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오리지널 ‘반쪽의 이야기’를 보고 쓴 글이며 결말에 관한 내용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사진은 공식 포스터.
요새 무엇이 왜 좋은지를 정확히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곰곰이 생각해보거나 기록해 두지 않으면 단순히 ‘너무 좋다’거나 ‘내 취향이다’하고 끝나버리는 일이 많아서, 그리고 요새 점점 집중력이 안 좋아지면서 왠지 생각의 깊이도 얕아지고 있다는 약간의 공포감도 있기 때문에.
‘반쪽의 이야기’에서 가장 좋았던 건 이야기가 뻔한 설정들을 몇몇 따르면서도 결정적인 부분에서 뻔하게 흘러가지 않는다는 점, 그리고 모든 인물의 마음이 다 이해할 수 있게 잘 그려진다는 점이었다. 인물들이 실제로 모두 정이 가는 캐릭터들이기도 했다.
연애편지를 대신 써주는 설정, 학교에서 인기 있는 미녀의 마음을 얻기 위한 노력, 이런 건 어찌 보면 흔히 쓰이는 장치인데 ‘반쪽의 이야기’는 그걸 가져와 쓰면서도 그 공식을 그대로 따르지 않고 그를 비트는데, 그 센스 있는 비틈에 예상되는 전개가 좌절되는 신선함과 쾌감이 있다. 보통은 이렇게 함께 모의를 하면서 시간을 보낸 남녀 주인공이 서로에 대한 마음을 발전시키게 되고, 실제로 폴은 엘리를 좋아하게 되어 그녀에게 키스를 하려 한다. 보통의 청춘영화였다면 두 사람이 마음을 확인했을 장면이다. 하지만 그 순간 엘리가 가장 걱정되는 것은 폴과 자신의 모습을 보고 상처받았을 에스터의 마음. 영화 초반부터 억눌러 온 에스터에 대한 엘리의 사랑과 갈망이 확연하게 드러나는 순간이다.
마찬가지로 폴이 떠나는 엘리가 탄 기차 뒤를 전속력으로 쫓아 달리는 장면도 ‘반쪽의 이야기’의 이런 재미있는 ‘비틈’을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원래는 이런 장면은 애틋한 연인들을 보여주는 장면이고 실제로 폴과 엘리도 이러한 장면에 대한 코멘트를 하지만(폴은 낭만적이라고, 엘리는 바보같다고 말했다), 폴이 엘리를 뒤쫓아갈 때 이는 헤어지는 애절한 연인들의 모습은 아니다. 폴이 이 시점에서 엘리에 대해 어떤 마음을 품고 있는지는 명확하지 않지만, 폴과 엘리의 서로에 대한 마음은 강한 인간적인 애정과 유대감에 가깝다. 그리고 자기 마음을 보여주기 위해 기차를 쫓아 달리는 게 ‘바보같다’고 말했던 엘리가 이런 폴의 모습을 보면서 눈물을 흘리는 것은 엘리가 폴을 만나 얼마나 변했는가를 드러낸다.
무엇보다, ‘반쪽의 이야기’를 매력적으로 만들어주는 건 폴과 엘리라는 사랑스러운 인물들이다.
엘리는 사람들에게 마음의 문을 꽁꽁 닫고 지내는 듯하지만 폴을 좋아하게 되면서 폴 몰래 폴을 위해 여러 신문사에 편지를 보낸다. 폴은 언어는 잘 통하지 않아도 엘리의 아버지와 함께 중국 요리를 만들어본다. 폴과 엘리는 편지를 고쳐주고 옷을 골라주며 투닥투닥 시간을 보낸다.
이 모든 장면들이 사랑스러웠지만 가장 기억에 남고 좋았던 장면은 폴이 “잠깐 내가 아닌 척 해야 했을 때 정말 별로였어. 근데 그렇게 계속 사는 건 너무 힘들었을 거라는 거야”하고 엘리를 이해해보는 장면이었다. ‘여자가 여자를 좋아하는 건 죄악’이라고 배우며 자랐고 그걸 확고한 진리로 받아들인 폴이 엘리를 이해하려 한 발을 내딛는 장면이어서 마음에 확 와닿았다. 그리고 ‘자신이 아닌 척 했을 때 힘들었던 자신의 고통’을 확장시켜 엘리를 이해하는 게 참 폴다웠고 폴이 얼마나 따뜻한 사람인지를 걸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었다. 나는 보통 이해와 공감이란 자신의 경험의 확장에서 이루어진다고 믿기 때문에 폴이 그렇게 엘리를 이해해 나가는 과정이 납득이 잘 가기도 했고.
'반쪽의 이야기', 이처럼 정말 사랑스러운 영화였다. 폴과 엘리가 변화해나가는 과정을 보면서 나도 보다 넓은 사람이 된 것 같다고 하면 나의 바람 혹은 착각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