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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이린 Oct 17. 2020

4. 브랜드 매니저란

"브랜드의 건강 관리자"

오랜 남아선호사상으로 인해 남녀 성비 불균형 문제가 중국에서 가장 여성 인구 밀도가 높은 공간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여자가 많다. 10명 중 8명이 여자, 그리고 나머지 둘은 게이라는 사실이 크게 이상하지 않은 이 곳, 화장품 회사.


우리 팀도 크게 다르지 않다. 부모님이 베트남 전쟁 당시 시드니로 피난하여 식당을 차리면서 정착하게 되었다는 베트남계 호주인 레몬. 성역할에 자신을 가두지 않는 사람이 얼마나 매력적일 수 있는지를 보여준 그는 내 지인 중 가장 경험을 나누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다. 어제 쇼핑 갔다가 발견한 경쟁사 신제품 부터 지난 주말 북한 여행에서 느낀 점 까지, 크고 작은 경험을 정리해서 팀원들에게 메일로 보내곤 한다. 독일 본사에서 방문한 임원과 함께 비즈니스 리뷰를 마치고 모두가 안도의 숨을 내쉬던 10월의 어느 날, "마케팅에 대해 나누고 싶어" 라며 메일을 보내왔다. 회의실에 둘러 앉은 팀원들에게 그가 던진 첫 질문은 모두를 대학 강의실로 돌려 놓았다.


"마케팅을 한 문장으로 정의하면?"

마케팅을 업으로 하는 팀원들 사이에서도 뜨거운 감자였다. 그 논란을 입증하듯 Marketing definition이라는 구글 검색 결과는 무려 2,500,000,000건에 달한다. 경영의 아버지라 불리는 학자들의 정의에 따르면 마케팅은 기업이 고객을 위해 가치를 창출하고 강력한 고객 관계를 구축하여 고객에게 가치를 얻는 과정이며, 기회를 찾아내고 개발하여 그 기회를 통해 수익을 올리는 기술이기도 하다.


그래서 뭐가 마케팅인데? 라고 되 묻고 싶게 만드는, 이토록 큰 범주를 포괄하는 마케팅은 제품 혹은 서비스의 종류 및 생애 주기에 따라 다른 종류의 활동을 필요로 하게 된다. 시장과 소비자의 숨겨진 니즈를 파악하고 이를 충족시킬 수 있는 제품을 기획하고 개발하는 단계부터, 제품을 소비자에게 효과적으로 알리기 위한 광고, 디지털 마케팅 등 홍보 활동들이 모두 마케팅의 하위 범주이다. 마케팅 하면 홍보와 연관된 단어들이 먼저 떠오르는 이유는 필시 소비자랑 가장 가깝게 이루어지는 마케팅의 영역이기 때문일 것이다.


브랜드 매니저, 브랜드의 건강 관리자

1시간 가량의 토론 끝에 팀원들이 내린 결론은 마케팅은 브랜드의 건강 상태를 유지하는 활동이라는 것이다. 여기서 건강 상태를 측정하는 지표는 판매 매출, 영업이익률 그리고 시장점유율이며, 이 지표들은 브랜드에 대한 소비자의 사랑을 나타낸다. 브랜드가 뚜렷한 아이덴티티를 가지고, 소비자의 숨은 니즈를 충족시켜줄 수 있는 제품을 적절한 주기로 출시하고 리뉴얼하며, 이를 효과적으로 홍보하여 더 많은 소비자에게 더 큰 사랑을 받는 것.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이로 인해 회사에 지속 가능한 이윤을 가져다줌으로써 브랜드가 오랜기간 동안 소비자 곁에 머물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브랜드를 사람에 비유하면?

내가 소속한 팀은 아시아 태평양 지역 마케팅팀으로 지역 내에 속한 호주, 뉴질랜드, 일본, 중국, 한국, 홍콩, 대만 그리고 동남아시아 5개 국가의 니즈에 맞는 신제품 개발을 주 업무로 하고 있다. 신제품의 컨셉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경쟁자를 지나치게 의식하거나 트랜드만 쫓아보면 정작 우리 브랜드가 지향하는 가치를 잊고 이에 어울리지 않는 제품을 출시하는 실수를 저지르고 만다.


독일 본사에서 브랜드 리뉴얼 캠페인을 진행하기에 앞서 "진짜 우리 브랜드다운 것"이 무엇인지 기억해보기 위해 경쟁사 브랜드를 포함하여 각 브랜드를 사람에 비유해보는 워크샵을 진행했다. 헤어케어 브랜드들이 한 반에 학생들로 모여있다면 어떤 캐릭터일까"하는 질문으로 시작된 회의에서 로레알은 “화려하고 매력 넘치는 우아한 컬을 가진 여자", Gliss Kur은 “언뜻 수수해보이지만 똑부러진 긴 생머리의 여자" 등 표현법은 조금씩 달랐지만 머리 속에 떠오르는 이미지는 비슷했다. 수십년을 소비자에게 사랑받는 브랜드는 뚜렷한 아이덴티티를 가지며 생동감이 넘친다.



브랜드는 목소리를 가진다

브랜드 매니저가 어떤 마음을 담아내느냐에 따라 브랜드는 목소리를 가진 영향력 있는 존재로 자라나기도 한다. P&G의 전 Marketing Executive인 Dalia Feldheim은 "#Always Like A Girl" 캠페인을 통하여 "여자아이 처럼 (Like A Girl)"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재정의하며 2014년의 각종 어워드를 휩쓸었다. Dalia는 여성용품 브랜드 매니저로 일할 당시, 소비자 조사 차 홈비짓을 했을 때 혼자 어두운 표정으로 격리되어있는 인도계 소녀를 보았다. 함께 방문했던 마케팅 에이전시 담당자에게 물어보니 인도에서는 생리 중인 여자 아이를 쉬게 한다는 의미로 격리 시키는 풍습이 있다고 하며, 이어 농담 조로 생리 중인 여자가 피클을 만지면 썩는다고 생각해서 부엌에도 못 들어오게 한다고 말했다. 이는 자연스레 여자 아이들 스스로에게 생리는 불길하고 부끄러운 것이라는 인식을 심어주었다. Dalia는 이 날 한 숨도 잠을 이루지 못했고, 생각 끝에 본인이 하고 있는 일은 단순히 여성 용품을 만들고 파는 것이 아닌 여성에 대한 인식을 재고 하는 "Women Empowerment" 비즈니스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 후 "Touch the Pickle"을 비롯한 여성에 대한 인식 개선을 목적으로 한 캠페인을 연달아 성공시키며 여성다움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보게 만드는 메시지를 던졌다.


브랜드 매니저는 나의 브랜드가 더 그녀답게 목소리를 내며 살아나갈 수 있게 숨을 불어 넣는다. 그리하여 살아 숨쉬는 듯한 아이덴티티를 정립하고, 세기를 넘어 소비자의 사랑받는 존재로 살아갈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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