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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ris Seok May 04. 2019

LA에서 출산휴가를

출산휴가, 대망의 첫 날

그토록 고대하던 출산휴가의 첫 날. 지난 몇달간 출산휴가의 첫 날에는 집 앞 커피숍에 들려 캘리포니아 EDD에서 출산휴가 기간 동안 지급하는 급여를 신청하고, 일기를 쓰고, 책을 읽어야겠다는 계획을 세워놨다. 때문에 상상 속 출산휴가의 첫 날에는 커피숍에 앉아 노트북 자판을 두드리고, 다이어리에 글을 쓰는 내가 있었다. 


그리고 지금이 바로 그 순간이다.
상상이 한 치의 오차없이 현실이 되어 '지금 이 순간' 내 앞에 주어졌다.

출산휴가와 동시에 브런치에 글을 연재해야겠다는 마음을 먹은 것은 먼저, 말랑말랑한 글을 쓰고싶다는 마음이 최근 몇달간 간절했기 때문이다. 직업이 '기자'이기에 매일 매일 글쓰는 일을 해오고 있지만, 기자로서 써야하는 객관적인 글과 나 스스로 생각을 드러내는 주관적인 글 사이의 간극은 결코 좁지 않다. 게다가 신문에 실리는 글은 얼마나 딱딱하고 정형화 되어있나. 때문에 난 글 쓰는 일을 하며 살아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마음 속 한 구석에 채워지지 않는 '말랑한 글'에 대한 갈망이 있었다. 


그리고 그 다음으로 간절하게 기다려온 출산휴가의 4개월이라는 시간을 고스란히 글로써 기록하고 싶었다. 기록하지 않으면 모든 일은 휘발되거나 기억이란 부정확한 저장장치 속에 희미하게 남아있게 된다. 


글과 사진, 영상을 통한 기록만이 지금 이 순간을
'영원'이란 틀 속에 갇히게끔 해준다고 믿고있다. 

둘째 출산 D-day까지 내게 허락된 자유로운 시간은 10일 정도. 둘째는 예정일보다 빨리 나오기도 한다는데, 첫째가 예정일에 딱 맞춰 나왔으니 둘째도 막연히 그러지 않을까 기대 중이다. 아기가 태어나면 출산'휴가'라는 단어가 무색해질만큼 힘든 나날의 연속일게다. 모유수유의 힘겨움은 첫째 아이를 낳고 3년이 지난 지금까지 생생하게 기억 속에 자리하고 있다. 내게 주어진 10일이라는 자유시간을 더욱 알차게 보내야겠다,는 의욕이 불끈 샘솟는다. 


커피숍에 앉아 지난날 썼던 일기들을 읽는다. 일기 속엔 과거의 내가 빼곡히 담겨있다. 그 시절 느꼈던 감정들과 오늘날 내가 느끼는 감정들의 곡선을 줄타기 하며, 입가에 미소 지어진다. 이렇게 시간이 흐르고 있구나. 영원같았던 시간들은 언제나 그렇듯 과거가 되어 흘러가버리고, 현재의 나는 그때와 동떨어져 그 시간들을 관망한다. 



관찰자의 시점으로 과거의 나를 바라보면 생에서 겪게되는 모든 일들이 결국 '별 것 아니었음을' '지나갈 일임을' 문득 깨닫게 되고, 그 어떤 일에도 집착하지 말자고, 흐르는 물에 몸을 맡기고 난 그저 물따라 흐르자는 생각이 든다. 초연해진달까. 욕심부리지 않게 된달까. 그리고 지금 이 순간이 더더욱 감사해진다. 


어쨌든, 나는 출산휴가 기간동안의 나날들을 이 곳에 기록할 것이다. 

어떤 일들이 일어날지 궁금하고, 기대되고, 설렌다.  

커피숍 창가에 앉아, 행복한 오후의 햇살을 만끽하며 출산휴가의 첫 날의 반나절이 흘러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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