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개, 두 개, 세 개...
거울에 비친 내 흰머리를 세다가 더이상 세기를 포기했다.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흰머리가 발견됐다.
어느새 나는 흰머리를 걱정하는 30대 중반의 여성이 되었다.
30대부터 흰머리를 걱정하게 될 줄은 몰랐는데... 첫째 아이를 낳은 후부터 새치처럼 나기 시작한 흰머리는 둘째 아이를 낳은 후부터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이제는 누구와 견주어도 뒤지지 않을 만큼의 내 머리는 흰머리를 보유했다.
흰머리는 유전이다. 엄마는 내 흰머리를 보더니 "기어코 이런 것까지 빼닮았구나"라며 혀를 내둘렀다. 외할머니, 엄마에 이어 나까지 우리집 여자들은 이른 나이부터 흰머리가 난다. 엄마는 40대부터 하얘진 머리 때문에 마음을 썼다고 했다. 그런데 난 엄마 보다도 더 빠른 30대 초부터 흰머리로 마음 고생을 하기 시작했다.
흰머리 만큼이나 노화를 체감하게 해주는 건 없다. 매달 뿌리 염색을 하지 않고서는 흰머리를 감출 수 없는 처지가 됐다. 팬데믹이 한창일 때는 미용실도 문을 닫았기 때문에 몇 달 동안이나 염색을 하지 못했는데, 그때 만난 내 친구는 나의 흰머리를 발견하곤 "세상에" 하며 과장된 제스처를 보이기도 했다. 10년 넘게 우정을 다져온 그 친구는 "그렇게 어리던 너가 언제 이렇게 흰머리가 나는 중년이 다됐냐"며 안타까워했다.
처음에는 흰머리를 발견할 때 마다 한 개 두 개씩 뽑곤 했지만, 그 행위가 탈모로 이어질 수도 있다는 걸 알게 된 뒤에는 흰머리를 뽑는 대신 뿌리염색을 하고 있다.
염색을 하고 와도 2주 뒤면 조금씩 흰머리가 자신의 존재를 드러낸다. 더 나이가 들면 잦은 염색을 하는 데도 무리가 올 것이다. 그 때가 되면 흰머리를 감추기 보다는 아예 드러내거나, 가발을 쓰는 방식을 차선책으로 생각해봐야 할지도 모른다. 그런 미래가 언젠가 다가온다고 생각하니, 눈 뜨면 할머니로 변해있을 것만 같아 두려워졌다.
거울에 비친 내 흰머리를 확인하다 문득 서글퍼진 건, 더이상 내가 '젊음'의 영역에 머무른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제대로 실감했기 때문이다.
두 번의 출산은 흰머리 뿐만 아니라 몸의 많은 부분을 변화시켰다. 왠지 모르게 출산 이후 붓기가 군데군데 남아있고, 피부색도 탁해졌다. 몸무게는 출산 전과 비교해 여전히 +5kg 상태. 매일 운동을 하는데도, 체중 변화는 일어나지 않는다.
무엇보다도 출산 이후 엄마가 되면서 나의 마음가짐이 과거와 많이 달라졌다. 인생이 꽃밭이 아님을 인정하게 됐고, 생이 원하는대로 흘러가지 않는다는 사실도 받아들였다. 인생은 늘 변수로 가득하다는 걸 30대의 나는 너무도 잘 알고 있다.
출산 이후 몸과 마음의 변화는 분명 성장의 형태를 갖추고 있다. 난 알을 깨고 나온 새처럼 한 세계를 깨고 또 다른 세계로 넘어왔다. 이제 더이상 이전의 세계로는 돌아갈 수 없다. 지금의 세계에서 나는 온전히 현실을 받아들이고, 또다른 삶의 방식을 구축해야만 한다.
흰머리는 그런 나의 현실을 자각하게끔 했다. 그래서 서글펐다. 피터팬 컴플렉스를 가진 사람 마냥 때때로 나는 성장하지 않고 어린이의 시절에 머물고 싶다. 많은 책임으로부터 벗어나 당장 놀고 먹는 일만 생각하는 어린이의 삶이, 그러니까 지금 내 아이들의 삶이 이따금씩 부럽다.
아이들을 향해 말한다.
놀 수 있을 때 많이 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