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황이 만든 친구, 성향이 만든 친구

by 서이린

예전에 같은 집단에 소속되며 그걸 계기로 친해진 친구가 있다. 그 친구와 나는 누가 봐도 거의 모든 면에서 정반대인 친구였고, 아마도 그렇게 같은 집단에 소속되는 일이 없었더라면 친해지지 않았을 것 같다.

그렇지만 나는 그 친구를 꽤 좋아했고, 서로 너무 다른 탓에 어쩔 수 없는 이질감이나 어려움이 느껴지는 순간들이 꽤 많았음에도 그 친구와 어울려 지냈다.

그러다 둘 다 그 집단에서 나오게 되고 삶의 다음 단계로 넘어가면서, 놀랍게도 그 친구와 나는 아주 빠르게 아주 멀어져 버렸다. 이렇게 될 줄 예상하지 못했고, 또 이렇게 되면 우리가 서로 필요에 의해 어울려 지낸 게 되는 건가 하는 생각에 마음이 편치가 않았다. 그치만 그 친구를 만나면 대화는 겉돌기만 했고, 서로 약간씩은 불편해하고 이질감을 느끼고 있다는 게 느껴졌다.

어느 날 한 후배에게 이런 고민을 이야기하니, 그 친구가 너무나 담백하고 산뜻하게 이렇게 말했다. 그건 선배와 그 친구가 ‘상황이 만든 친구’ 여서 그런 것이라고. ‘상황이 만든 친구’는 친해질 수밖에 없는, 혹은 같이 지내기 좋은 상황으로 인해 가까워졌지만 사실은 그게 아니었다면 깊이 친해지지는 못했을 친구라고. 자신은 나와 같은 일이 벌어지면, ‘상황이 만든 친구였고, 상황이 달라지면 멀어지게 되는구나’라고 비교적 가볍게 받아들인다고 했다.

반면 ‘성향이 만든 친구’는 취미와 성향, 성격이 잘 맞아서 서로 친해지게 된 친구로, 상황이 달라지거나 서로 속한 집단이 친해져도 성향이 잘 맞기 때문에 계속해서 우정이 잘 유지된다고 했다.

이 말을 듣고 보니 어지럽던 마음속이 한순간에 명쾌해지난 느낌이었다. 나는 누군가와 멀어지면 설령 그 사람을 만나서 크게 즐겁지 않더라도 멀어졌다는 그 사실 때문에 가슴 아파하는 사람인데, 상황 때문에 친해졌다면 상황 때문에 다시 멀어질 수 있다는 생각이 기분 좋은 담백함으로 다가왔다. 서로 최선을 다해지 못했다고 자책하기보다, ‘상황 때문’이라고 생각하면 서로 약간은 멀어진 상태를 부담 없이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다(그러면 상황에 따라 언젠가는 다시 가까워질 수도 있겠지. 아니어도 어쩔 수 없고). 또 대신 상황이나 집단이 달라져도 계속하여 곁에 있어 주는 ‘성향이 만든 친구’가 있음에 진심으로 감사하는 마음이 생겼다. 이게 참 쉽지 않은 일이기도 하니까.

무엇보다, ‘상황이 만든 친구’, ‘성향이 만든 친구’라는 구분과 표현 자체가 딱 대비가 되기도 하고 직관적으로 쏙 다가오는 표현이었다.

후배의 이 말을 듣고는, 슬프게도 이미 유효기간이 끝나버렸다고 생각하는 관계-특히 이러한 멀어짐이 오해나 서운함 때문이라기보다, 서로 자연스레 멀어졌고 더이상 서로 공유할 것이 없는 관계인 경우-에 크게 목매거나 씁쓸해하지는 않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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