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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ris Sohyun Choi Feb 11. 2017

낯선 것들을 함께 만난다는 것,
간송과 백남준의 만남

기인 다섯 명,  한 울타리에 모이다.

정월대보름에 달 사진 걸어놓고, 간송과 백남준, 이 엄청난 두 분에 대한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를 주저리주저리 써본다.  



아주 가까이에서 만난 백남준 선생님의 작품

1997년 여름, 뉴욕에 일주일간 머물면서 선배의 소개로 미학을 공부 중이라는 중년의 한 여성분을 만났다. 혼자 지내시니 며칠 묵고 가라는 말씀에 우리 일행 셋은 일초의 고민도 없이 감사하다며 신세를 지기로 했다.

맨하탄 중심에 오래되어 보였지만 꽤 멋진 건물 안 그분의 공간으로 들어서면서 마주했던 문화쇼크는 아직도 선명하다. 당시 책으로만, 혹은 486이나 펜티엄 컴퓨터의 버벅거리는 인터넷 화면으로 접했던 백남준 선생님의 작품들이 하나도 아니고 여러 개 그 안에 자리하고 있었다. '클래식이란 이런 거야'라는 분위기를 보여주던 공간의 인테리어 안에 기이한 형상의 오브제와 결합된 미디어아트가 놓여 있는 모습이란... 낯설고 당황스럽고 놀라움과 함께 집 주인장을 비롯해 작가에 대한 호기심이 마구 증폭되었다.

"한 번만 만져봐도 돼요?"라는 아주 유치한 질문에 한참 웃으시던 그분의 얼굴이 생각난다.

아무리 유명한 셀럽이라도 내 앞에 훅 하니 들어오지 않으면 큰 의미를 담기 어려운데 아마도 백남준 선생님은 아주 가까이에서, 그것도 매우 프라이빗한 공간에서 그의 작품을 마주할 기회를 가졌고 이런저런 에피소드들을 듣게 되면서 더 궁금해하고 찾아보게 되었던 것 같다. 매체를 통한 공부에 의해, 백남준 선생님은 천재, 기이한 아티스트, 꽤 많이 용감했던 분이라는 표면적인 결론을 내렸었고 작품 하나하나에 담긴 의미들을 충분히 이해하려고 하지 않았던 것 같다.


좌) 간송전형필 / 우)백남준



그냥, 참 고마운 간송 전형필

1991년이었나, 서울예고에서는 1학년 때 동양화/서양화/조소/디자인 네 개의 전공을 모두 경험해보고 2학년에 올라가면서 전공을 정하게 된다. 이야기꾼이셨던 동양화 선생님은 실기 시간에도 그랬지만 수업 후 남아 있는 몇몇 친구들을 데리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참 많이도 해 주셨다. 그때 들었던 몇몇 이야기들 중에 기억이 남는 분이 있었는데, 간송 전형필 선생님이 대표적이었다. "그래도 다행이지 이런 분들이 계셔서..."라며 푸념 반 안도감 반 정도의 느낌으로 이야기를 시작하셨었다. 사재를 털어 우리 문화재를 모았다니... 당시에는 잘 그려지지 않았다. 그리고는 한참 잊고 지내다가 2011년 여름, 디자인하우스와 한국디자인기업협회가 함께 준비한 디자인 리더들을 위한 인문학 공부 '40인의 의자'를 기획하면서 간송미술관의 탁현규 연구원님을 만나게 되었다. 우리 글, 우리 그림에 얽힌 이야기들을 전해 들으며 간송 전형필 선생님과 그분이 지켜내신 우리 것들에 대한 관심이 다시 생겨났다. 왜 늘 오픈하지 않는 걸까 왜 이리 멀리 있는 걸까 생각하며 가끔, 아주 가끔 간송미술관을 찾아갔다. 서양의 것들을 늘 동경하면서 우리 것은 고루하다며 제쳐놓지 않았었나 하는 후회가 하나하나 자세히 보게 되는 작품의 수가 늘어날 때마다 더 커졌다.

그러던 중 DDP 오픈과 함께 간송미술관이 그곳에 들어오게 되었는데, 누구는 '간송과 DDP라는 공간은 맥락이 맞지 않는다.', 또 누구는 '기대하고 갔는데 작품 수가 너무 적다.', 또 누구는 '간송 미술관은 너무 차갑고 불친절하다.'... 등등의 불평들을 이야기했다.

DDP 개관식 날 간송미술관 앞에서 벌어졌던 웃지 못할 일이 갑자기 생각난다. 잠시 기다리셨다가 차례대로 입장해주셨으면 좋겠다고, 한꺼번에 들어오시면 안 되며 특히 카메라 프레시는 자제 부탁드린다고 미술관 담당자들이 목을 높여 이야기하고 있었으며 아직 대기 라인의 기둥이 치워지지도 않은 상황이었다. 지자체 장들을 비롯해 공무원들과 기자들은 들었는지 못 들었는지 안 들었는지 마구 밀며 전시장 안으로 들어갔고, 스태프들은 당황해 더 큰 목소리로 계속 무언가 이야기했다. 바로 옆에서 보고 있던 나를 비롯한 몇몇 일행들은 이것이 우리나라, 그것도 서울, 그것도 디자인과 문화를 담아내겠다는 DDP에서 일어나고 있는 현실이구나 싶어 쓴웃음을 지으며 돌아섰다.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일제시대 다른 나라로부터 우리 것을 지켜내는 것만큼 현시대에도 만만치 않은 물리적 감정적 에너지가 필요한지도 모르겠다. 좀 삭막한 공간이긴 하지만 그래도 기획전시가 열릴 때마다 그에 맞게 충분히 스토리텔링이 잘 되고 있다고 느꼈었고, 무엇보다 가까이 있어서 좋으니 전시가 바뀌면 늘 찾아가는 곳이 되었다.  




90여분, 낯선 듯 어울리고 어울리는 듯 어색한 작품들과의 만남

이전에는 보이지 않았던 것들

지난주 토요일, [간송과 백남준의 만남]이라는 낯설지만 매우 잘 어울리는 케미의 전시에 다녀왔다. 전시가 끝나기 전 겨우 막차를 탄 셈인데 마침 도슨트 설명 시간이라 40여분 가이드를 따라가며 귀 기울여 듣고, 다시 혼자 한 바퀴를 돌았다. 나이 들어 더 재미있어지는 걸까? 마음도 눈도 귀도 조금씩 더 열리니까, 더 크게 조금 더 여유롭게 멀리서 혹은 가까이에서 다시 들여다볼 수 있어서 그런 걸까? 특히나 요즘은 낯선 것들이 함께 있는 모습이 그리 좋아 보일 수가 없다. 훨씬 더 많은 상상을 가능하게 해 주어 그럴 것이다 생각한다.


간송미술관에 들어서면 우측으로는 간송의 대표적인 소장 작품들을 VR로 만날 수 있는 체험존이 있다. 평면으로 만났던 그림들 속으로 들어가 그 안에 있는 세계, 우주를 만나고 다시 현실로 돌아오는 짧은 여정은 VR을 기술로 느끼는 것이 아니라, 이야기의 맥락을 극적으로 경험할 수 있는 시간이 된다.

입구에 자리 잡은 [간송과 백남준의 만남]이라는 타이틀 아래 이런 문구가 있다.


우리 미술사에 수많은 대가들이 존재하지만 서로 연관성이 적어 보이는
이 다섯 명으로 전시회를 만든 이유는
그들이 공통적으로 이상향을 지향했기 때문이다.
...
이번 전시회는
예술, 즉 문화로 세상을 바꾸고 좀 더 나은 삶의 방법을 찾고자 했던
이상주의자들의 만남에 깊은 뜻이 있다.



여기에서 '이 다섯 명'은 다음과 같다.

불교의 선과 도교의 신선사상을 이야기하는 연담 김명국,

몽환적인 남종 산수로 이상향을 그린 현재 심사정,

유유자적하는 선비의 세계를 갈망하는 호생관 최북,

세속적 가치뿐만 아니라 현세를 초월한 신선의 삶을 그린 오원 장승업,

예술과 기술, 동서양 문명의 연결과 조화를 꿈꾼 백남준


작년 가을, 베이징 디자인 위크에서 강연 후에 이런 질문을 받았다.

"한국 디자이너, 한국 문화의 특징은 무엇인가요?"

"........."

아... 난감했다.

규모로는 중국이, 디테일로는 일본이, 화려함으로는 아시아의 수많은 나라들이.........

우리의 DNA 안에는 어떤 이야기가 담겨 있을까...

당시에 어찌어찌 소신껏 이야기하고 무대에서 내려오긴 했는데, 아직 찾아가는 중이니 이번 글에서는 생략하기로 한다.

우리 것에 대한 공부를 하다 보면 표면에 드러난 스타일이 아닌 그 이면에 뭐라 하나로 정의할 수 없는 묘한 사상들이 느껴졌는데 이번 전시를 통해 기이한 작가들을 다섯 명씩이나 함께 만나게 되니, 그것도 간송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만나게 되니 아직 여전히 어슴푸레하지만 우리의 '기운', 우리의 '이야기'가 조금은 이해 가능한 수준이 되었다.


입구에 자리한 백남준의 '코끼리 마차'는 기술이 발달하면서 얻게 된 빠른 동력과 시간의 단축, 그 안에 담겨 있는 ‘빠름’에 관한 이야기들을 표현한 TV더미와 느리디 느린 코끼리, 경거망동을 지양했던 부처의 모습을 함께 보여줌으로써 관객으로 하여금 과거와 오늘날 그 수단이 다를 뿐 그 여정은 비슷한 맥락이지 않을까라는 질문을 던지게 한다. 여러 개의 텔레비전과 축음기를 말없이 끌고 가는 코끼리의 모습에 기술과 정보가 넘치는 미래가 밝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지 않았을까. 인간의 험난한 인생 여정을 아주 긴 두루마리에 그려낸 심사정의 ‘촉잔도권’과 매칭 되어 어디론가 향하고 있는 우리의 모습을 돌아볼 수 있게 했다.



달은 인류 최초의 텔레비전이다

다음으로 인상 깊었던 작품은 '달은 인류 최초의 텔레비전'이라는 명언을 남긴 백남준의 '달에 사는 토끼'이다. 자기가 살던 달에서 뛰쳐나온 토끼는 마치 전지적 작가 시점으로 그 달을 바라보는 듯하게 앉아있는데, 이 모습에서는 왠지 모르게 시니컬함과 위트가 함께 느껴진다. 달, 토끼, 텔레비전은 서양과 동양, 기계와 사상의 대칭점에 있을법한 것들을 매개해 주는 오브제가 된다. 표현되는 미디어가 달라지고 있을 뿐 누군가 하고 싶은 이야기 누군가 보고 싶은 이야기, 그것을 상상하는 행위는 인간이 할 수 있는 변하지 않는 것이라는 메시지도 던져준다.


홍운탁월(烘雲拓月)
구르미 그린 달빛


'달에 사는 토끼'와 함께 자리하고 있는 작품은 장승업의 '오동폐월도'이다. 가을밤 벽오동나무 아래에서 달을 보고 짖는 개의 모습을 그린 것이라는데, 하나하나의 소재마다 재치 있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는 것도 재미있었지만 '홍운탁월'이라하는 기법에 더 눈이 갔다. '홍운탁월'은 달을 직접 그리지 않고 주변의 구름을 그려 마치 달이 있는 것처럼 보이게 하는 기법이라고 도슨트가 설명을 한다. 예전 동양화 시간에 주워들은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여백을 통해 존재를 드러낸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글을 쓸 때 먹을 보지 말고 여백을 봐야 한다던 신영복 선생님의 말씀이 생각난다. 주위가 어두워야 자신이 빛이 난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도 있지만, 주위를 돋보이게 살핌으로 비로소 자신이 올바로 설 수 있다는 것으로도 볼 수 있다. '구르미 그린 달빛'이라는 드라마도 이 홍운탁월에서 영감을 받았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다시 생각해보니 이야기의 곳곳에 홍운탁월의 의미가 녹아 있는 것 같다.


럭셔리하기 그지없는 백남준의 '비디오 샹들리에' 뒤에 자리하고 있는 장승업의 '기명절지도'가 눈에 띈다. 미술 교과서에 나왔던 우리 그림들은 그리 재미없더니 요즘은 어찌 그리 하나하나 눈여겨보게 되는지 모르겠다. 하기사 손바닥 반도 안되게 인쇄되어 나온 뿌연 그림에 흥미를 느낀다는 것도 이상하긴 하다. 옛 그릇과 꺾어진 나뭇가지, 그리고 열매들. 좋은 뜻을 담고 있다는 길상물들은 만사형통과 복을 기원했다고 한다. 고동추실, 향로수선, 서안괘어, 악아홍장... 단어들만 들으면 무슨 소리야 하다가도 그 뜻을 듣고 나면 아하! 하게 된다. 소재 하나하나에도 의미가 있지만 서안괘어가 문방사우가 만나면 과거급제를 염원한다는 것처럼 이것과 저것이 함께 했을 때 또 다른 메시지를 전달하게 되니, 요즘 말하는 융합 시너지의 극을 보여준다. 장승업은 청의 문물 받았으나 조선만의 이미지를 만든 화가로 유명한데, 간송에 모인 다섯 명의 아티스트 모두 타국의 영향을 받았으나 우리 것으로 새로이 스타일을 구축한 모습을 볼 수 있다.



순간성, 일시성, 그리고 불확실성
존 케이지의 음악 사상에서 영감을 받은 백남준의 이야기

백남준은 존 케이지(John Cage, 1912~1992)의 음악사상에서 많은 영감을 받았다고 알려져 있다. 존 케이지는 불확실성과 우연성을 하는 전위적 음악가로 유명한데, 피아니스트가 피아노 앞에 가만히 앉아 있기만 하는 침묵의 곡 '4분 33초'가 대표작이다. 이 세상에 완벽한 적막은 없으며 일상의 소리에 귀 기울여보라는 메시지를 던지고 있는 존 케이지, 안도 다다오에게 르 꼬르뷔지에가 필립 스탁에게 포르나세티가 그러한 존재였듯이 백남준에게 존 케이지는 영감의 원천이자 모티베이션의 근간이었던 것 같다.



반예술운동, 전위미술그룹으로 일컬어지는 플럭서스(FLUXUS) 그룹의 대부분이 존 케이지의 영향을 받은 아티스들이었는데 백남준도 플럭서스의 대표적 멤버이다. 제도권 예술에 반기를 들었던 이들은 음악가, 미술가, 시인, 무용가 등으로 음악회든 전시회든 기존의 사회 관념으로는 도저히 이햐할 수 없는 퍼포먼스들을 벌였다.

'직선 하나를 긋고 그것을 따라가라'는 마치 실행해야 하는 명제 하나를 걸고 음악을 소리가 아니라 퍼포먼스로 느끼라며 머리에 물감을 묻혀 그림을 그려 나갔다는 '머리를 위한 선'. 퍼포먼스 비디오를 보면 관객의 표정에서도 당대 얼마나 엄청나게 파격적이었는지 읽을 수 있다. 플럭서스 그룹은 활동 내내 정신병자 취급을 받았다는데, 이들이 후대 아티스트들에게 미친 영향을 본다면 판을 뒤집고 익숙하지 않은 메시지를 발산했다는 점에서 그저 고마울 따름이다.



인간의 초월 의지, 조화로운 세상을 꿈꾸는
'로봇 가족'


비디오 아트, 로봇, 미디어 등은 백남준과 늘 붙어 다니는 단어이다. 유불선의 통합을 나타낸 최북의 '호계삼소'와 어우러져 있는 백남준의 로봇 시리즈인 '슈베르트', '율곡', '찰리 채플린'은 과거와 현재의 소통, 인간과 로봇의 결합을 통해 인간의 초월 의지를 나타내며 융합을 꿈꿨다. 슈베르트의 모자가 된 빨간 축음기가 귀엽다.



나 스스로를 응시함, 참된 자아의 발견
'TV 부처'

'달에 사는 토끼'와 함께 가장 기억에 많이 남는 작품은 'TV 부처'였다. 가부좌를 틀고 TV를 말없이 바라보고 있는 부처상, 그리고 화면에 투영된 이미지는 자신이 누구인지 스스로에게 물어야 함을, 본연의 모습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때 깨달음을 얻을 수 있음을 이야기한다. 기술과 문화, 사상, 그리고 인간의 성찰에 대해 표현하고 있는 이 작품은 참된 자아의 발견, 본성의 깨달음을 통해 극락세계를 만나게 될 수 있다는 불교사상을 아주 쉽게 설명해준다. 부처를 비추고 있는 카메라를 본 관객들은 부처 뒤에 서서 자신의 모습이 화면에 보이는지 서성이게 되는데, 관객을 함께 투영하는 장면은 인터랙션 미디어의 본질을 나타내고 있다.





전시의 마지막 부분은 백남준의 비디오 아트 중심으로 구성이 되어 있었다.

비디오 아트의 아버지 백남준. 모니터 자체를 화가의 캔버스라 생각했고 기술을 적절히 활용했던 그의 작품들은 수십 년이 지난 지금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같은 작품이라도 어떤 맥락에 놓여 있느냐에 따라 다른 이야기를 발견할 수 있다는 걸 제대로 느낀 시간이었다. 이 곳, '간송'이라는 울타리 안에 모인 다섯 기인들을 보니 우리 문화에 대한 자존감이 높고 참으로 호방한 사람들인 것 같다. 인생의 여정을 길게 보았으며 눈 앞에 닥친 일이 아니라 멀리 미래를 내다보았고, '양'보다 '음'이라는 동양 사상을 이야기하려고 했다. 무엇보다 세상에 도전하고 새로운 메시지를 던지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던 것 같다.

동시대가 아닌 작품들을 함께 만나니 오래된 미래, 예 것과 현재의 것, 그리고 미래가 단절돼 있지 않음을 생각하게 된다. '상상'이라는 힘이 얼마나 대단한지, 우리의 '바람'과 '기원'은 예나 지금이나 그 본질적인 내용에는 변함이 없음을, 특히 우리 그림은 자세히 보고 찬찬히 생각해야 그 의미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우리 그림을 잘 지켜주어, 아카이브를 잘 만들어 주어 두고두고 인사이트를 받을 수 있으니 간송 전형필 선생님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몇 번이고 드리고 싶다.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지켜내는 것 또한 매우 중요함을 되새겼다. 너무 당연하나 실천하기 어려운 일들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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