 도구와 재료는 고대 시대부터 있었고, 로마의 귀부인은 물론, 중세와 르네상스 시대의 여성도 당대의 미적 기준에 부합하기 위해 열심히 털을 뽑아왔다. 당시엔 넓은 이마가 고귀하고 아름답게 여겨져서, 이마의 머리카락을 제거하는 것이 유행이었다. 이처럼 털을 꾸미는 것은 몸을 장식하는 복식(dress) 중 하나다.
털의 관리가 문명과 함께 발전해온 만큼, 서구 사회는 털을 미개함과 연결시켜 왔다. 털은 문명과 야만을 구분하는 기준이었다. 매끈한 몸은 인간이 동물과 다른 점을 보여준다고 여겼다. 털을 멸시해온 역사는 고대 그리스·로마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이는 현대까지 이어져 털이 없을수록 문명화된 존재라는 인식이 기저에 깔려 있다. 하지만 이상한 점은 이러한 인식이 주로 흑인과 여성의 몸을 겨냥한다는 것이다. 세상은 백인과 남성의 털은 긍정하고, 흑인과 여성의 털은 경멸해왔다.
남성의 털은 권력과 연결되곤 했다. 고대 이집트에서는 턱수염이 절대 권력을 상징했고, 신이 아닌 인간은 오직 파라오만이 턱수염을 기를 수 있었다. 여성이 왕이 되어도 턱수염을 붙이고 의식에 참여했다는 기록으로 보아, 턱수염이 곧 파라오의 권위를 나타냈음을 알 수 있다. 남성은 생물학적으로 권위를 증명할 수 있는 반면, 여성은 남성의 털을 위장함으로써 권위를 내세울 수 있었다.
털, 특히 수염이 (남성의) 권력을 내포해온 사실은 인류의 역사를 관통한다. 서구의 남성 지식인을 보면 알 수 있다. 고대부터 근대에 이르기까지 남성 철학자의 초상화엔 수염이 무성히 등장한다. 이들의 수염은 지성과 권위를 나타낸다. 문명의 발전과는 별개로 남성의 털은 늘 옹호 받아왔다.
반면 여성의 털은 어떨까. 현대 여성은 머리카락을 제외한 모든 체모를 제거하기 바쁘다. (여성의) 털은 추하고 비위생적인 대상으로 여겨졌으며, 털이 없는 깔끔한 상태만이 여성성을 증명할 수 있었다. 그중 여성의 겨드랑이 털은 특히 엄격한 사회적 시선을 받아왔는데, 그 시작을 파헤쳐 보면 면도기 회사의 마케팅 전략이 있었다. 1915년, 면도기 브랜드 질레트(Gillette)는 ‘불쾌한 털’이라는 표현을 쓰며 겨드랑이 제모제를 홍보했다. 여성의 겨드랑이 털은 부끄러운 것이며, 사회적으로 부적합하다고 말했다. 이러한 광고를 통해 여성이 겨드랑이 털을 깎는 것은 여성성의 수행을 위해 필수적인 일로 자리 잡았다.
이처럼 기업의 상업적 전략과 여성의 외모에 대한 사회적 억압이 만나, 여성은 털 하나 없이 깨끗한 몸을 유지해야 했다. 이러한 관점에 반대해서, 일부러 겨드랑이 털을 드러내는 여성도 등장한 지 오래다. 1960-70년대 제2물결 페미니즘의 시기에도 많은 여성들이 겨드랑이 털에 얽힌 억압과 강요를 거부해왔고, 현대에도 여러 셀럽들이 겨드랑이 털을 드러내며 고정된 강요를 벗어나려 하고 있다. 물론 털 하나 빼고는 사회적 이상미에 완전히 일치하고, 셀럽의 파티 현장 또는 화보라는 장소의 특수성 때문인지, 그 효과는 미미하다. 하지만 이러한 노력들이 조금씩 변화의 물결을 만들어내길 기대해본다.
한편, 머리 스타일의 경우 인종이나 문화적 정체성을 나타내기도 한다. 예를 들어 아프로(Afro) 스타일은 흑인에게 가장 자연스러운 머리 상태로, 흑인의 정체성과 직결된다. 그러나 털을 관리하는 방식에 인종과 지역, 문화, 사회적 가치가 다양하게 달라붙어 있듯, 털에 얽힌 차별도 사회 보편의 문제와 같은 맥락을 가진다. 흑인의 구불거리는 굵은 머리카락이나, 이로 인한 특유의 머리 스타일(Afro-textured hair, kinky hair)은 오랫동안 차별과 경멸의 대상이었다.
흑인의 머리 스타일에 대한 차별은 흑인 노예가 시작되던 17-18세기부터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18세기의 흑인, 특히 흑인 여성은 머리 스타일을 바꾸기 위해 독한 약으로 두피에 화상까지 입어가며 곱슬머리를 펴내야 했다. 19세기엔 체모를 기준으로 인종을 구분했고, 심지어 백인의 순수성을 유지하기 위해 매끈한 피부를 가진 여성을 선호했다. 그리고 몇백 년이 지난 지금은 자라 매장에서 일하는 흑인 직원에게 전문성이 없어보인다는 이유로 머리 스타일을 바꿀 것을 요구한다. 흑인의 머리 스타일은 깔끔하지 못하고 문명화되지 않았다는 차별의 인식이 아주 오래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머리 스타일에 대한 차별은 단순한 미적 취향의 차이가 아니다. 이는 제국주의와 식민주의 시대에 약자의 머리카락을 잘라온 탄압의 역사와 궤를 같이 한다. 15-16세기 유럽인들은 아프리카의 흑인을 노예로 끌고 오는 과정에서 이들의 머리를 깎았고,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일제 시대에 행해진 단발령이 있었다. 모두 기존 집단의 문화를 삭제하기 위함이었다. 고유한 머리 스타일을 박탈하는 것은 차별과 혐오의 시스템으로, 집단 사이의 부당한 관계를 여실히 보여준다.
흑인의 털을 존중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점차 커졌다. 이에 2022년, 미국에서는 CROWN(Creating a Respectful and Open World for Natural hair) 법안이 통과되었다. 다양한 인종의 자연스러운 머리 스타일을 존중하기 위함으로, 머리카락에 대한 차별을 금지하는 법안이다. 법안이 통과되었다는 건 국가가 머리 스타일에 대한 차별을 사회적 문제로 인지하고, 공식적으로 제지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부러운 일이다.
털을 관리해온 역사는 유구하나, 털에 대한 차별의 역사는 그만큼 길지 않다. 털에 얽힌 미적 가치는 절대적이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털에 얽힌 편견과 고정관념은 아직(!) 극복되지 못했다. 여성은 여전히 몸의 털을 없애기 바쁘고, 흑인은 머리 스타일을 이유로 고충을 겪는다. (여성 또한 머리 스타일로 고충을 겪을 수 있으나, 분량의 문제로 생략했다.) 털을 마음대로 깎고 기르고 꾸밀 수 있는 자유는 생각보다 소중한 것이다. 그 어떤 털도, 그리고 털의 유무조차도 모두 포용하는 세상을 기대한다.
참고문헌
한겨레, [이유진의 바디올로지] 제모산업에 담긴 인종·성 차별과 계급화의 질곡(2023. 8. 9)
여혜연, 임미라, 이종신. (2012). 20~30대 여성의 제모에 대한 인식 및 이용실태와 만족도. 한국미용학회지, 18(2), 435-445.
전혜숙, 박규미. (2013). 고대 이집트 제모문화에 관한 연구. 한국미용학회지, 19(1), 125-134.
오디오 매거진 <정희진의 공부> 2023년 1월호
Economic Policy Institute, The CROWN Act - A jewel for combating racial discrimination in the workplace and classroom (2023. 7. 26)
The Guardian, The new feminist armpit hair revolution: half-statement, half-ornament (2019. 6. 24)
문화예술 플랫폼 Antiegg에 연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