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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ubia Feb 02. 2017

매기스 플랜

인생이란 페이소스와 우연한 변수의 함수관계


인생이 원하는대로만 굴러간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데 A를 Input했는데, B가 Output되는 것. 그것이 바로 우리네 인생이다. 인생의 행복이 자신의 의지나 노력에 따라 꼭 정비례하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아마 이 지구상에 인류학이나 인문학 따위가 생겨난지도.

인생에서 내가 인풋 한 것과 아웃풋 되어 나오는 피드백이 다르지 않다면 아래와 같은 가정 따윈 필요 없어진다,


'으이구 내가 미쳤지. 왜 저 인간이랑 결혼이란 걸 했을까? 저 놈을 도로 뱃 속에 집어넣을 수만 있다면? 내가 이 과를 왜 왔지?내가 이 회사에 왜 들어왔지? 도로 물릴 수만 있다면......'


과 같은 후회들로 자신의 허벅지 살을 시퍼렇게 멍들이는 따위의 일은 하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다.


여기 조금은 호기심을 자극하는 영화 한 편이 있다. Magie's Plan?

보아하니 이 영화의 주인공 매기(그레타 거윅)의 인생 계획이 이 영화의 주된 플롯임은 누구라도 짐작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 매기의 계획이란 구체적으로 무엇일까가 이 영화의 핵심이다.

영화 <매기스 플랜>은 독특한 설정을 바탕으로 한 일종의 인문학적 성격의 영화이다. 하기야 인문학이지 않은 영화가 어디 있겠냐만 이 영화의 사정은 좀 더 인문학적이다. 이유인즉슨, 이 매기란 발칙한 아가씨의 위험한 인생 계획 때문이다. 그것도 다른 일도 아닌 아기를 만드는 일을 남편 없이 하겠다는 소리이다.


이쯤 되면 이 영화에 대한 호기심이 무한 상승한다. 소중하기 짝이 없는 자신의 미래의 아이에게 생물학적 아빠는 만들어주되 법적인 아빠는 만들어주지 않겠다는 계획을 실행에 옮기려는 이 아가씨의 속사정 이야기는 차후에 언급하기로 하고 한 번도 남자와 6개월 이상을 진득하게 연애란 걸 해본 적이 없다는 그녀는 대학교 시절 수학도였던 친구 가이의 정자를 제공받기로 이미 잠정 합의까지 본 상태이다.

날짜까지 지금으로부터 향후 4개월 후라는 야무진 계획까지 수립해놓고 D -day만을 기다리고 있는 그녀에게 어느날 같은 대학교에 근무하는 존(에단 호크)이라는 남자가 나타난다.


이쯤에서 서론에서 언급한 인생의 계획 얘기를 다시 해보자면, 맘 먹은 대로만 굴러가 준다면 별 탈이 없을텐데 인생이란 생각하지 못했던 수많은 변수들이 작용한다는 점이다.

존의 등장은 이런 매기의 일생일대의 중대한 인생 플랜을 흔들어 놓았으니 가이의 정자를 조심스럽게 자신의 몸 속에 이식하려는 순간 매기에겐 대참사가 벌어진다. 대참사는 다름 아닌 존과의 사랑이다. 이미 유부남에다 잘 나가는 와이프를 둔 존은 아내의 경제력을 밑천 삼아 허구헌날 소설을 쓰는 인물이다. 물론 명망있는 인류학 교수로서의 신분도 유지하고 있지만 강의는 그에게 일종의 아르바이트일 뿐.

가이의 정자를 이용한 인공수정에 실패했다 믿은 매기는 어느날 존의 구애에 넘어가 자신도 그를 사랑한다고 고백하며 확 자빠져버린다.


영화 매기스 플랜의 초반 서사의 흐름은 비교적 빠른 편이다. 군더더기 없이 삐걱대는 아내와의 관계에 염증을 느끼는 존과 가이의 정자로 성공적인 임신 계획에 착수하려 했던 매기의 인생 계획이 만나는 접점에서 존이 아내와 헤어져 매기와 재혼하는 과정, 그리고 이들 두 사람 사이의 딸 릴리의 탄생까지 영화는 머뭇거림 없이 생략이란 방법으로 일사천리로 진행된다. 이런 불필요한 과정의 서사를 줄이는 대신, 결혼 이후의 현실세계를 비춘다.


영화에는 매기가 가이의 정자를 받기로 한 당일, 매기를 찾아온 가이가 정자를 담을 통을 들고 화장실에 들어가며 매기에게 이런 말을 하는 장면이 등장한다.


바다는 들어가기 전까진 다 아름다워보여.


하지만 현실은 그 바다에 들어가고 난 이후의 상황이며 결혼이란 것도 마찬가지이다. 바다에 들어가보고 나서야 비로소 바닷물이  차갑다는 것을, 그리고 짜다는 것을 때로는 위험하기도 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것은 마치 찰리 채플린이 했다는 '인생은 멀리서보면 희극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고 했던 말과도 일맥상통 한다. 가이가 수학도의 삶을 포기하고 피클 장사에 매달리게 된 이유를 그는 스스로 그렇게 설명 한다. 멀리서 볼 때라야 아름답다고.


이렇게 결합된 매기와 존의 일상은 존은 자신의 소설을 쓴다고 바빠 보통 여느 가정의 그 흔한 풍경 속 남편들 모습과 유사한 모습을 보이고 그 속에서 종종걸음치는 매기는 릴리의 양육은 물론이고 존의 전처 조젯(줄리안 무어)이 일로 자리를 비울 때마다 그들 사이의 두 자녀 폴과 저스틴 남매까지 보살펴야 하는 임무를 떠안게 된다.

물론 매기는 전업주부도 아니다. 만나야할 학생과의 미팅이 남편의 스케줄로 어긋나기도 하고, 자식들을 핑계로 여전히 끈끈한(적어도 매기의 눈에는 그렇게 보이는)관계를 유지하며 전화통을 붙들고 있는 존과 전처의 꼴을 지켜봐야 하는 것도 달갑지 않다.

할 수만 있다면 존을 도로 전처에게 보내버리고 싶을 지경이다.


영화 매기스 플랜의 기본적인 서사 구조는 일단 유쾌하다. 인물들은 서로간에 이런저런 갈등을 겪지만 그것이 도드라져 보이는 무엇은 아니며 여느 집안에서나 볼 법한 균열들을 비춘다. 그런데 이런 균열을 비추고 메워가는 방식이 심각하거나 진지하지 않다. 가벼운 웃음으로 치환시킨 심각함 속의 유머나 제 설정들은 내 맘대로 굴러가지 않는 우리네 인생과 우주의 신비를 상징적으로 담아낸다.


그렇다면 이쯤에서 매기의 사정도 한 번 살펴볼 필요도 있겠다. 그녀는 왜 아기는 원하면서 남편의 존재는 거부하는 것일까? 그것은 그녀가 결혼이라는 제도가 지닌 그 속물적 속성을 알아서일 수도 있겠고 다른 이유(관객들이 미처 모르는)가 있을 수도 있겠지만, 영화의 앞뒤 맥락 속에서 유추해보자면 자신의 탄생 비화?와도 연관이 있는 듯 하다.

그녀의 아빠와 엄마는 두 분 다 대학 교수 출신이지만 아이가 없는 상태로 이혼을 한다. 그런데 어느날 파티에서 예기치 않게 서로를 만나게 되고 그날 밤 거사로 태어나게 된 인물이 바로 그녀 자신인 셈이다. 그러니 애초에 그녀의 존재는 우연과 변수의 산물이지 인생의 계획 따위에 의해 만들어진 존재가 아니란 소리이다. 그녀의 중대한 인생 계획은 그렇게 대책없이 태어난 자신의 존재에 대한 환멸일 가능성이 크다. 그러니 자신의 2세만은 야무지고 찰진 계획 하에서 낳고 싶은 욕심이라고나 할까?


그래서 이 영화의 엔딩은 그야말로 웬만한 스릴러 영화의 반전을 능가한다. 매기의 인생 계획은 어떻게 되었을까? 한 번의 대참사가 있긴 했지만 그런대로 잘 굴러온 걸까?그리고 조젯에게 존을 도로 되돌려줘 버리려는 매기와 조젯의 계획은 성공리에 안착이 되었을까?

어쩌면 그 지점까지 달려오기 위해 이야기의 보따리를 풀었다는 듯이 유쾌한 방식으로 마무리 지은 이 영화의 결말은 코믹함 속에 생의 아이러니와 그 전 상황까지의 페이소스들을 인풋 해서 유쾌한 웃음으로 아웃풋 시킨다.

심각한 것들이 인풋 되었다고 해서 우리 인생의 모든 피드백이 꼭 똑같이 심각한 아웃풋이 될 필요는 없다. 인생엔 늘 생각하지도 못했던 변수가 존재하는 법이니까. 물론 반대의 경우도 성립한다.


두 여자 사이에서 인생이 꼬여버린 존 역의 에단 호크의 모습은 <본 투 비 블루>에서 봤던 쳇의 모습과는 180도 다르다. 그리고 잠시 잠깐이지만, <칠드런 오브 맨>에서 짧지만 강렬함을 선보였던 줄리안 무어 역시 매기스 플랜이라는 이 영화의 색채에 어울리는, 커리어 우먼이지만 뭔가 허술함이 느껴지는 존의 아내 조젯 역으로 특별출연해 웃음기를 전한다.

영화의 엔딩에서 두 가정은 일종의 타협점을 찾은 듯 보인다. 그 속에서 당연히 존은 두 가정을 왔다 갔다 하는 한 아버지로서 고군분투 중이다.


" 우주의 신비를 그냥 받아들이기로 했어요."(매기)


영화 매기스 플랜의 포지션이 여기에 있다. 설명되지 않는, 어디서부터 어떻게 잘못 되었는지는 몰라도 어느 순간 꼬여버린 우리들 인생의 변수들에 대해 그냥 쿨 하게 우주의 신비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방식을 제시 한다. 이 영화가 숨긴 마지막 히든 카드에서 폭소가 터져나오지만 이것이 또한 생의 아이러니이며 우주의 신비 아니겠나.

A를 인풋 했는데 A가 나오는 것 또한 우리 인생이고 A를 인풋 했는데 B가 아웃풋 되어 당황스러운 것도 우리네 인생일 것이다. 인생이란 수많은 삶의 페이소스들과 이런 뜻하지 않은 삶의 우연한 변수들이 X와 Y가 되어 정답을 찾아가는 과정이 아닐까. 그래서 인생이란 이런 두 가지의 미지수에 의해 그 정답이 결정되는 함수관계가 아닐지.

그리고 매기의 출생처럼 과정이야 어찌되었건 우리가 이 세상에 이렇게 태어난 이유가 있을 거라고, 그래서 네가 너라서 참 고맙고 참 기쁘다고 말할 수 있는 것. 그게 바로 우리 인생이라고 말이다.


영화 매기스 플랜은 우리 인생이 그 놈의 계획대로 되는 건 아님을 유쾌한 방식으로 풀어낸다. 그리고 그 속엔 일종의 인문학적 철학까지 군데군데 담겨있다.

이 영화의 마지막 반전을 놓치지 말고 꼭 확인해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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