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와 나 둘만의 작고 완전한 세계

by 서이린

얼마 전 우연히 위아더나잇의 ‘Bunker’라는 노래를 듣게 됐고, 완전히 매료되어 요새 매일 반복해서 듣고 있다.

나른하고 몽환적인, 그러면서 마음이 편해지는 멜로디도 너무 좋지만 무엇보다 가사가 마음에 쏙 들었다. ‘이 순간은 아무것도 하지 말고 서로를 바라보기로 해요 세상 제일 깊고 아득해 그래 남들은 떠들기만 좋아하잖아요 [...] 너와 난 그 섬이 되어 같에 갈래’


그리고 이 가사를 보자 즉각적으로 내가 한때 열렬히 좋아했던 존 던의 ‘아침 인사’(The good morrow)라는 시가 떠올랐다. 그 시는 개척자들은 지도를 만들고 새 땅으로 떠나더라도, 우리는 사랑으로 우리가 함께 있는 작은 방을 세상 전부로 만들자며, “우리는 하나의 세계를 갖고 그 하나의 세계가 되자”고 노래하는 시다.


어쩌면 백석의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도 비슷한 염원을 담은 시일지도 모른다.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고, 나타샤와 나만이 깊은 산골로 가 함께 가자는 청.


사랑이 짙고 깊어서 사랑만 있으면 충분하고, 너만 있다면 바깥세상이야 아무렴 어떠냐 싶은, 그런 사랑이 내게는 한번 꼭 도달해보고 싶은 그런 낭만이다. 너와 나 둘만이 만드는 작고 완전한 세계, 그런 세계에 살 수 있다면 충만감과 합일감을 느낄 수 있으리라고 기대하기 때문일까. 바깥 세상에서 받은 괴로움이나 상처를 치유해 주는 걸 넘어, 그런 것 따위 우리의 세상을 침범하지도 못하는 그런 꿈. 이런 노래들과 시가 불리고 사랑받는 건 우리 다 마음 한 구석에 그런 작은 바람을 품고 있기 때문일까. 어쩌면 그런 세상은 사실은 가능하지 않다는 걸 알면서도, 그만큼 짙은 사랑을 해보고 싶어서, 아니면 세상이 주는 힘듦에서 도망치고 싶어서 그런 꿈을 꿔보는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존 던의 위 시를 읽고 ‘소름끼치게 낭만적이고 완벽하다’고 한 나와 달리 함께 이 시를 읽은 내가 존경하는 언니는 ‘너무 폐쇄적이고 무섭다’고 평했으니, 역시나 이런 꿈을 모두 꾸는 건 아니고, 사람마다 바라는 사랑의 모양은 다 다르겠지.


*사진은 위아더나잇 앨범 ‘아, 이 어지러움’ 커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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