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친구와의 통화가 기억이 난다. 아직 아이가 없는 친구는 전화기 너머로 “회사 선배가 머리도 안 말리고 출근하는 거 있지? 게을러 보여. 아이 키우는 게 그렇게 힘든가?”라고 물었다.
가시 박힌 친구의 목소리에 마치 내가 찔리기라도 한 듯 몸이 움츠러들었다. 나도 과거 그 누군가에게 저렇게 보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분명 그랬을 것이다. 나 또한 출근길에 머리를 말리지 못했을 때가, 허둥거리던 때가 있었으니까.
출퇴근 하던 그 시절을 떠올리면 이른 아침 출근길 아이에게 애원을 하거나, 울고 있는 내가 보인다. 그야말로 아침은 전쟁이었다. 그 때의 일과는 대략 다음과 같았다. 오전 6시에 알람이 울리면 벌떡 일어나 샤워를 하고, 회사에 갈 채비를 마친다. 그리고 부엌으로 나가 학교에 가는 길에 아이에게 먹일 김밥을 싼다. 입맛이 까다로운 아이는 내가 직접 싼 김밥이 아니면 아침을 거른다. 기질적으로 살이 찌지 않는 아이의 아침을 굶길 수는 없다. 어떻게든 아침을 먹여 유치원에 보내기 위해 하루도 빠지지 않고 김밥을 싼다.
오전 7시30분이 되면 아이를 깨우기 시작한다. 아이는 꼼짝도 하지 않는다. 그러다 이내 “오늘도 유치원 가야 해?”라고 투정하며, 침대에서 동동 구른다. 아이의 울음 소리는 그칠 줄을 모른다. 유치원에 간 지 반년이 지나도록 아이는 아침마다 운다. 어르고 달래 가며 겨우 아이의 옷을 갈아 입히고, 수건을 적셔 아이의 얼굴을 닦인다. 겨우 신발을 신기고, 집을 나오는데 성공했지만, 아이는 이내 인형을 두고 왔다며 울어 재낀다. 다시 문을 열고 집안으로 들어가 허둥지둥 아이의 애착인형을 찾는다. 어느덧 시간은 오전 8시가 넘어간다. 빨리 출발하지 않으면, 9시까지 회사에 도착하긴 글렀다. 엘레베이터 버튼을 누르는데, 아이는 계단으로 내려가겠다고 조른다. 엄마가 많이 급하다고 설명해보지만, 아이의 귀는 닫혀 있다. 아이와 실랑이 하는 시간도 아까우므로 빠르게 포기하고 비상구 계단에 들어선다. 다행이도 우리 집은 2층, 아이의 손을 부여잡고 어떻게든 빨리 지하 2층까지 내려가기 위해 노력한다.
……더 써야 할까. 아이를 차에 태우고, 유치원에 가기까지 징징대는 아이를 얼래고 달래며, 함께 울었던 기억. 유독 예민한 기질을 타고난 첫째 아들을 키우는 데는 많은 눈물이 따랐다. 지금 와서 떠올려봐도 몸서리 처질 만큼 힘들었던 기억이다. 체력적으로도 힘들었지만, 정신적으로 더 힘들었던 것 같다. 남들은 다 아이 덕분에 행복하다고 하는데, 나는 왜 행복보다는 불행이 더 큰 걸까? 스스로를 자책하는 시간도 더러 있었다.
그 시절 주말에도 쉬지 못하고 육아를 하다 마음 속에 분노가 쌓일 데로 쌓이면 베란다로 나갔다. 나의 속과는 다르게 평온한 바깥풍경을 바라보며 두 뺨을 타고 눈물이 흘렀다. 어쩌다 이런 삶으로 들어온 걸까, 스스로를 원망했다. 내가 꿈꾸던 삶은 분명 이런 게 아니었는데, 어쩌다 워킹맘으로 살게 된 것일까? 아이를 키우는 일은 너무도 무거웠다. 그리고 당시의 나는 고작 스물 여섯이었다. 친한 친구들은 대부분 결혼도 하지 않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난 외딴섬에 고립된 채 버거운 삶을 이어가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남편은 자상하고 좋은 아빠였지만, 늘 바빴다. 타지에서 느끼는 향수, 육아로 인한 극심한 피로, 개인 시간의 부재, 열정적으로 일을 하고 싶다는 욕심과 현실 사이의 괴리 등 많은 이유로 우울감을 느끼던 시간이었다.
시간만이 해결해줄 문제라고 생각하며 그 시절을 이 악물고 버텼다. 내가 낳은 아이인 만큼 책임감을 가지고 키워야 한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그리고 아이를 키우는 동시에 나의 커리어도 절대 놓지 않겠다는 다짐을 했다. 말 그대로 그저 ‘버티는’ 시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