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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럴수있지 Aug 13. 2024

혼자 있는데 라볶이를 왜 해 먹어?

엄마가 말했다

직장인일 때 제일 큰 고민은 "오늘 뭐 먹지?"였다.

구내식당의 가장 좋은 점은 메뉴 고민을 안 해도 된다는 거 아닐까.

가정주부도 다르지 않다

저녁메뉴도 고민해야 하는데 내 점심 메뉴도 고민해야 한다. 

초반에는 맛집의 밀키트를 냉동실에 가득 채워놓고 하나씩 빼먹는 재미가 있었는데

늘 그렇듯 이젠 그것도 지겹다. 

외식도 일주일에 한 번 정도야 괜찮지만 

매일 배달이나 사 먹는 건 부담이 되는 건 사실이다. 



점심 메뉴를 집에서 고민하다가 파뜩! 라볶이가 떠오른다. 

내 입맛에 맞게 조금은 짜지만, 깻잎이 듬뿍 들어있는 라볶이!

이거다! 

그나마 임신의 장점이라면 먹고 싶은 것이 구체적으로 분명해진다. 

메뉴를 생각해 냈다는 뿌듯함에 끄응 차 일어나 라볶이를 하기 위해 일어나는 찰나에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점심 먹었니??"

"어어 나 라볶이 해 먹으려고ㅎㅎ"

"혼자 있는데 라볶이를 왜 해 먹어~~ 나가서 사 먹지"

"응?? 아니 그냥 내가 만든 게 먹고 싶었어 "


통화를 끊고 잠깐 생각했다. 

왜 혼자 있을 때 요리를 만들어 먹는 게 의아한 일이 되었을까?

그러고 보니, 

나 또한 나만을 위해 (단순 조리가 아닌) 요리를 하는 게 꽤 오랜만이다. 



나는(우리 엄마는) 왜 가족이 있어야만 음식을 했을까

나는 왜 아이의 입맛에 맞는 것을 우선으로 생각했을까

생각해 보면 나름의 이유가 있다


여러 음식을 만들기에는 시간, 체력적인 한계가 있고

그 시간이 노동으로 느껴지는 탓이었다

맞다.

나에게는 음식을 하는 것이 하나의 노동이었던 거다.

그래서 간단히 때울 수 있을 때는 그 노동이 하고 싶지 않았을 테다.


그동안 아이의 입맛에 맞춘 이유는

아이가 남기면 그 음식은 어찌한단 말인가

처음에는 아이가 남기는 음식을 당연하게 먹는 엄마가 되고 싶지 않았다.

(여기서 포인트는 '당연하게'다)

그래서 의식적으로 버리려고도 했다.  

하지만 살림을 하다 보면 버리는 것도 한두 번이다.

내가 먹어버리면 설거지 거리도 줄어들고 깔끔해지는 걸 알아내고야 만

아줌마가 되어 버렸다. 



나는 가정주부가 되더라도, 

내 입맛에 맞는 맛있는 요리를 해서 예쁘게 플레이팅 해서 먹어야지 

라고 생각하곤 했었다. 

나를 대접해야 하는 사람은 나 스스로 임을 잊고 살아온 듯한 느낌이다.

스스로를 아껴주지도 않으면서 

나중에 가족이 이런 상황을 자연스럽게 여기면 또 서운해할게 뻔하다. 

정말 미련하고 속상한 상황이 아닐 수 없다. 

하마터면 나부터 이 상황을 자연스럽게 여길 뻔했다.

휴..

지금이라도 이런 생각을 하게 되어 다행이다. 



안 되겠다.

일주일에 두 번이라도 내가 먹고 싶은 걸 생각해 보자.

오늘 간식부터라도 시작하자! 

아이가 유치원에서 돌아오면 내가 먹고 싶은 아이스크림을 얹은 꿀호떡을 먹어봐야지

아이가 어색해서 안 먹으려고 하면 어쩌지..?

그럼 어쩔 수 없지

이건 맛있는 건데 네가 마음을 여는 것은 너의 몫인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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