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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럴수있지 Jun 12. 2024

당신은 말을 어쩜 그렇게 해?

예쁘게

대형마트 상품권이 생겼다

이런 건 빨리 써먹는 게 좋다

나중에 까먹을 수도 있고, 별 변수가 다 생겨버리니까.

냉털(비슷한 말로 냉장고 파먹기가 있다)을 의도적으로 하지 않았지만 텅텅 비어버린 냉장고에 잘됐다, 이때다 싶어 바로 이마트로 향했다

미쳐버린 물가 때문에(오 마이갓) 머리를 써가며 나름 합리적인 쇼핑을 하다 보니 한 시간이 훌쩍이다


시식코너에서 하나씩 먹어도 아이가 배고프다는 말을 하기 시작한다. 

이런, 벌써 한시다.

참 아이러니하게도, 식재료를 쇼핑하고 있는데 집에 가서 마땅히 점심으로 먹을만한 게 없다.

지금 식재료를 사서 음식을 하더라도 한 시간 넘게 쇼핑하며 지쳐버린 임산부 엄마는 라면봉지를 만지작 거릴게 분명하다.

남편도 배가 고팠는지, 이런 속사정을 알았는지는 모르겠으나 외식을 제안했다. 요즘 우리는 또 미쳐버린 물가에 외식을 자제하고 있던 중이었다.

그의 제안에 나는 어쩔 수 없다는 듯 알았다고 이야기했다. 

하지만 내 얼굴이 급격히 편안해지고 목소리 톤이 솔톤으로 높아진걸 남편이 모를 리 없다.


장을 보고 나온 우리의 다음 단계인 메뉴를 정해보자.

바로 앞에 보이는 아무 식당이나 들어갈 순 없다. 

당연하게도 다섯 살인 아이는 매운 건 아직 먹지 못하고 엄마의 마음으로 밀가루를 너무 많이 먹이고 싶지 않다(안 먹인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푸드코트엔 사람이 왜 이렇게 많아. 쫌 편하게 앉아서 쉬고 싶으니까 식당으로 가야겠다




남편이 어제 먹고 싶다고 말했던 스테이크 식당이 마침 있다. 그리고 예전부터 내가 궁금해했던 솥밥 식당도 보인다.

남편이 솥밥식당은 회사 근처에 있는 곳이라고 한다. 

나는 먹고 싶다고 남편에게 스테이크를 제안했고 남편은 솥밥을 먹자고 했다. 


“오빠는, 회사 가면 외식 자주 하니까 너 먹고 싶은 걸로 먹자 “

10초도 안 걸리는 그의 말이 솥보다 더 따뜻하게 내 마음을 데웠다. 

아마 임산부로 한창 입이 터진 아내에게 맞춰주기 위한 말일 수도 있고, 

6년 차 남편의 미래의 자기 방어일 수도 있겠지만 

어찌 되었건 이 말은 남편의 진심임을 나는 안다. 


평소에 “오늘 회식으로 어디를 갔는데, 당신이 너무 생각나더라. 나중에 꼭 데리고 가야겠어”라고 말하는 남편이다.

그냥 하는 말이 아니고, 근처에 가면 꼭 그때 그 식당을 신나게 이야기하는 사람이니까.

아마 회사생활을 했으면 본인만큼 이것저것 잘 먹고 다닐 수 있었을 아내에 대한 미안함이 은근히 묻어나는 말일 거다


이게 남편의 사랑 방식 중 하나다.

사랑한다고 말로 애정표현을 하는 것보다 이런 표현에서 내가 사랑받는 것을 느끼고 알게 된다.

찰나의 순간이 아닌 내가 없는 그대의 일상에서 끊임없이 나를 생각해 주는 것.

그렇게 무심하게 툭 던진 말이 내 가슴에 예쁘게 퍼질 때 그에게 사랑받고 있음이 온몸에 울려 퍼진다. 


이렇게 마음은 표현해야 한다

내 마음이라도 나도 볼 수가 없는데 그가 어떻게 볼 수 있을까.

보여주지도 못하고 말로 하지도 않으면서 왜 모르냐고 말하는 것처럼 어리석은 게 있을까.

 

오늘은 야근하고 돌아오는 남편에게 꼭 안아주면서 이야기해 줘야겠다. 

"여보, 피곤한 오늘을 보내느라 너무 수고 많았어. 

오늘은 문득 당신 생각을 하니까 참 든든하고 고맙더라

우리가 함께 이렇게 가정을 꾸리고 행복하게 살아가는 게 참 고마운 하루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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