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택근무가 시작됐다

by Iris Seok

그건 매우 예상치 못한 통보였다. 아시아계 국가들을 중심으로 코로나 바이러스가 차츰 퍼지기 시작하던 지난 2020년 연초. 그 해의 3월15일 회사로부터 이메일 한 통을 받았다.



그날은 여느 때와 다름없는 일요일 오후였고, 난 아이들을 돌보며 조금은 나른한 몸으로 소파에 누워 휴식을 취하던 중이었다. 중국과 한국으로부터 들려오는 코로나 바이러스 소식에 마음이 심난하기는 했지만, 그 불안감은 한국에 있는 부모님과 친구들로부터 기인한 것이지 미국에 사는 나와 가족에 대한 걱정은 아니었다. 그런데 오후 4시쯤 회사에서 이메일 한 통이 왔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확산되고 있습니다’라고 시작된 이메일은 ‘별도의 통지가 있을 때까지 재택 근무를 원칙으로 업무를 수행해 주시기 바랍니다’라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재택근무라니! 재택근무라니!! 그때까지 난 단 한 번도 내가 재택근무를 하는 삶을 살게 되리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매일 회사에 출근도장을 찍는 일은 묻고 따질 필요도 없이 당연한 일이었다. 출퇴근은 직장생활의 디폴트 값 그 자체였다.



그러나 마음 한구석에는 늘 재택근무에 대한 동경이 있었다. 사무실이 아닌 카페에 가서 일을 한다면 일의 능률이 훨씬 오를 것이라고 내심 확신했다. 석사 논문을 쓸 때도 난 연구실 보다는 카페를 선호했다. 매일마다 새로운 카페를 찾아 떠나며 논문 쓰기도 일종의 놀이처럼 즐길 수 있었다. 눈을 뜨면 공부에 대한 압박 보다 그날 새로 가게 될 카페에 대한 기대감에 들떴다. 서울 지역에 카페 수십곳을 돌아다닌 끝에 난 무사히 석사논문을 끝마칠 수 있었다. 그래서 확신할 수 있다. 일과 과제, 공부를 해야 한다고 해서 꼭 도서관, 회사만이 정답은 아니라는 사실을. 개인마다 효율성을 올릴 수 있는 업무 장소는 다를 수 있으니까.



재택근무 초창기에는 팀원 모두가 허둥대고, 스트레스 받는 시간을 보냈다. 국장은 매 시간마다 ‘빨리 빨리’ ‘오전 내로 기사 1개 마감해’ 등 마감 압박을 가하는 카톡 메시지를 보냈다. 몸은 사무실이 아닌 내 집 안방이었지만 오히려 더 통제 받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당시에는 ‘재택근무는 최악이구나. 상사의 감시만 더 늘어나고…’라는 생각을 했다. 팬데믹 상황으로 모든 곳이 셧다운 됐고, 아이들 두 명 다 유치원에 가지 않았다. 때문에 우리 집은 팬데믹에도 출근하는 남편을 제외한 베이비시터, 아이 둘, 재택근무를 하는 나까지 총 4명이서 24시간 내내 북적거렸다. 아이들이 울음 소리를 BGM으로 깔고, 안방 화장대에 쪼그려 앉아 코로나19와 관련한 기사들을 기계처럼 써내며 나는 누구이고 여기는 어디인가를 수시로 떠올리다 우울감에 휘말리곤 했다.



하지만 그 상황 속에서도 재택근무가 싫지만은 않았다. 재택근무로 인해 주어지는 장점은 확실했다. 우선 씻고 화장하고, 출퇴근 하는 최소 3시간에 달하는 시간이 내게 선물처럼 주어졌다. 처음에는 그 시간에 늦잠을 자기 바빴는데, 점차 시간이 지나고 코로나19 사태 상황에서 몸과 마음이 지쳐가자 난 선물 같이 주어진 3시간을 활용해 현실의 상황을 반전시켜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출근 준비에 허둥대는 대신 나는 이른 아침에 일어나 나만의 자유 시간을 확보했다. 한창 유행하던 ‘미라클모닝’을 나 또한 그때 처음 시작했다. 새벽 5시에 눈을 뜨는 일은 생각보다 힘들지 않았다. 자유를 향한 갈망은 수면욕 보다 훨씬 강했다. 사람을 크게 ‘아침형 인간’과 ‘저녁형 인간’으로 나눈다면 난 명백히 후자였다. 하지만 ‘엄마’란 역할을 수행하면서 혼자만의 시간을 욕심내기 힘들었다. 혼자만의 시간을 꿈꿀 수록 현실의 내가 초라해졌다. 이게 뭐라고, ‘꿈’씩이나 꿔야 가능한 일이 되어 버렸나.



그러다 재택근무하는 삶이 찾아 오면서 미라클모닝을 시작하자, 나는 그토록 원하던 혼자만의 시간을 내 것으로 만들 수 있었다. 새벽 5시부터 6시까지는 집 안에 전기 돌아가는 소리만 들리는데, 그 적막의 시간이 낯설고 이질적이면서도 한편으로는 날 안도하게 했다. 10분간 요가로 몸을 푼 후, 클래식 음악이나 재즈를 틀어 놓고, 일기장을 끄적인다. ‘모닝저널’로 명명되는 공책에 글을 써내려 가면 일상 속에 묻혀 있던 ‘진짜 나’를 만날 수 있었다. 저널을 작성하면서 ‘사는 대로 생각하던’ 틀에서 잠시 벗어나 내 안 깊숙한 곳에 묵혀 뒀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게다가 일찍 일어나니 하루 종일 긍정적인 마음이 평소보다 길게 유지됐다. 여전히 육아를 하고 일에 치였지만, 그럼에도 나는 무언가 다르게 살고 있다는 강한 믿음이 영혼에 불을 지폈다. 그때서야 난 재택근무를 하는 삶이 내가 진짜 원하던 삶과 아주 가깝다는 걸 어렴풋이 알게 됐다.