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노해 시인의 별빛같은 301편의 시 묶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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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노해 시인의 12년만의 신작이다. 참 좋아하는 그의 시 '너의 하늘을 보아'를 제목으로 12년간 집필한 수천편의 글 중 301편의 시를 묶었다는 소식을 출판사 '느린걸음'에서 전해주셨다. 누구보다 먼저 책을 읽어볼 기회를 주셨고 하필 오월이라 더 감사했다. 내게 박노해 시인의 글들은 '오.월.' 같으므로. 늦봄과 초여름 사이 새벽 동트기 전의 깊고 파아란 색을 가진 천으로 곱게 양장제본된 두꺼운 책을 펼쳐 몇 개의 글을 읽다가 한참 전의 일들을 소환했다.
고등학교때 한 선생님이 "아마도 넌 여러 경험을 했겠지만, 그래도 어느 경계 안에서의 경험이었을꺼야. 앞으로 더 많은 날들을 살아야 하니 균형잡힌 사람이 되고 싶다면 낯설고 생경한 순간들을 무조건 피하지 말고 잘 맞닥뜨려봐."라 말씀하시면서 예고의 얇디 얇은 교지를 만드는 작은 편집실에서 대학에 가거든 학보사나 교지편집실에 찾아가 봐도 좋겠다고 하셨다.
1995년 학생회관 교지실에서 '노동의 새벽'이라는 시집을 처음 만났을 때가 생생하다. 정리되지 않은 채 쌓여있던 수북한 책더미들 사이에서 발견한 낡은 책, 표지에 적힌 제목은 무척 낯설고 무거웠다. 중간 중간을 펼쳐보는데 어떤 과시나 누르는 힘 없이 내게 말을 거는 시들에 이상하게도 마음이 편안해졌다. 고3이나 재수할 때 읽었으면 너무 좋았겠다 생각하며 몇 개를 노트에 적었다. 이후 얕게나마 다양한 삶의 고난들에 대해 스터디하면서 철없는 대학 신입생이 공감하고 이해했던 문해력이라는게 참 보잘 것 없었구나 깨닫고 부끄럽기도 했다.
독재정권의 감시를 피해 '박해받는 노동자 해방'을 의미하는 '박노해'라는 필명을 사용했던 시인은 감옥 안에서도 계속 글을 썼고 내가 만난 그의 두번째 책은 '사람만이 희망이다'였다. 이 제목은 여러 기업의 캠페인 타이틀로도 많이 쓰였는데 볼 때마다 조금 씁쓸하기도 했다. 선배들이 전해 준 몇몇의 작품들, 우연히 만난 글들을 읽으며 나이를 먹었다. 어릴때 만난 글을 나이들어 다시 읽으며 그 때마다 다른 경험을 하게 되는 경우가 있는데 많은 이들이 이야기하듯 내게도 '어린왕자'와 '나의 라임오렌지나무'가 그런 책이었고, 윤동주 시인의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가 그랬다. 그리고 박노해 시인의 글들이 그랬다.
특히 '너의 하늘을 보아'는 류시화 시인의 '나무'와 함께 늘 곁에 두고 자주 읽고 친구들에게도 건넸던 시다. '너의 하늘을 보아'로 엮은 두툼한 책을 받아들고 그냥 괜히 좋았다. 든든한 보험을 하나 든 것 같은 느낌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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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들고 앞이 안 보일 때는
너의 하늘을 보아
네가 하늘처럼 생각하는
너를 하늘처럼 바라보는
너무 힘들어 눈물이 흐를 때는
가만히 네 마음 가장 깊은 곳에 가 닿는
너의 하늘을 보아
- 박노해 ‘너의 하늘을 보아’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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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글은 처음 보면 예쁘고 따뜻하고 편안하다가도 다시 읽으면 가슴 한 켠이 뭉클하고 서늘해진다. 그러다 문득 머리가 맑아지는 순간을 만난다. 타자의 눈으로 읽었던 글은 나의 이야기가 되고 나에게 공감과 위로를 건네며 우리를 속박하는 것들에서 스스로를 해방시킬 수 있는 묘한 마음 속 아지랑이를 만든다. 벗이 되고 등대가 되고 두 발 디딜 땅이 되는 글들이다. 생각을 또렷하게 하고 다시 중심을 잡아 나의 존재의 의미를 깨닫게 한다.
일곱개의 작은 주제로 묶인 별빛같은 301편의 시, 오월의 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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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약속이 나를 지켰다
내 몸의 문신
젊음은, 조심하라
나는 다만 나 자신을
악에 대한 감각
언제나 사랑이 이긴다
별은 너에게로
얼리 리뷰어의 기회가 아니었으면 시인의 글들이 나의 시간들에 꽤 깊숙히 자리잡고 있었고 앞으로도 그럴꺼라는 생각을 못했겠지 싶어 더 감사한 시간이다. 파아란 책 옆에 파아란 노트 한 권을 두고 필사를 시작한다. 그 때 그 때 펼쳐 마음에 와 닿는 글들을 꼭꼭 눌러 읽고 꼭꼭 눌러 쓰며 마음에 새겨야겠다. 같은 글을 두 번이고 세 번이고 쓸 수도 있겠다. 그 순간 공기의 온도에 따라 모두 다르게 다가올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