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우먼은 없다

워킹맘에게는 재택근무가 필요해

by Iris Seok
10년 후 나는 어떤 모습일 것 같아요?


일도 육아도 열심히 하는 슈퍼우먼이요.



23살의 내가 인턴 면접에서 받았던 질문과 대답이다. 답변을 하는 나는 일말의 주저함도 없었다. 30대 중반에는 당연히 내 가정을 꾸려 아이를 키우며, 일을 하는 여성으로 살 것이라는 확신을 했기 때문에. 그런데 실제 30대 중반의 나이가 되어 보니, 과거의 내 답변은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10년이 지난 현재, 난 일하는 엄마가 됐지만 슈퍼우먼과는 거리가 아주 멀다.



‘슈퍼우먼’이란 단어가 얼마나 불가능에 가까운 영역인지 당시의 나는 가늠이나 했을까? 워킹맘의 삶은 슈퍼우먼과 같은 히어로물보다는 어른들의 잔혹동화에 어울린다. 슈퍼우먼을 꿈꾸며 천진난만 했던 과거의 내가 가소롭게 여겨진다. 워킹맘은 필연적으로 육아와 일 사이에서 허우적 거리다 정작 ‘자기’(self)는 땅 밑으로 꺼져가는 경험을 반복할 수밖에 없는 운명을 가졌다. 커리어우먼으로서도 별로고 엄마로서도 별로인 자신을 마주하는 건 짙은 열등감과 불만족을 혹처럼 대롱대롱 달고 사는 일이다.



나의 경우 둘째를 낳고 4개월 만에 일선으로 복귀했다가 한 달간 목소리를 잃었다. 말 그대로 정말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사람의 면역력이 바닥으로 치달으면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 상황까지 닥칠 수도 있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다. 신생아를 돌보느라 밤을 지새우고, 예민한 첫째 아이 등원까지 마친 뒤 출퇴근 하는 삶의 패턴은 체력왕이라 자부했던 나를 한순간에 비실비실한 30대 직장인으로 바꿔 놓았다. 목소리를 빼앗긴 동화 속 인어공주의 모습을 재현하며 살자니, 스스로가 처량해 눈물이 나는 날의 빈도가 잦았다.



하지만 일을 그만 둬야겠다는 생각은 단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 나에게 일이란 본연의 나를 지키는 일과도 같았다. 아이를 키우며 가정을 돌보는 일은 숭고한 일임에 틀림없지만, 뭐랄까 그 삶에서는 내가 결여된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가장 나답게 존재하는 때는 언제인가, 라고 자문해 보면 그 끝에는 늘 일 하는 내가 있었다. 글을 쓰는 나, 취재를 하는 나, 낯선 사람들을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인터뷰 하는 나의 모습을 나는 가장 애정했다.



그러나 아무리 좋아하는 일이라도 체력이 따라주지 않으면 행복할 수 없는 법. 워킹맘 생활에 몸과 정신이 피폐해졌을 쯤 코로나19 팬데믹이 터졌다. 내가 속해 있던 회사는 전염병 속에서 ‘재택근무’ 시스템을 도입해 시대의 흐름을 따랐고, 덕분에 나는 재택근무 하는 엄마가 될 수 있었다. 재택근무로 3년째 일을 하는 지금, 나는 단언할 수 있다. 재택근무는 워킹맘이 추구할 수 있는 최고의 근무 시스템이라는 사실을.



재택근무를 하는 나는 워킹맘과 전업주부 사이의 삶을 오가고 있다. 아침 전쟁을 치른 뒤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고 나면 나는 직업인으로서의 하루를 시작한다. 아이들이 집에 오기 전까지 업무를 거의 끝내 둬야 하루가 수월하므로 수험생이 공부하듯 집중적으로 일을 한다. 오후에 아이들이 집에 돌아오면 그때부터 나는 엄마가 된다. 농구, 야구, 피아노, 태권도 등 아이의 학원 라이드를 도맡고, 아이들이 먹을 저녁을 준비한다. 하루의 절반은 워킹맘, 절반은 전업주부로 삶을 사는 셈이다.



가끔 재택근무가 아니었더라면 내가 어떤 모습으로 살아 갔을 지 떠올려 보게 된다. 타지에서 살기 때문에 위급할 시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시집 및 친정 가족 마저 내게는 없으므로 워킹맘으로서 살아가는데 수많은 장애물이 등장했을 것이다. 겪었을지도 모를 어떤 장면들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아찔해져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현재 대한민국은 저출산 문제로 위기에 놓였다. 2018년부터 대한민국의 출산율은 0명대(0.98명)에 진입해 2022년 0.78명으로 역대 최저치를 기록해 국가의 위기론까지 나오고 있다. 최근 발표된 2분기 출산율은 0.7명으로까지 떨어졌다. 저출산의 원인에는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나는 주양육자(주로 여성)가 출산 이후 일하기 힘든 현 상황이 여러 원인들 중 중심에 있다고 생각한다. 주양육자가 출산 이후에도 변함없이 꿋꿋하게 자신의 일을 하기 위해서는 재택근무가 개인의 선택으로 마땅히 주어져야 한다고 믿는다. 팬데믹 이후로 재택근무를 하며 워킹맘으로서 일하고 있는 나의 경험이 어디선가 아이를 키우며 일하느라 고군분투하고 있는 워킹맘들에게, 그리고 미래에 워킹맘이 될 여성들에게 희망의 끈 한 가닥을 전하는 일이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글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