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킹맘이 아프면 안되는 이유

눈물나는 육아

by Iris Seok

2020년. 2월의 어느 날.


며칠째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지난주부터 편도염인가 싶을 만큼 목이 붓기 시작했는데, 육아와 일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일상을 살다 보니 병원에 갈 틈이 나지 않았다. 미국에서는 한국에서 살 때처럼 감기에 걸렸다고 해서 쪼르르 병원에 달려갈 수가 없다. 미리 예약을 하지 않으면, 갈 수 없는 시스템이기 때문.



워크인(walk-in)으로 가려면 ‘얼전트 케어’(urgent care)를 가야 하는데, 간다 해도 딱히 해주는 것도 없다. 몇 년 전 둘째를 임신했을 때 고열을 앓은 적이 있다. 당시 난 응급실에 가서 2시간 내내 벌서 듯이 대기실에만 앉아 있다가, 의사 선생님은 딱 10분 만나고 타이레놀만을 처방받은 채 집으로 돌아왔다. 타이레놀을 처방 받자고 간 응급실이 아닌데…그 때 생각했다. 미국에서는 아파도 절대 병원은 가지 말아야겠다고. 아무리 아파도 자연치유가 답이라고.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나아지겠지 하는 안일한 마음으로 편도염을 방치했다가 난생 처음으로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 상황에 처하자 너무 당황스러웠다. 말 그대로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아침에 일어나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 걸 깨닫고 얼마나 당황했던지. 말문을 열면 쇳소리가 흘러 나왔다. 출근해서도 동료들과 속삭이듯 대화하고, 취재를 나가선 입 모양으로 상대방에게 의사를 전달했다. 통화로 대화를 이어 나가는 건 아예 불가능해서 전화가 오면 문자나 이메일을 통해 내 상황을 장황하게 설명했다.


목소리를 잃은 인어공주의 마음이 백번 이해가 갔다. 왕자를 앞에 두고 얼마나 답답했을지. 멀쩡한 사람이 하루 아침에 목소리가 안 나올 수 있다니. 인터넷에 검색해 봤더니 가능한 일이란다. 인간의 몸은 이렇게나 약한 존재구나, 새삼 깨닫았다. 면역력이 떨어지면, 건강할 때는 상상조차 못했던 몸의 변화가 일어난다.



둘째를 낳은 후 내 몸이 완전히 망가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캘리포니아에서는 법적으로 보장되는 출산휴가 기간은 4개월. 출산휴가를 최대한 출산 이후에 쓰기 위해서 출산 5일 전까지 회사에 출근하고, 현장으로 취재를 다녔다. 남산만한 배를 내밀고 취재를 나가면, 나는 괜찮다 해도 상대방 쪽에서 지레 겁을 먹었다.


“괜찮으세요?”

“네, 괜찮습니다.”


나를 걱정스럽게 바라보는 상대방의 시선을 느낄 때면 뭐랄까, 조금은 비참한 기분이 들었던 것도 같다. 아등바등 생계를 이어 나가는 악착스러운 여성이 된 것 같았다. 아니, 뭐 그게 사실이기도 하지만. 그래도 나 역시 그저 당신처럼 직장 생활을 하는 한 명의 직장인일 뿐이라고, 그렇게 희한하고 안타까운 시선으로 쳐다보실 필요는 없다고…뭔가 억울하고, 분하고, 동시에 처량했다.



워킹맘으로 살면서 처한 숱한 난처한 상황을 겪으며 몸과 마음이 여러모로 깎여 나갔다. 좋게 표현하자면 삶에 대해 매우 겸손한 태도를 장착하게 됐고, 나쁘게 말하자면 본래의 자아가 훼손됐다. 삶의 중심을 잡아주던 나만의 긍정적인 태도와 사고가 점차 옅은 색으로 희미해졌다. 난 그걸 분명 느낄 수 있었다.



이대로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까? 스스로도 답할 수 없었다. 목적지에 도달할 때까지 멈출 수 없는 기차처럼 난 그저 앞을 향해 달려나갈 뿐이었는데, 점차 기차의 연료가 닳고 있다는 경고음이 쉴 새 없이 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