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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ubia Feb 05. 2017

영화 마스터와 자가당착

스스로의 함정과 덫에 빠지다

가끔씩 영화를 보다보면 스스로 자가당착적 모순에 빠진 영화들을 종종 만나곤 한다. 그것은 완성된 스토리 안에서 작품의 제목을 자연스럽게 선택하거나 혹은 그 반대로 어떤 주제와 제목 하에 작품을 만들겠다는 명확한 노선 정리 후 그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이야기의 살을 붙여나간다면 대개 이럴 경우 발생하지 않을 문제이다.

문제가 되는 상황은 작품의 타이틀과 이야기의 방향이 합일되지 않는 스스로의 모순에 빠지는 경우이다.


영화 마스터의 자가당착적 문제가 여기에서 비롯 되었다. 스스로 마스터임을 증명하는 사내들의 브레인 싸움이 이 영화의 사활이 되어야만 하는데 이 영화는 자가당착과 패러독스의 함정에 빠져 제목을 뒷받침하지 못하는 치명적인 실수를 범하고 있다.

보통 문학에서 패러독스는 긍정적 방향으로 사용된다. 즉 앞 뒤 말 사이에 모순이 따르더라도 그것은 그 문장 속에 담기는 의미의 강화를 위해 사용된다는 측면에서 그렇다.

그런데 영화 마스터에서 마스터라는 작위는 마치 선심 쓰듯 주요 3인방 남성 캐릭터(진회장, 김재명, 박장군)에 모두 수여되어 있다. 그렇다면 이들 캐릭터들은 어떤 식으로든 적어도 그들 자신이 자신의 분야에서만큼은 최고의 고수임을 증명해보여야만 한다.

실제로 어떤 인물이 정말 고수라면 어떤 상황에서도 고수로서의 면모를 증명해야만 옳다. 그것은 A라는 인물이 정말 고수라면 나머지 B,C란 인물은 고수가 아니거나 고수가 될 수 없다.

설령 마스터에서처럼 분야가 다 다른 각자의 영역에서 저마다 마스터라고 하더라도 영화는 최소한 이들의 마스터로서의 면모를 충분히 증명해내는데 보다 심혈을 기울였어야 했다. 그래야만 관객들은 이 영화에 납득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영화 마스터의 결정적인 실수는 이렇게 모든 인물들에게 가볍고도 동등한 방식으로 수여한 작위를 증명할 그 어떤 스토리의 힘을 지니지 못했다는데 있다.

박장군과 금감원 원장의 꼬리는 그 어떤 과정의 묘사 없이 간단하고도 손 쉬운 방법으로 처리 된다.

전세계 수십 만명의 투자자들을 네트워크 삼은 거대 사기조직(원 네트워크)이 이렇게 쉽사리 허점을 노출하는 것도 이해하기 힘든데 (하다못해 현실에서는 작은 보이스 피싱조직의 뿌리조차 캐내는게 쉽지 않은데 말이다)이 거대조직의 브레인이라 할만한 전산팀장 박장군이 일종의 플리바게닝 조건으로 경찰 측에 쉽사리 손을 내미는 것도 납득이 쉽지는 않다. 물론 나름 머리 속으로는 복잡한 셈법을 두드렸겠지만 인물의 복잡한 셈법 역시 영화에서는 구체적으로 형상화되지 않는다. 그들은 쉽게 털리고, 쉽게 진회장의 비밀 로비 장부나 부패한 돈들을 세탁해 해외 차명계좌들로 빼내는 이들의 비밀 전산망이 어떠한 과정도 없이 쉽사리 노출 된다.


그렇다고 강동원이 연기한 경찰청장 직속의 지능범죄수사국 요원인 김재명 캐릭터나 이병헌이 연기한 원 네트워크의 회장인 진회장의 캐릭터는 그들이 마스터임을 증명할만한 수준인가?

전세계의 수많은 투자자들을 사기칠 정도의 수완을 가진 사람이 믿을만한 연줄이라곤 고작 검찰과 변호사, 금감원 원장 등 정,재계 주요 인사 몇명이 고작인건가?

(물론 진회장의 로비 리스트에는 훨씬 많은 연줄이 있었을 것이다. 영화 속에서 다루어지는 부분만을 언급하자면 그렇다)

그런데 금감원 원장이 영화 초반 일찌감치 체포구속된데다 그는 진회장에 의해 가볍게 처리된다. 한 나라의 국가기관장이 말이다. 물론 자살로 위장되기는 했지만 관객입장에서 그것이 진회장 짓임을 눈치 못챌 이는 아무도 없다.

게다 박장군마저 김재명의 떡밥에 어느 쪽에 줄을 설지 고심하게 되는 상황에서 그가 살 길은 얼른 다 정리하고 해외로 도피하는 길밖에 없다는 것은 희대의 사기꾼으로서의 그의 명성을 생각 한다면 어쩐지 너무 싱겁다. 이 모든 일들이 전반 30~40분 안쪽에서 끝난다.


그러니 영화는 처음부터 스토리의 상정 하에서 제목을 설정했다기보다 제목과 캐스팅할 배우들의 면면과 브랜드 가치를 미리 이 영화의 스토리 안에 고려를 하고 시작했다는 인상이 지배적이다. 무게중심의 균형을 고려하다보니 스토리의 뼈대를 구축해야할 시간을 이들 배우들에게 할당할 분량을 애초에 계산해놓고 되도록 균등하고도 누구도 섭섭하지 않게 배분하는데 더 심혈을 기울였다는 느낌이 든다. 게다 출연하는 주요 여배우 2인방인 김엄마(진경)와 신젬마(엄지원)의 분량까지 고려하다보니 영화는 그야말로 노 젓는 사공이 많아도 너무 많다.


그렇다보니 영화는 초반 30분 정도의 활력과 박장군 캐릭터로부터 붙는 재미가 소멸되는 시점부터 급격하게 스토리의 힘을 잃어간다. 이 이야기의 힘의 상실은 필리핀 마닐라라고 하는 해외로케 분으로 만회하려는 인상이 지배적이지만 이 해외로케 분부터 오히려 플롯은 심히 늘어진다.

아무리 신분세탁을 했다고는 하나 한 나라의 국가정보기관에 쫓기고 있는 신세인 일개 사기꾼이 한 나라의 도시 시장과 거래를 한다는 것도 납득하기 어려운 설정인데 이 불필요한 사족은 마치 김재명이 진회장을 체포하기 위해 억지로 만든 포석처럼 비칠 지경이다.


그렇다고 마스터를 기존의 범죄액션물들을 대체할만한 수준의 것으로 평가할 수 있을까? 내부자들의 플롯도 헐겁긴 마찬가지였지만 마스터는 내부자들의 스토리보다 더 힘이 떨어지며  베테랑, 검사외전 등 유사장르 영화들의 액션과 비교하더라도 특출날 것이 없다. 몇몇 카체이싱 장면과 마지막 진회장이 체포되는 시점에서의 총격씬도 이렇다할만큼 인상적인 씬을 완성해내지 못한다. 이미 이런 유사영화들로부터 익숙해진 포맷에서 관객들은 충분히 유사상황에 대한 학습을 끝낸 상황이다.


마스터에서 그나마 유일하게 인상적이었던 것은 박장군 캐릭터의 김우빈의 활약이다. 코믹한 장면에서도 김우빈이 있었고, 액션 장면에서도 김우빈이 있었으며, 배신 장면에서도 김우빈이 있었다.

진회장으로부터 압수한 돈들을 투자자들에게 전송하고 진회장 돈을 받아먹은 정계 인사들을 포획하기 위해 당당히 국회의사당으로 전진하는 지능범죄수사국 요원들이 탄 검은색 차량들의 도열이 일종의 영화적 카타르시스를 제공하는 측면이 없지 않지만 결정적으로 현실에선 절대로 일어나지 않는 일이라는 점에서 괴리감이 느껴지기도 한다.


사회가 피로하니 이런 사회의 일면을 담아내는 영화들도 점점 피로가 누적된 양상을 보이는 듯 하다. 시류에 합류하는 것은 좋으나 복제품이나 기성품처럼 정형화되어 나오는 영화들에 관객들 입장에서도 피로감이 쌓이는 건 어쩔 수 없다.

과거 우리나라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희대의 사기꾼 조희팔 사건과 그의 죽음을 둘러싼 진위여부 등 실제 사건을 모티브로 한 마스터는 실제사건의 결말과는 다른 결말을 통해 카타르시스를 제공하고자 했으나 커진 덩치에 스토리는 빼빼 마른  전형적인 보여주기식 영화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이 영화에 무려 700만 이상이 들었다는 것은 영화 자체의 힘이라기보단 전적으로 배우들의 힘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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