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3 210과 56, 그리고 14,000
제 아이와 저는 210여 일 동안 56편의 영어글을 써내며 14,000여 개 단어를 씨실 날실처럼 엮어갔어요. 학교 진도 공부만 하던 상황이니 기본 단어들이 힘이 되었고, 국어로는 표현할 수 있는 말들이 영어로 번역되고 나면 모르는 단어가 밤하늘의 별처럼 많아 사전을 찾고 찾고 또 찾았습니다.
알고 쓸 수 있는 단어들이 많지 않아 주춤거리기도 했지만 아이는 멈추지 않더라구요. 어른이 저도 '알아서, 스스로' 하는 것만큼 어려운 일이 또 있을까 싶은데 몇 시간씩 붙박이로 앉아 끙끙거리는 모습이 고맙기도, 안쓰럽기도 했습니다.
부끄럽지만 이제 고백할 수 있습니다. 돌이켜 보니 아이가 챗GPT를 활용한 영어 글쓰기를 해보겠다고 했을 때, 저는 또 하나의 '알아서' 해야하는 일이 생기는 게 부담스럽고 걱정이 되었던 것 같아요. 아니, 그랬어요. 벌써 몇 년 간 사춘기가 큰 아이와 일상의 균형추 맞추는 일이 쉽지 않았끼에 뭔가 더 신경 쓸 일이 늘어나는 게 영 마뜩지 않았던 거지요.
"그 다음에 어떻게 해야 하지?"
모르고 답답한 순간에도 아이가 스스로에게 질문을 건넸습니다. 오히려 어른인 제가 아이의 한 걸음 한 걸음을 따라 걸을 수 있었다 싶습니다.
올해 저희는 참 많은 '처음'을 함께 했습니다. 원어민 영어 선생님께 떨리는 마음으로 영어 글쓰기를 봐달라고 부탁드리는 글을 쓰고, 다양한 애플리케이션들을 활용하며 비교하기도 했어요. 중간에 선생님이 떠나셔서 낙심하기도 했구요. 새로 오신 선생님과 다시 호흡을 맞추며 글을 써 가는 아이를 바라보던 모든 순간이 저에게 부모로서, 사람으로서 다시 배우고 시작하는 리듬감을 안겨 주었습니다.
부모가 해야 할 일은 아이의 시선이 멀리에 이르도록 딛고 올라서는 디딤돌이 되어주는 일이겠지요. '해 보고 싶다'는 아이의 의지와 마음을 지켜주고 싶어 저도 같이 궁싯거리며 보낸 시간들이 서랍 한 가득입니다. 기록하면 역사가 되고 추억하면 아련한 과거가 될 뿐이라는 말처럼, 그 시간들을 차례차례 기록하려 합니다.
영어라는 다른 언어에 다가가던 아이의 모습을 네 삶의 한 페이지로, 제가 엄마라는 사람으로 살아간 나이테로 새겨두고 나누겠습니다. 그러면 그 기록에 담긴 글자들이 닮은 존재들을 찾아가고, 그 분들이 건네주실 또 다른 삶 속에서 저희들의 이야기가 이어지리라 믿습니다.
응원합니다, 우리 모두의 글쓰기를.
P.S. <애덜이랑 써봐유 챗GPT영어글쓰기> 3편의 글을 읽어주신 고마운 독자님께 드리는 글
저는 어떤 새로운 시도에 관한 이야기를 듣게 되면 결과가 먼저 궁금해져요.
도대체 어떻게 되었을까, 아~ 그래, 그렇게 되었구나,라고 알고 나서 과정을 살펴보게 되는 거죠.
3편의 글을 통해 아이와 챗GPT로 영어 글쓰기를 시작하게 된 이유, 작은 소란들, 일단의 결과들을 썼습니다.
앞으로 연재할 글들은 제가 아이와 사람으로서 엄마로서 글쓰기를 함께 했던 과정을 담은 글을 쓰려합니다. 어떤 요인들이 아이와의 글쓰기를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어주는지, 챗GPT의 정확성은 과연 담보할 수 있을 것인가, 인공지능을 활용할 때 주의했던 점, 국어 글쓰기와 영어 글쓰기의 상관관계 등이 그 내용입니다.
제가 아이와 인공지능 글쓰기를 하며 참고한 자료들을 정리하니 대략 70여 편이 됩니다. 그중에는 단행본도 있고 관련 논문들도 있어요. 이 세상 모두가 인공지능을 능숙하게 쓰는 것처럼 느껴지는데, 막상 제가 아이와 뭔가를 시도하려 할 때 세세한 부분에 관한 정보들이 없어 헤매고 고생한 적이 많았어요.
세상 어디에서든 좀 더 나다운 사람이 되고 싶어 애쓰는 분들께, 어려워도 고사리 손 도닥여가며 노력하는 엄마와 아이들에게 저희의 기록이 작으나마 도움이 되기를 바라봅니다.
읽어 주시는 여러분이 계셔서 제가 존재합니다. 고맙고 고맙고 또 고맙습니다.
다음 글, 정성스럽게 차려두고 초대할게요. :)
#나이테가되어줄기록 #응원하자우리를 #나는거울이며나는유리창이고싶다 #함께읽고쓴다는기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