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계 회사 회의 문화와 종류
나의 두 상사는 모두 프랑스에 본사를 둔 뷰티 기업 본사에 다 년 간 근무한 경험이 있는데, 자주 우리 회사와 전 회사의 문화가 얼마나 다른지에 대해 이야기 하곤 했다. "11시에 미팅이다, 하면 에이전시가 11시 반 돼서 나타나. 분기별 타운 홀 미팅 때, 전 사 직원이 모여있고 그 앞에서 사장이 분기 실적을 발표하고 있는데 매니저가 30분 늦게 슬렁슬렁 걸어 들어오는거야. 그럼 사장이 어떻게 하는지 알아? 발표하다 말고 오, 레이첼! 잘 지냈어? 한다니까." 10분 전엔 발표자인 사장을 포함한 전 사 직원이 자리에 착석해 있고, 60초 전부터 59, 58, 57 카운트 다운 화면이 뜨는 우리 회사의 타운홀 미팅에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다.
일주일에 5일, 하루에 9시간을 보내는 회사의 문화는 알게 모르게 나에게 크고 작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본사에 제출한 프레젠테이션 파일에 항목 서식이 잘못 되었다는 피드백에 어디가? 다 꼼꼼히 봤는데! 하고 300% 확대해서 보니, 원형이 아니라 마름모였던 적이 있다. 사이즈가 7pt 여서 이러나 저러나 내 눈엔 결국엔 원형으로 보였지만, 예리한 독일인 눈엔 그게 아니었다. 한 때 이런 본사의 지나치게 꼼꼼한 피드백에 독일인 팀원에게 불만을 토로하자 독일에서는 서식을 지키는 것을 기본 중 기본이라고 생각하며, 대학생이 이를 꼼꼼히 살피지 않고 과제를 제출할 경우에 교수가 과제 내용을 확인 조차 하지 않는다고 했다.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라고.
독일 회사에 약 2년 반을 몸 담으며 두 눈을 똑바로 쳐다보고 "No, I don't agree." 라는 말을 들으면 당황했던 입사 초기의 나와는 다르게 의견을 주장하는데 거침이 없어졌고, 시간에 조금 더 엄격해 졌으며, 서식에 제법 민감한 사람이 되었다.
한국 지사에서 근무할 당시, 싱가포르에 주재하는 아시아태평양 지역 세일즈 헤드가 한 달에 한 번 거래처와의 미팅을 위해 한국을 방문했다. 올라프를 닮은 얼굴로 사람 좋은 미소를 짖던 그는 회의에만 들어가면 다른 사람으로 변했다. 한국어로 진행되는 회의 임에도 불구하고 주도권을 놓지 않았고, 장 내 공기는 늘 팽팽했다. 목표를 명확히 하고 유연하지만 명료한 언어로 원하는 바를 얻어낸다. 회의도 치열할 수 있다.
상해에 위치한 아시아태평양 지역 본부 마케팅팀으로 옮겨오면서 회의를 주관할 기회가 많이 생겼다. 신상품 개발을 위한 프로젝트 팀, 본사, 로컬 마케팅팀, 그리고 라인 매니저까지 이해관계자가 복잡히 얽혀있고, 소통이 원할하게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상품 출시에 지연이 생길 수 있기 때문에 정기적인 회의를 주관하여 진행 상황을 나눈다. 본사나 지역 본부 임원진이 참여하는 정기 회의의 경우 1년 단위로 날짜가 미리 정해지고, 그 외의 회의 역시 주, 격주, 월 단위로 연간 캘린더에 스케쥴링 되어있다. 그렇기 때문에 갑작스럽게 회의가 잡히는 일은 거의 없다.
회의는 대부분 30분에서 1시간 사이이며, 임원진의 경우 하루 종일 다른 회의로 스케쥴이 가득차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정해진 시간 내에 안건을 마무리 해야한다. 자연스레 문서는 간결해지고, 회의의 목적과 안건을 분명히 하는 것이 중요해진다. 시간 낭비를 최소화 하기 위해 회의 1시간 전에 회의 안건를 이메일로 공유하고, 특별한 건이 없을 경우 회의를 취소한다.
나의 경우 주 업무인 신상품 기획과 출시 과정에 관한 업무 회의로 업무 시간의 50% 가량을 쓴다. 아래는 정기 회의의 종류와 내용.
1. 팀 간 정규 회의
보통 주나 격주에 한 번 1시간 동안 진행 된다. 신상품 기획 및 기승인 프로젝트 관련 각 팀의 진행 상황을 나눈다. 문제 사항이나 요청이 있는 경우 아젠다를 정리하여 미팅 시작 1시간 전 이메일로 공유한다. 본사, 로컬 마케팅 팀과의 회의의 경우 전화로 이루어진다.
2. 프로젝트 승인 회의
한 달에 한 번 신상품 출시 승인을 위한 보드 멤버 회의가 본사에서 열린다. 브랜드/상품의 출시 및 리뉴얼 프로젝트를 7장짜리 PPT에 정리하여 발표한다. 출시 배경, 컨셉, 디자인, 기술 우위, 타임 라인, 그리고 P&L 시뮬레이션을 담고 있다. 탬플릿과 발표 시간이 엄격하게 지켜져야 하기 때문에, 최대한 간단하고 명료하게 정리해야 한다.
3. 프로젝트 팀 회의
격 주에 한 번 1시간 씩 진행 되는 신상품 개발 프로젝트 팀 회의는 리져널 마케팅이 주관하고, 연구개발, 디자인, 구매, SCM팀의 실무자들이 참여한다. 승인된 신상품 출시 및 리뉴얼 프로젝트를 정리하여 각 팀 별로 진행 상황을 확인하고 문제가 있을 경우 그 자리에서 해결한다. 당장 해결이 어려운 문제의 경우, 다음 회의 전까지 누가 무엇을 어떻게 확인해야하는지를 분명히 한다.
4. 임원 회의
한 달에 한 번 1시간 동안 진행한다. 리져널 마케팅 팀 주관 하에, 프로젝트 한 장의 PPT 한 슬라이드로 정리하여 진행 상황을 간단히 브리핑 한다. 실무자 회의에서 나온 안건 중, 임원 결정이 필요한 사안들을 두고 이야기 한다. 임원진이 물리적으로 회사에 없는 경우가 많아 비디오 컨퍼런스로 진행된다.
회의는 회사와 구성원들의 문제 해결과 소통 방식을 가장 단적으로 보여주는 장소이다. 회의 방식에서 드러나듯 우리 회사의 경우, 체계적이고 효율적이지만 다소 정형화된 업무 방식을 선호하는 사람들이 많다. 상사의 전 직장의 경우, 아침에 모닝 커피를 마시며 두세시간 동안 회의 혹은 아이데이션을 하곤 했다고 한다. 현 직장에는 물론 커피 회의 문화는 없다. 커피 마실거면 커피 마시고, 회의 할거면 회의 해 식이다.
문화에 옳고 그름은 없다. 어느 곳에서 더 편한함을 느끼느냐의 차이일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