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부색이 검다고 카스트도 낮을까?
한국 기업인들과 인도 출장을 같이 다니다보면 종종 이런 이야기를 듣는다. ‘호텔이나 백화점에서 보는 인도인들은 대체로 피부가 하얀색인데 길거리에서 보이는 가난한 사람들은 다 피부가 검은 것을 보면 역시 카스트가 낮을수록 피부가 검은가보네.’ 그러면 나는, 돈 많은 사람들이야 에어컨 나오는 차타고 다니면서 호텔이나 백화점 다니니깐 햇빛 볼 일도 없고, 선크림도 바르고 피부 관리도 하니깐 하얀색이 많을 수밖에 없지요. 반면에 이 땡볕에서 노가다 뛰고 그러면 당연히 살이 검게 타는 것 아니겠습니까, 하고 간단히 설명을 하곤 한다. 때로는 피부가 검은 인도인이 와서 일개 직원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회사 대표여서 놀랐다고 하는 분들도 심심치 않게 본다. 심지어 한국인 부장이 인도 공장에서 ‘깜둥이 새끼들 일 똑바로 안하나’ 라며 인도인 엉덩이를 발로 찼다가 그 공장 노동자들이 단체로 주재원 사무실에 몰려와서 시위하는 것도 직접 목격한 적이 있다.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인도에 대한 흔한 편견 중 하나가 카스트를 피부색과 연결 짓는 것이다. 사실 굳이 인도뿐만이 아니라 피부색에 따라 사람 차별하는 것은 워낙 만연한 일이니 카스트와 피부색을 묶어서 보는 시각도 어찌 보면 자연스럽게 생겨나는 것일 수도 있겠다.
2018년 8월 어린이 조선일보 [용선생의 세계사 교실]에서 카스트=피부색이라는 더 심각한 내용을 어린이들에게 가르치고 있음을 발견했다. 이 글에서는 카스트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친절하게 그림까지 곁들여 상층 카스트는 흰 피부로, 하층 카스트는 검은 피부로 묘사하고 있다.)
"카스트 제도는 어떻게 이뤄져 있어요?"
"사제인 브라만이 제일 높고, 전사 집단인 크샤트리아가 뒤를 잇는 단다. 그 밑의 평민은 바이샤라고 하는데, 상업과 농업 등 생산을 담당했지. 맨 밑의 수드라는 원주민인 드라비다인으로 노예나 다름없었단다."
"그러니까 네 신분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중 원주민이 제일 아래군요."
"맞아. 근데 인도의 카스트 제도는 인종차별과 얽혀 있다는 점에서 독특해. 인더스 문명을 일군 원주민 드라비다인은 피부가 검고 체구도 작아. 뒤늦게 인도로 들어온 아리아인은 피부가 희고 덩치가 컸어. 아리아인은 자신들은 고귀한 인종이므로 드라비다인을 지배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지. 이런 생각을 널리 퍼뜨리는 데 브라만이 큰 역할을 했단다."
카스트가 어떻게 생겨난 것인지에 대해서는 여러 견해가 있다. 그리고 이 글은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만큼 그런 복잡한 내용을 굳이 가르칠 필요는 없다. 그런데 왜 하필이면 카스트를 피부색과, 그리고 인종과 연결시켜 가르치는가. 이 설명은 실제 인도역사에 맞지도 않고 유럽인들의 인종우월주의와 인도 식민지배 정당화를 위해 만들어낸 설이다. 저 말대로라면 남인도 사원의 피부가 검은 드라비다인 브라만 사제는 설명이 안 된다. 또 남인도에서는 오히려 검은 피부를 높이 평가하는 풍습도 있었다.
아무튼 저 글을 끝까지 읽으면 인종차별은 나쁘다로 결론이 난다. 하지만 문제는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검은 피부는 하층 카스트구나로 받아들이게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교육을 받은 아이들이 자라나면, 내가 서두에 말했던 상황이 벌어지게 되는 것이다. 이건 어제 문제 삼았던 카스트가 폐지 됐나, 안 됐나 와는 차원이 다른 문제다. 인도인을 피부색만으로 판단해버리는 아주 잘 못된 시각을 어릴 때부터 갖게 만드는 심각한 사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